시/갈대와 달빛의 대화
2018.01.19 00:51
갈대와 달빛의 대화
박 효 근
어느 날 밤이었지
팜추리에 걸려 있는
하얀 달빛이
갈대에게 말했다
오늘 밤엔 바람이
북동쪽에서 불어 올 거라고
갈대는
바람이 북동쪽에서 불어오면
온 몸을 떨며 울 곤하였다
그래서 오늘 밤엔
가슴을 닿고 온힘을 다해 침묵하면서
실컷 울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반쯤 찢어진 갈색 낙엽들이
계곡 아래로 구르며 부르는
노랫소리 듣다가
또 기회를 풀고 말았다
달빛이 또 말한다
진실을 말한다는 것은
침묵하지 않고
실컷 우는 것이라고
가슴에 새겨 둔 상처
목쉰 바람 따라
허공으로 허공으로 빠져 나가면
그제서야 새벽별
옷 벗는 소리가 들린다
울음을 참는 것만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마음 따로 머리 따로
제 갈 길이 따로 있다던데
오늘은 웬일로 마음과 머리가
같은 길을 가고 있을까
갈대는
양 어께가
한 없이 한 없이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