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수필: 추수감사절 밥상}

2010.01.11 14:45

강학희 조회 수:9910 추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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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수감사절 밥상 / 강학희 ♤

엘니뇨, 라니뇨 이상기온 온난화 현상 이후 온 세계가 몸살을 앓는다. 여름은 더 더워지고 겨울은 더 추워지고, 에어컨도 필요 없던 이 곳에도 더워 잠 못이루는 여름밤이 생겨나고, 얼음도 얼지 않는 옅은 겨울이 싸리나무 회초리보다도 더 아리게 추워졌다. 해가 갈 수록 더 심해지는 천재지변 분명 우리들이 마구 써버리고 다독이지 않은 환경 오염의 결과일 것이다. 년전엔 쓰나미가 동남아를 휩쓸고, 인도의 지진과 북유럽의 홍수와 해일, 그리고 광풍 같은 토네이도와 허리케인이 일본열도와 맥시코만, 후로리다를 강타하고 뉴올리언즈를 물바다로 만든 카트리나, 여전히 번지는 산불과 산사태가 캘리포니아 곳곳을 허물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여 디스커버리호가 우주정거장에서 도킹을 해도, 배아줄기 세포 성공하여 질병을 고칠 날 머지않다고는 해도 인간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우리 힘으론 도저히 어찌 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자연 현상이 "나 있음을 잊지 말라" 하시는 말씀처럼 시도 때도 없이 몰아닥친다.

이젠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는, 시공의 거리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는 생활 속에서 점점 머리와 손만으로 이루어지는 일들로 비만이 세계의 가장 큰 잇슈가 되어가도, 또 지구의 한쪽 끝 사하라 사막 남쪽 아프리카나 이북의 땅에선 여전히 기근으로 수만의 목숨이 굶어넘어지는 아이러니로 매일 신문을 볼 수록 돌아다 보면 꼭 소금기둥으로 서게 될 것만 같은 작금의 뉴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점점 더 무서워진다.

얼마 전엔 인근 이웃에서 한국에서 동생네로 놀러 온 오빠와 매제가 술에 취해 싸움을 하다 이웃의 신고로 들이닥친 경찰의 경고를 알아듣지 못하고 칼을 가지고 움직이다 총에 맞아 숨지고 운이 나쁘려니 방 안에 있던 집주인인 매제 마저 총알의 파편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문화적 차이와 오해에서 온 것일 테지만, 한국 가정들의 격한 관계들을 많이 생각해보도록 한 사건이기도 했다. 사실 가족이기 때문에 남처럼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마음 상하는 일들이 어디 하나 둘이겠는가 만은 가까웁기 때문에 작은 한마디, 작은 몸짓 하나에서도 더 쉽게 감동을 받기도, 더 감정을 상하게도 되는 관계이기에 서로 간에 숨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사랑과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오랫만에, 하나 뿐인 아들 내외가 가까이 정착을 하게 되고, 안 계신 언니의 아이들이 다들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오면서 작년 추수감사절엔 모두들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 이모는 자리만 제공하라는 조카 아이가 제일 먼저 자기가 터키를 구워오겠다 하고, 일본 며느리는 스시와 초밥을, 아들은 제18번인 탉 튀김을 제안하고, 그래도 김치 없으면 안되는 남편은 자기는 김치찌개와 돼지갈비를 굽겠단다.

모처럼 조카의 일본 안사돈까지 자리를 같이 하게되는 지라 그럼 나는 떡갈비꼬치, 버섯구이와 안사돈이 제일 좋아한다는 찐만두와 잡채까지 맡기로 하고보니, 완전히 국적이 없는 식탁 메뉴가 짜여졌다. 몇날 몇일 먹을거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식구가 많으니 남으면 또 갈라가겠지 생각하며 치우고 상차림을 하니 참으로 볼만한 밥상이 되어버렸다. 와인과 청주가 곁들여지고 한식, 일식, 양식에 중식, 떡까지 먹거리판이 되어버렸지만 와글 와글 12명의 수저, 포크와 나이프, 젓가락과 숫가락들이 부딪고 국적 없는 밥상처럼, 한국말, 영어, 일어, 게다가 2살짜리 알아들을 수 없는 애기말, 멕시코에서 선교를 마치고 온 막내 조카의 스페인어 기도까지 합쳐 다섯 나라 말이 넘치는 식탁, 웃음 또한 가지각색 즐거웁고 복닦거리는 추수감사절이 되었다.

집주인 왈 진짜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날이란다. 아마도 저 하늘 나라의 부모님, 언니도 내려다보시며 참 웃기는 밥상, 볼만한 식탁이라 입맛을 다셨을 것만 같다.

함께라는 말은 꼭 매일 붙어 있지는 못해도, 이런 명절날 이런 저런 음식 앞에서 공통으로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보고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시간을 갖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런 힘으로 또 그럭 한해가 살아지는 것인가 보다. 들으면 다 별 것 아닌 지난 이야기들 속에서 한 순간 공유했던 삶들을 반추하며 어쩌다 몰려오는 어려운 시절들을 또 잘 넘어가게 되는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 잊혀진 사람이라 하니 떠나가도 잠시 잠깐이라도 기억해 주고 떠올려주는 식구나 이웃들의 소중함이 새삼 귀하게 여겨지는 시간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리워 하는 건 그 사람 자체나 그 사건 자체라기 보다는 함께 공유했던 그 순간의 느낌을 더 이상 같이 나눌 수 없는 아쉬움 때문일는지도 모른다. 가고 오고, 누군들, 무엇인들 영원하랴만, 내가 떠나가도 기억해 줄 누군가가 있다면 그래도 살아 볼만한 세상이 아니겠는가.

이제 또 11월의 문턱, 이 한해동안 누구와 무엇을 나누며 어떻게 살았는지 되돌아보며 감사를 풀어놓는 추수감사절이 다가온다. 올해의 감사의 밥상엔 식구들뿐 아니라 불러주는 이도, 갈 곳도 막막한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따스한 밥상이 되었으면 하고 작은 바램을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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