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통, 심통 길들이기- 느림의 미학 / 강학희


pcp_download.php?fhandle=NVNzZWFAZnMxNS5


본래 말수가 적은 13남매 막내의 아내로 살다보니 처녀 때에 비해 
가장 많이 변한 것이 식사 습관이다. 
나의 친정 아버님은 워낙 식도락가이시고 유학 시절부터 레스트랑의 
분위기, 실내 장식이나 식기 등에 조예와 관심이 많으셔서 
어려서부터 
장안의 맛갈스런 명소를 다닐 기회가 많았고 아이도 언니와 나 뿐인 
단촐한 친정집 식사시간은, 맛 얘기, 멋 얘기로 식탁에 이야기 꽃이 
피었었는데... 

남편은 입맛 전의 눈맛인 요리족이 아니고, 뽀글뽀글 찌개족인데다 워낙 식사 속도가 빨라 (식구가 워낙 많아 천천히 먹으면 먹을 것이 남지않기 때문인지 ) 결혼 후 제일 힘들었던 것이 식사시간의 차이였던 것 같다.

특히 두었다가 먹는 밑반찬이나 식후 디저트를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라 매일 당일에 새로 찌개를 끓이느라 두어시간씩 애를 써도 십오분도 안되 어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니 나는 반도 먹지 못한 채 밥을 남기기가 일쑤이고, 식후먹거리를 준비해도 대부분 혼자 먹게 되어 점점 디저트의 별미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또한 식사시간이 짧으니 식탁에서 오손도손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어려울 뿐더러 어쩌다 별렀다 한마디를 해도 식사하느라 건성으로 듣고 넘어가는 일이 다반사인지라 심상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 나도 밥먹는 속도가 빨라지고, 식사 중에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어 속상한 날은 이래저래 급체하여 오 분도 안되어 꼴깍 넘겨버릴 때도 많았지만, 이젠 그도 어느 덧 삼십년 넘어가는 세월이고, 더구나 아 이마저 떠나 둘이 먹는 밥상의 재미는 점점 더 줄어들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이래서는 도저히 안되겠다싶어 식사 시간도 늦추고 이 야기 거리도 만들어볼까 고심하다 워낙 둘 다 읽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열심히 읽던 책이나 미처 읽지못한 일간지나, 주간지의 문화면을 오려내 내가 읽을 듯 옆에 놓아 두고, 또다른 쪽에는 시집이나 수필집을 두었다 밥을 먹으며 읽기 시작했다. 자연 자기도 옆의 컬럼이나 책들을 읽으며 밥을 먹게 되니, 밥도 천천히 먹게되고 읽은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며 천천히 식사를 하는 습관이 붙게 되었다.

물론 본인도 내과 의사로 매일 환자들에게 식사를 천천히 하는 것이 식 사량을 줄이는 일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읽을거리를 준비하는 것이 최상 이라고 권하는 만큼 내 소행(?)의 진심을 알고 그렇게 동조하는 것이리라.

다행히 둘만의 식탁이라 빈 공간이 넓어 읽을 거리들을 넉넉히 준비 할 수 도 있고, 그동안 읽지 않던 레저소식까지 접할 수 있게되니 새로운 정보를 검토하다 그 것이 우리들의 여행 계획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신문에서 읽 은 여행 정보를 이용, 그리로 여행을 가게 된 적도 있었고, 전에는 간간히 잘못 꺼낸 낮 시간의 이야기로 심정이 상하는 일이 많았는데, 이젠 그런 이야기는 피하고 대화를 바꿔 할 수 있게 되니 자연 부딪혀 속상하는 일이 줄게 되었다. 결국 밥을 천천히 먹게되니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기분도 좋 아지고, 더불어 다양한 대화거리마저 생기니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참 이상한 것은,

식사를 천천히 하게되고 부터, 급하던 성정도 누그러지고 식사량이 줄어드 니 자연 감칠 맛나는 것을 찾아서 아버님 처럼 이곳 저곳 새 맛을 찾아나 서는 일이 잦아져 기분 전환에도 상당히 많이 도움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 알 수가 없는 것이 이렇게 스스로 경험하고 나서는, 왠 지 이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지는 것이다. "있지요... 매사 천천히 급하지 않게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는데, 그 시작을 밥 먹는 것에서 시작해보셔요. 더구나 요즘은 비만이 문제라니 그 첫 걸음을 이런 밥통, 심통 길들이기로 시작해 보셔요" 가까운 친지나 이웃들만 만나면 자꾸 권하게 되는 주책(?)이 된다.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바로 오늘 저녁 식사부터라도 읽기 반 먹기 반으 로 마음은 살찌고 몸은 날씬해지는 일석 이조의 기쁨을 누려보시라! 당신의 밥상도 어느 덧 절로 맛나고 아름다운 밥상이 되지않겠는가? 바로 이 것이 느림의 미학이 아닐른지...



회원:
2
새 글:
0
등록일:
2015.03.19

오늘:
1
어제:
6
전체:
610,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