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컬럼: 쉼표}

2010.01.11 13:50

강학희 조회 수:175 추천:14




pcp_download.php?fhandle=NVNzZWFAZnMxNS5

쉼표 / 강학희

음악을 하는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쉼표를 그 박자에 맞게 쉬는 것이라고 한다. 짧은 쉼표보다 길게 쉬어야 할 때 그 박자만큼 충분히 쉬어 주는 것이 상당히 힘든단다. 우리의 삶도 알맞은 때 알맞게 쉰다 것, 이 것이 삶을 덜 지치게 하는 비결인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애들을 위해 그 때 그 때 그들의 변화와 욕구에 맞추어 없는 시간도 꼭 만들어서 열심이었던 휴가도 이젠 아이들이 다 떠나고 빈 둥지 증후가 나타난 후엔 이 일 저 일에 밀려 오히려 쉰다는 게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우리의 육체적 쉼표인 잠자리가 뒤숭숭하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 삶의 에너지가 고갈 되어 가듯, 사람마다 피로 할 때 쉬는 방법도 다양해서 각자의 취미에 따라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운동을 해서 날카로워진 우리의 신경들을 잠재우려 한다.

이즈음엔 나의 쉬는 방법도 많이 바뀌어, 오히려 유치하다고 흉보았던 트롯트의 애절 함이나, 비디오 드라마의 슬픈 사연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남의 삶을 관망하고 내가 살 수 없었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주인공들과 하나가 되어 울기도하고 웃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요즈음 난무하는 비디오 공해를 얘기하지만, 그래도 내겐 한편의 눈물 나는 드라마틱한 삶이 피로했던 나를 식혀주는 청량제가 되기도 한다. 너무나 어리석을 만큼 순박한 삶, 야박하리 만치 이기적인 삶, 아직도 신토불이를 고집하는 옹고집인 삶, 이런 것들이 현실에서 잊혀져 가는 순수함을 되 살려주기도 하고 남의 희생적이거나, 한계적인 삶에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카타르시스시켜 가기도 한다.

어떤 땐 그냥 아무 생각이나 부담 없이 남의 삶을 관망하며, 거기서 다시금 나를 이끌어 가게 하는 삶의 관조를 만나기도 한다. 다분히 나르시스적이긴 하지만...

쉼표에 있는 만큼 넉넉히 쉬고, 다음 음표로 가는 삶, 쉼표는 요즈음 우리네의 번잡하고 규칙적인 삶에 꼭 필요한 부호인 것 같다.

-2002 한국일보 여성의 창 컬럼에서-

shuke_detail_00048.gif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2
어제:
6
전체:
610,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