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시인 강의 발췌

2009.08.15 14:26

김지영 조회 수:315 추천:37


“한국인의 근본적인 정체성 속에는 노래와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한국인에게는 시가 펄펄 살아있다. 요즈음 세계 속으로 퍼져나가는 한류의 깊은 근원에는 우리네가 노래와 춤을 즐기고 시를 사랑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 - 황동규 모교 명예 교수님 말씀이다.

황동규 시인은 35년동안 모교 인문대 영문과 교수로 계시다가 6년전 은퇴하셨다. 이제는 자유롭게 여행도 하시고 국내외에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문학 이야기, 인생 이야기를 나누신다. 7월 27일 서울대 미주센터와 서울대 남가주 총동창회가 마련한 문한 강연에서 들려주신 말씀이다.

- 문학이란 유려한 문장이 아니다. 쓰고싶지 않더라도 쓰지않고는 못배겨서 쓰는 것이 진정한 문학이다. 문학은 삶의 진실에 약하다. 어쩔수 없이 쓰게되는 삶의 진실, 그것이 문학이다.

- 미켈란젤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최고의 문학적 소양을 갖춘 미술가다. 바티칸의 씨스틴 채플 (Sistine Chapel)에 있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벽화를 보라. 예수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순교한 예수의 제자들 - 거꾸러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베드로 그리고 산채로 가죽이 벗겨저 죽은 바돌로뮤 - 그들의 표정은 지극히 담담하다. 그렇게 지독한 고통을 받고 죽어간 그들에게 최후의 심판에서 그들이 받을 영생, 영화, 영광이 환호작약할 일이아니다. 그들에게는 고통이 삶의 진실의 일부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런 인간적인 표정을 그려 주는 것이 삶의 진실에 충실한 것이다. 그것이 미켈란젤로의 높은 문학성이다.

- 세익스피어의 작품도 마찬가지로 삶의 진실을 보여준다. 그의 희곡에 나타나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눌수있다. 중세적 낭만과 도덕을 가진 사람과 르네상스적인 현실적 가치를 가진 사람. 오델로, 햄릿, 리어왕은 전자에 속하고, 이아고, 햄릿의 숙부, 그리로 리어왕의 딸들 (막내 제외)은 후자에 속한다. 세익스피어 자신도 후자에 속하는 이재에 밝은 르네상스 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쓴 희곡에서는 세익스피어는 결국 전자에 해당하는 인물들에게 동정적이다. 즉 그는 삶의 진실에 충실해서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었다.

- 토마스 만의 마의 산 (The Magic Mountain)의 결투 장면을 보자. 독일 군국주의를 지지하는 독일인과 휴매니즘을 신봉하는 이탈리아 인이 결투를 벌린다. 독일인이 결투를 신청했기 때문에 이탈리아 인이 먼저 총을 쏠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 인간주의자는 어찌 같은 인간에게 총을 쏠수 있게느냐면서 하늘을 향해서 총을 쏜다. 군국주의자 독일인은 쉽게 상대방을 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총을 쏘지 않고 하늘에 총을 쏜 상대방에게 총을 쏠 수없다. 그렇다고 하늘을 향해서 쏘면 상대방을 따라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그 독일인의 선택은 자신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이었다. 그것이 인간적인 삶의 진실이다.

- 한국인에게 문학은 살아있다. 한국에 있는 한국인 뿐만 아니라 해외의 한국인에계도 한글 문학이 살아있다. 한국인 보다 수가 많은 인도인, 중국인, 필리핀인들, 그들이 우리 교포들 처럼 한글 한국어 문학을 이어간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 한국의 소설계는 일본의 소설에 점령당했다. 무라까미 하루끼의 최신작 판권을 한국의 출판사끼리 경쟁해서 13억을 주고 사온단다. 그리고 요즈음 잘 팔리는 한국의 소설도 일본풍이다.

- 그러나 시만은 다르다. 한국의 시는 펄펄 살아있다. 일본의 시단보다도 한국의 시단이 훨씬 더 활발하다. 일본은 사소설이 발달해서 시의 영역 점령했다. 한국의 시가 강인하게 살아있는 것은 한국인이 노래를 사랑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체성 속에는 가무를 즐기기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있다. 그것이 오늘날 한류가 세계속으로 뻗어가는 근원이 된다.

- 글을 쓰다가 처음에 생각한 대로 가지 않고 엉뚱하게 방향이 변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삶의 진실이 그렇게 인도한다. 방향이 변한 글이 더 좋은 글이 될 확율이 높다. 그것이 삶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 “즐거운 편지” - 고등학교 삼학년 때 쓴 시다. 본인은 대표시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남들이 모두 그렇게 말하니 대표시가 되었다. 그 때 어떤 연상의 여인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이 영원하다는 정석을 깨고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라는 실존주의적 언어를 썼다. 그러나 사랑을 영원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배어있다. 그것이 삶의 진실이다.

- 노벨 문학상, 거기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주면 받는 것이지 그것을 받기위해 문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시인에게는 노벨상보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시를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즐거운 편지 (전문)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2009 8월 15일

어쩔수 없이 쓰게되는 삶의 진실 – 그것이 문학이다.  
서울대 미주센터 황동규 시인 강좌 후기

2009년 07월 29일 (수) 21:52:00 Acropolis Times  Editor@AcropolisTimes.com  


<김지영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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