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소년이 일깨운 행복한 사람

2005.09.16 02:05

김영교 조회 수:750 추천:143

귀성(歸省)객의 물결은 도로마다 넘쳐 나라 전체가 비좁아 공중에 길을 내야 숨통이 트일 것 같았던 것이 그 때 추석 풍경이었다. 꽤 많은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선산은 초록을 힘껏 발산하고 있었다. 지친 눈은 시원함을 느꼈고 가을 햇살이 따스해 그 지형이 더 평화롭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마음을 푹 내려놓고 등을 햇볕에다 기댔다. 편안함에 느슨하게 빠져들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편안함이었다. 그 선산 샛길 가에 풍북 초등학교가 있어 화장실 사용이 허용되어 다행이었다. 방향을 잘 몰라 두리번거리는 우리 일행이 한 천진스런 어린 학생의 작은 선행을 만난 것이 가슴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슬리퍼까지 내주면서 화장실 문 앞까지 안내 해준 친절에서 무공해 시골 인심을 본 것 같아 가슴이 찡했다. 반듯하게 생긴 그 소년은 손을 씻고 나오는 우리를 기다렸다는 듯이 봉지에서 부스럭 소리를 내며 먹음직스럽고 수염이 붙은 불그스름한 시골 고구마를 끄집어 내 주었다. "어머나" 함성을 지르는 내 앞에 "하나 더 드실래요?" 하고 고구마를 또 내 밀었다.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다. "너 예수 믿지?"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눈은 초롱, 옷차림새도 깨끗했다. 소년의 따뜻한 고구마 마음이 냉랭한 나의 가슴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 완고한 유교 마을에 오기까지 복음이 얼마나 많은 험난한 산을 넘어야 했을까하는 확인이 아픔으로 번져왔다. 고구마는 내가 선호하는 건강 식품중의 하나임을 그 소년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웃에게 퍼주고 나누어 먹는 것을 부모를 통해 배웠고 주일학교에서 배웠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나가는 낯선 행인에게까지 먹을 것을 건네주는 정이 바로 시골이 병들지 않게 지켜주는 샘물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하교후의 넓은 운동장은 적막 하리 만큼 조용했다. 그러나 나의 가슴은 따뜻함으로 댚혀지기 시작했다. 떠나는 우리를 향해 텅 빈 운동장 한 모퉁이에서 손 흔들며 서 있던 그 소년, 그 모습 뒤로 활짝 핀 코스모스가 여기 저기 무더기로 소년을 벗 삼아 맑은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정경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왜 그 시각에, 그 소년은, 그 장소에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학교를 지키는 사찰의 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항할 수 없는 피곤이 한강철교 무게로 눈꺼풀을 눌렀다. 차가 흔들릴 수록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넓은 운동장이 코스모스 꽃밭이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꽃밭, 소년이 손 흔들 때 마다 수 천 개의 코스모스는 꽃이불이 되어 펄럭이고 있었다. 꿈속이었다. 현실이 꿈속으로 연결되다니 이상한 체험이었다 언제나 돌아가 안길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몸은 이민의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힘들게 서있지만 마음은 한 순간도 수많은 고구마 소년들로 가득한 고향을 멀리한 적이 없다. 가슴에 늘 살아있는 고향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주고 있다. 자기의 근본이나 문화를 떠나 독존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은 <관계> 계승에 적극 참여하는 일이다. 이 혈통적인 <뿌리 관계>가 생명을 이어주는 힘이라는 이 일깨움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고향은 어머니요, 기다림의 둥지이기 때문이다.         언제던지 마음만 먹으면 돌아가 안길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몸은 이민 토양에 힘들게 뿌리를 내리고 서있지만 마음은 한 순간도 수많은 고구마 소년들로 가득한 고향을 멀리한 적이 없다. 가슴에 늘 살아있는 고향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이어주고 있다. 자기의 근본이나 문화를 떠나 독야청청 살지 않는 것은 <관계>에 적극 참여하는 일이다. 이 혈통적인 <관계>가 생명을 이어주는 힘이라는 이 일깨움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고향은 어머니요, 기다림의 둥지이기 때문이다.     고구마만 보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고향 소년의 모습, 뿌리를 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물며 더 좋은 본향이 있는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게다. 우리는 <순간>이란 집에 잠시 머물다 본향을 향해 가는 행복한 순례자란 생각에 가슴이 마구 떨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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