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랑은 남는것

2009.08.10 12:02

김영교 조회 수:570 추천:39

[Ⅰ]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 아버지 장왕록(1924~1994)의 저서 서문 샘터사 사장님께는 조금 죄송하지만, 이 책은 순전히 나의 이기적인 목적, 즉, 나의 아버지 고(故) 장왕록(張旺祿) 박사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책표지에 넣고 싶은 소망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10년 전 내 마음속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1994년 7월 17일,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목성과 충돌하여 목성 아래쪽에 지구 반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린 날, 20세기 최대의 우주적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날, 내 우주에도 구멍이 뚫렸다. 속초로 휴가를 떠나셨던 나의 아버지 장왕록 박사가 바다에서 수영을 하시다가 심장마비로 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다음날 일간 신문에는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 영문학의 역사, 번역문학의 태두 장왕록 박사가 타계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 사람의 인생을 요약하기에 꽤 화려하고 인상적인 타이틀이지만,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라는 단어 석 자만큼 위대하고 화려한 타이틀은 없을 것이다. 그 해 여름 아버지와 나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인《스칼렛》의 공역을 끝내고 고등학교 영어 교과서를 공동 집필하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두 시간 전쯤 아버지는 속초 시내에서 집으로 전화를 하셔서 내게 말씀하셨다.“내일 비행장에서 출판사로 직접 갈 테니까 3시에 거기서 만나자. 같이 11과 작업해야지.”그것은 이제는 다시 들을 수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유언이 되었다. 아버지가 가시고 나서 5개월간은 내 생애 가장 힘든 시기였다. 슬픔과 상실감으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아버지 대신 팀의 대표 저자가 되어 교과서 작업을 계속했다. 교과서는 다른 책과 달리 교육부에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심사를 통해 합격, 불합격 판정이 나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합격해서 아버지 이름을 다시 한 번 저자로 책의 표지에 넣어드리고 싶었다. 하루에 겨우 한두시간씩 자면서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 끝에 책 세 권을 완성했고, 그리고 합격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아버지의 이름을 표지에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이 교과서 저자가 될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였다. 나는 교육부에 찾아가서 담당 편수관에게 빌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실제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빌었다. 이 책의 반 이상은 우리 아버지가 쓰신 거라고, 꼭 공동 저자로 이름을 넣게 해 달라고. 아버지가 정리하셨던 자료, 아버지의 친필이 적힌 원고까지 증거로 보여 주면서 간곡히 부탁했다. 그러나 죽은 사람에게는 통지나 연락을 할 수 없다는 '편의적' 이유를 내세워 아버지의 이름을 책에 넣을 수 없다는 편수관의 입장은 완강했다. 그야말로 달걀로 바위 치기였다. 결국은 쫓겨나다시피 해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내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죽은 사람 그렇게 홀대하면 못쓴다고, 누구나 어차피 죽게 마련인데, 죽었다고 해서 멀쩡히 책 써 놓고도 표지에 이름도 못 내면 이 세상 허무해서 어떻게 사냐고. 사람은 오직 죽었다고 해서 그렇게 쉽사리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고, 그렇게 사라져서도 안 된다고.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살아 있는 사람들이 통상 사용하는 미약한 방법으로 '통지나 연락'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기억과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라고... 어디, 장왕록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난 지 5년, 아니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꼭 보여 주겠다고...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자식 두어 무엇 하나, 죽을 고생하고 자식 키우셔서 생전에 보시지 못한 자식 덕, 돌아가신 후에라도 꼭 한 번 보여 드리겠다고. 그래서 이 책은 어쩌면 나의 '두고 보자'식의 오기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이제 그런 오기는 많이 누그러졌다. 아니 아예 없어졌다. 그 편수관의 이름도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이제 아버지를 생각하면 서슬 퍼런 오기보다는 고요한 평화가, 가슴 찢어지는 상실감보다는 잔잔한 그리움만 마음속에 떠오른다. 아버지가 전공하시던 작가 헨리 제임스의《귀부인의 초상》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병약하고 못생긴 랠프 타쳇이 사랑하는 친척 여동생 이사벨로 하여금 자기 유산을 대신 받게 하지만, 바로 그 유산 때문에 이사벨은 잘못된 배우자를 선택하게 되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다. 이에 통한을 느끼며 랠프는 임종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 이사벨에게 말한다. “이사벨, 결국 고통은 사라진다. 그러나 사랑은 남는다.” 그렇다. 육신은 사라지지만, 결국 추억은 남고, 그 추억은 오기와 분노를 이기고 사랑으로 영원히 남는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다수 아버지가 생전에 출판하셨던《가던 길 멈추어 서서》(우석출판사, 1989)라는 수필집에서 발췌했고, 그 외 신문이나 잡지에 기고하셨던 글들을 몇 개 더 보탰다. 이번에 이 책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의 글들을 다시 읽고 새로운 감회를 느꼈다.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 실수담, 친지분들과 학생들과의 사사로운 일상의 글들 모두에서 아버지의 명민하고 선량한 성품이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우리 형제들은 늘 아버지의 89세 미수 잔치를 꿈꾸며 살았다. 아무리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삶이라지만, 일흔 살로 돌아가실 때도 20대 청년 같은 몸과 에너지를 자랑하셨던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가실 것은 정말 꿈도 꾸지 못했다. 여섯 자식 중 그 누구 한 명도 떠나시는 곁을 지켜 드리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은 길에서 앰뷸런스를 볼 때마다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저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그래도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구나, 혹 이 세상을 떠나신다 해도,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있겠구나, 하는 부러움이었다. 영국작가 새뮤엘 버틀러는 ‘잊혀지지 않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랑은 남는 것, 추억 속에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는 아버지는 우리들의 마음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 영혼도 아주 큰 소리로 말하면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 생전에 못한 말을 나는 이제야 목청껏 외친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 세상에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끝으로, 10년 전 교육부 편수관의 논리를 따르자면, '연락, 통지'도 못하는 죽은 사람의 책이니 팔리지 않을 줄 뻔히 알면서, 그래도 흔쾌히 아버지의 10주기 추모 기념으로 이 책의 출판을 허락해 주신 샘터사 김성구 사장님, 그리고 정성스럽게 책을 만들어 준 오연조, 박경아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누구나 결국 이 세상을 떠나게 마련이지만,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이라는 걸 믿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는 것 같아 외롭지 않고 마음 든든하다.                                                                       2004년 6월 12일                                                                     서강대학교 인문관에서                                                                                장 영 희 [Ⅱ]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여러분은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여 도움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말을 하십시오” <에베소서 4:29> 수업 준비 때문에 성경을 들추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말이다. '이로운 말, 듣는 이에게 기쁨을 주는 말' ―내가 하는 수많은 말 중에 어느 정도가 그런 말에 속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주변에서도 어디를 가나 함부로 생각 없이 내뱉는 말, 누구에겐가 아부하려고 하는 말, 천박한 말, 자극적인 말, 폭력적인 말, 남을 모함하고 해코지하려는 말이 난무한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은커녕 들어서 불쾌한 말, 의심이 가는 말, 입에 발린 말, 말도 안 되는 말만 자꾸 들린다. 하지만 남 탓할 것 하나 없다. 매일 살아가면서 무심히 내가 한 말이 남의 마음에 비수가 되어 꽂히기도 하고, 쓸데없는 말,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놓고 두고두고 후회하기도 한다. 간혹 이제 내 삶이 다 하고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내 생애 마지막 말, 즉 나의 유언이 된다면 어떤 말을 할까 생각해 본다. 모르긴 몰라도 고르고 골라 좋은 말, 예쁜 말, 유익한 말, 누군가의 마음에 깊이 남을 수 있는 말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말을 통한 자기표현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의 유언은 무얼까, 문득 궁금해져서 일부러 찾아 본 적이 있다. 의식적으로 준비해 두었다가 한 말인지 아니면 어쩌다가 마지막 말이 되었는지, 게다가 정말 그것이 마지막 말이었는지, 여러 가지 의구심이 생기지만 그래도 통설로 알려진 바로 몇 개의 유명한 유언이 있다. 예컨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써서 인간애를 주창한 해리엇 비처 스토 부인은 자신을 돌봐 주는 간호사들에게 "사랑합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빨간 무공훈장≫을 쓴 스티븐 크레인은 자기 죽음의 순간을 마치 중계방송하듯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넘게 마련인 경계선에 도달했을 때,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다. 좀 졸리고, 그리고 모든 게 무관심해진다. 그냥 내가 지금 삶과 죽음 중 어느 세계에 있는가에 대한 몽롱한 의구심과 걱정, 그것뿐이다.” 19세기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지금 들어가야겠다.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다"고 말했고, 마찬가지로 19세기 미국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임종시 이모가 "죽기 전에 하느님과 화해해라”라고 말하자 "내가 언제 하느님과 싸웠는데?"하고 반문했다. 작가들의 유언 중 가장 유명한 말은 괴테의 "좀더 빛을"이라는 말일 것이다. 작가 자신들의 유언은 그렇다 치고, 영미 문학작품 속에서 가장 유명한 유언은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오지≫에 나오는 커르츠가 한 말이다. 원주민을 계몽하고 문명을 전한다는 위대한 명분을 갖고 '암흑의 오지' 콩고로 간 커르츠는 결국 상아와 권력의 유혹에 빠져 타락하고, 인간 속에 내재해 있는 탐욕과 위선에 대해 "끔찍하다, 끔찍해 (horror, horror)"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작중 인물의 유언은 헨리 제임스(Henry James, 1843~1916)의 ≪여인의 초상 The Portrait of a Lady, 1881≫에 나온다. 생기발랄한 22세의 미국 처녀 이자벨 아처는 부모가 죽고 난 후, 런던에 사는 친척 타쳇씨 집에서 살게 된다. 타쳇의 아들 랠프는 병약한 몸으로 이미 죽음을 예기하고 있지만, 이자벨에게 깊은 관심을 가진다. 이지적이면서도 상상력이 넘치는 그녀가 좀더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그는 자기가 상속 받을 유산의 절반을 준다. 이자벨은 미국의 실업가 인 굿우드와 영국 귀족 워버튼 경의 구혼을 거절하고 이탈리아에서 자유롭게 예술적 삶을 즐기는 오즈몬드와 결혼한다. 그러나 이자벨은 곧 자신의 결혼이 중매인 멀 부인과 오즈몬드가 돈을 노리고 꾸민 책략임을 알게 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랠프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영국으로 온 그녀는 다시 오즈몬드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랠프의 권유도, 다시 구혼하는 굿우드도 뿌리치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의붓딸 팬지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간다.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삶을 꿈꾸던 이자벨은 결국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결정에 책임지고 사랑을 줄 줄 아는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랠프는 자신이 유산을 나누어 준 것이 화근이 되어 이자벨이 불행해진 데 대해 통한을 느낀다. 죽어 가는 그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그를 위해 대신 죽을 수 있다고 흐느끼는 이자벨에게 랠프는 말한다. "이자벨, 삶이 더 좋은 거야. 왜냐하면 삶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죽음은 좋은 거지만 사랑이 없어. 고통은 결국 사라져. 그러나 사랑은 남지. 그걸 모르고 왜 우리가 그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삶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있고, 그리고 너는 아직 젊어……." '너무나 많은 것이 있는' 삶, 사랑이 있는 삶을 나는 매일 쓸데없는 말,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 진실이 아닌 말로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무리 큰 고통이라 할지라도 고통은 결국 사라지지만, 그러나 사랑은 남는 것… 내가 사라져버린 후에도 이 지상에 남을 수 있는 사랑을 만들기 위해 오늘 무슨 말, 무슨 일을 할까.                                                                       2005. 3                                                        ≪ 문학의 숲을 거닐다 ≫ ● 張英姬 (1952~2009)   연  보      ․  서울사대부고 23회 졸업(1971)    ․  서강대학 영문과 졸업(1975)    ․  뉴욕 주립대학 영문학박사 학위 취득 (1985)   번역서      ․ <종이시계> <톰소여의 모험> <이름 없는 너에게> 외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살아 있는 갈대> 외       부친 故 장왕록 박사와 공역 다수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2000)   ․「문학의 숲을 거닐다」(2005)   ․「생일」「축복」(2006) : 영미시 해설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2009) ♬~ Puccini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 Joshua Bell, vi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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