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9 09:43
구겨진 아버지
하늘 같던 아버지는 내 키 자라는 만큼씩 매일 작아졌다
산마루 흔들던 그의 호통도 집 앞 실개천이 뒤척이며 조금씩 삼켜 버리고
어느 늦은 오후에 휴지통 안에서 발견한 꼬깃꼬깃 구겨진 복권 한 장
뉘엿뉘엿 들어온 햇살이 마주보기 힘들어 비껴 서있었다
새로 맞춘 양복 잘 차려입어도 안 주머니에는 언제나 커다란 구멍 하나
두고온 어린 아들의 차디찬 눈물 전해오는 북풍에 날마다 살을 에던 아버지
어떤 요행을 바라느라 단단히 지켜온 체통도 던져버리고
아는 눈들 천지인 거리에서 허둥대며 사 들었을 여섯개 숫자
손아귀의 절규에 으스러진 아버지의 꿈 처량하게 던져져 있다
허망하게 하늘만 바라보았을 빈 손바닥
보이지 않아도 완고하게 남북을 가로지른 선
쓱쓱 지워버릴 지우개 하나 사고 싶었을까
끝내 풀지 못한 바램은 여전히 삼팔선에 구겨져 걸려 있고
해마다 어김없이 오는 유월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어린 오빠의 눈물을 내게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