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9 09:41
신호등이 있는 전선에 운동화가 걸려 있다.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은 듯 바람을 타고 자꾸 허공에 발길질하고 있다.
누가 저기에 걸어 놓았을까? 어떻게 저기에 걸 수 있었을까?
왼쪽 운동화의 끈과 오른쪽의 그것을 서로 단단히 묶어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을 것이다. 한 번에 척 올라가 앉지는 않았겠지. 그는 아마도 여러 번 시도했을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그랬을까? 한 번에 안 되어 다시 시도하면서 자꾸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운동화에 그는 욕을 마구 해 댔을까? 아니면 기도했을까?
땅 위를 걷는 것이 너무 힘들어 이제는 더 못 걷겠다고 신을 벗어 던져 올린 것은 아닌지. 문득 어떤 남자가 생각나서 가슴이 시려 왔다.
몇 년 전 교회로 오십은 넘고 육십은 안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는 엘에이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했다. 그가 신은 운동화는 밑창이 반은 떨어져 나갔다. 원래 무슨 색이었는지 알 수 없게 때에 쩔었고 너덜너덜했다. 차로도 삼십 시간 더 걸리는 거리이다. 2,400마일, 4000km 정도의 거리이다. 서울에서 부산이 456km라고 하니 그것의 거의 열 배 거리이다. 혼자서 오래 걸어서인지 그는 말을 잊은 듯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못 했고, 본인이 관심 없는 질문은 그냥 무시하는 듯도 했다. 겨우 하는 대답도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마치 여러 가지 말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한참을 혀로 굴려 하나로 뭉친 다음 내뱉는 것 같았다. 머리는 마구 엉켜진 실 뭉텅이처럼 이곳저곳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원래 의사였던 담임 목사님은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그를 보자마자 의사 본연의 자세를 갖추셨다. 먼저 그를 앉히시고 발을 살피셨다. 사천 킬로를 걸어온 그 발은 이미 다 망가져 있었다. 부르튼 살에 염증이 생기고 염증 위로 흙먼지가 뒤엉켜 말라붙었다. 따뜻한 물을 가져오게 하여 그 발을 정성껏 씻겨 주셨다. 곪은 부위를 째서 고름을 짜고 약을 발라 붕대로 잘 감아 주시고는 주일 학교 교실 하나를 비워 간이침대를 놓아 쉴 수 있게 해 주셨다.
남자 화장실에 있는 샤워실에서 매일 씻을 수 있게 해주었고 음식을 제공했다. 우리들은 그에게 새 옷가지와 운동화 몇 켤레를 가져다주었다. 처음에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식사 후에는 그저 잠자기 바빴던 그가 한 달 정도 지나 발이 많이 나아지니 교회 안팎을 돌아다니며 청소도 하고 망가진 것이 있으면 고치기도 하였다. 페인트가 벗겨진 곳은 페인트를 사 달라고 해서 칠도 새로 하였다.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된 그는 말도 조금씩 정확하게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서 집을 나왔는지, 가족은 어디 사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기억을 못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부러 답을 피하는 것도 같이 딴청을 피워 끝내 사연을 알 수 없었다. 그러는 그가 우리에게 부탁을 해왔다. 거리에서 자면서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운전면허증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게 있어야 어디서 밥벌이라도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없으니 또다시 걸인이 될 판이었다. 운전면허증을 내는 데 필요한 그 어떤 증명서도 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주권자였다는 그의 기억을 더듬어 영주권 재발급 신청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영문 이름을 적을 때 어떤 영자 스펠링을 사용했는지 그는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민국 영주권 기록을 다 뒤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들은 그의 생년월일만 가지고 비슷한 발음의 이름을 하나하나씩 찾아 나갔다. 며칠 만에 그의 생년월일과 일치하는 그의 이름을 찾아 영주권 재발급 신청을 할 수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그는 처음으로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띠었다.
그날부터 그는 매일 교회 우편함을 열어 보았다. 이민국 업무가 원래 느리고, 그곳 직원도 한 달 정도 걸린다 했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는 우편함 열어보는 것을 쉬지 않았다. 본인 이름의 편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교회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일거리를 찾았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우리가 사준 새 옷과 운동화는 그대로 두고 일하면서 입었던 작업복과 처음 온 날 목사님이 주신 운동화를 신은 채 사라졌다. 우리는 어디 잠깐 나갔나 하고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그는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사라진 후 오 일째 되는 날 이민국으로부터 새로 발급된 그의 영주권이 배달되었다. 우리는 그 봉투를 열어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그의 영주권을 꺼냈다. 무표정한 그가 거기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같이 있던 한 친구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조금만 더 있다, 가지…’ 말끝을 흐리며 그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때 목소리가 쩌렁쩌렁한 한 교인이 목사님을 찾으며 교회로 들어왔다. 아니 근원도 모르는 불한당을 교회에서 재우는 것이 말이 되냐며 어린 딸들의 안전은 생각하지 않냐고 무슨 일이 나면 목사님이 책임질 것이냐고 이미 큰일을 당한 사람처럼 그는 핏대를 세우고 있었다. 영주권을 받기도 전에 또 어디로 그 고단한 발걸음을 향했는지 마음이 아파 눈물짓던 친구가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또 다른 친구가 ‘아이고,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이미 떠났어요. 걱정 많이 하셨구나! ‘넉살을 섞어 그를 다독였다.
얼마나 사는 것이 힘들고 지쳤으면 다 버리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을까? 순탄하지 않았을 그의 이민 생활이 눈에 보이듯 그려졌다. 그저 그가 잠시 쉼을 얻고 새로 발급받은 증명서로 다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병든 몸으로 교회에 찾아온 사람을 돕는 일은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교회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교인들에게 알려지면서 그 들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그 사람이 무서워서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기가 겁이 난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별별 험한 일이 다 일어나니 그런 염려가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저 교회에서 쉬고 있는 그를 두고 당신이 나쁜 일을 할까 봐 걱정되니 인제 그만 나가 달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가 교인들의 이런 수군거림을 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지 않고서는 며칠 안에 나올 영주권을 포기하고 이렇게 무작정 사라진 것을 설명할 수 없었다. 분명히 그랬을 것 같았다. 자신 때문에 아이들을 교회에 보내기가 무섭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 그는 떠나기로 했을 것이다. 운동화 끈을 고쳐 동여매고 안전하지 않은 그 거리로 다시 발걸음을 내디뎠을 것이다. 그렇게 떠나는 그의 가슴에는 또다시 황량한 바람이 불었을 테고, 희망의 끈은 더 가늘어지고 약해졌겠지.
아직도 그는 걷고 있을까?
어딘가로 돌아가서 무엇을 하겠다는 희망이 아직도 그의 가슴에 남아 있을까?
혹시 걷고 또 걷다가 지쳐서 어느 길목에 주저앉아 있지 않을까? 더는 걸을 수 없는 발에서 운동화를 벗겨 들고 양쪽의 끈을 이어 묶고 있지 않을까?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다해 운동화를 하늘 높이 던져 올리는 그가 보이는 것 같다. 운동화는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나르는 운동화에 그가 올라탔다. 그는 하늘을 향해 점점 높이 올라간다. 먼지 나는 땅을 내려다보며 자신보다 작아지고 있는 세상을 향해 그가 입술을 들어 미소 짓는다.
가슴이 아릿해 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