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4월10일(월) 자 미주 중앙일보에 실린 김영교(11회) 동문의 기사를 퍼 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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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김영교 시인…병마의 고통 속에서 '시' 를 만나다 

컬럼비아대 유학 중 결혼, LA 와 전업주부로 생활
50대에 림프암 말기 진단, 3년 전 엔 유방암 수술도

94년 투병 중 시인 등단, 시집 8권·수필집 4권 내 

장학회 운영·후학양성 열심 


"암 통해 감사·은혜 깨달아" 

 

암 투병 중이던 50대 중반 시인으로 등단해 고희를 넘긴 지금까지도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김영교 시인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눈 맑은 노시인과 마주 앉았다. 화가 모딜리아니 연인 잔 에뷔테르를 연상시키는 가늘고 긴 목을 가진 시인은 닿으면 베일 듯 섬세한 그녀의 시와는 달리 무척이나 털털하고 소박했다. 김영교(76) 시인이다. 지천명 넘어 두 번이나 불쑥 들이닥친 암이란 녀석 덕분에 평탄치 않은 시간을 통과했을 터인데도 그녀는 그늘 한 점 없는 아이처럼 유쾌하고 밝은 에너지로 충만했다. 덕분에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부터 암투병과 시세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든 그녀와의 오랜 대화 혹은 수다는 꽤 즐거웠다. 

#유학생에서 주부로 

경남 통영이 고향인 그녀는 서울사대부고를 거쳐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은행 국제부에서 잠시 근무하다 1965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공부했다. 당시 미국 유학생들은 미 정부에 폐결핵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X레이 원본 필름을 들고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는 흑백 다큐멘터리 같은 이야기보다 더 관심을 끈 것은 그녀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 유학 와 첫 여름방학 때 샌프란시스코 친구 집에 갔다 유학생인 남편을 보고 첫눈에 반해 학교로 돌아가는 걸 포기하고 1년여 열애 끝 결혼에 이르렀단다. 꽤나 21세기스러운 20세기 러브스토리 속 여주인공이 당시로선 보기 드문 강단진 신여성 캐릭터인 것 같다고 농을 건네자 그녀가 웃는다. 

"뜨거운 청춘이었으니까요.(웃음) 학업을 포기한 걸 후회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덕분에 듬직한 남편과 멋진 두 아들 만날 수 있었으니 오히려 득이죠.(웃음)"

결혼 후 1969년 LA로 이주해 시작한 남편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말 그대로 그녀는 '부잣집 사모님'이 됐다. 두 아들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평범한 생활이었다. 

#암 환자에서 시인으로 

그러나 꽃길만 걷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녀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1993년 임파선 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당시 그녀 나이 54세. 대학 때부터 쳐온 테니스가 수준급이고 싱글 골퍼에 당시 수영까지 배우는 등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그녀에게 위암 선고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당시 다른 증상은 없었어요. 살이 좀 빠지긴 했는데 수영 때문에 그런가보다 했으니까요. 그러다 남편이 출장을 간 날 시어머니 댁에 갔다 새벽에 피를 토하고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어머니 가 절 살리신 거죠."

그날로 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7시간의 수혈을 거쳐 위의 3/4가량과 비장까지 절제하는 큰 수술을 했다. 수술 후 다음날이 돼서야 깨어난 그녀는 수술 후 절제한 위 때문에 한 숟가락만 먹어도 바로 토했다. 먹고 토하고, 토하고 먹는 일상이 반복됐다. 어디 이뿐이랴. 이후 2년간 30여 차례가 넘는 독한 키모테라피도 견뎌야 했다. 그 고통 속에서 한줄기 빛처럼 그녀를 구원해 준 것이 바로 시였다. 

"병상에 있으며 나를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됐죠. 그러면서 살아 있는 것에, 사랑하는 이들이 옆에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을 기록하고 싶어 일기를 쓰게 됐어요."

펜을 들 힘도 없어 하루에 몇 줄씩 써내려가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렇게 꾸준히 쓴 그녀의 병상일기는 1995년 시집 '우슬초 찬가'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그녀의 문단 데뷔는 이보다 1년 앞선 1994년 '자유문학' 4월호에 시 '이민 우물'을 발표하면서다. 

"한국에서 등단한 시인이기도 한 큰 오빠가 미국에 병문안 왔다 제 습작 노트를 보고 등단을 권유했죠. 분명 투병 중인 이들에게 삶의 의지와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오빠의 말에 힘입어 등단을 했어요." 

병마가 가져다 준 '선물'은 비단 시집뿐만이 아니었다. 

"암에 걸리기 이전까진 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하며 살았죠. 그러나 병상에서 진정한 저를 발견하면서 그 부자연스러운 겉치레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니 삶 앞에 겸손하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됐습니다. 축복이며 은혜였죠."

건강이 회복되자 그녀는 왕성한 창작의지를 불태워 지난해까지 총 8권의 시집과 4권의 수필집을 발간했다. 또 해외 문학상(2005), 노산 문학상(2010), 미주 문학상(2014), 올해의 재미시인상(2016) 등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미주문인협회 부이사장 및 재미시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는 등 미주 문단활동에도 열심이었다. 그런가하면 1999년엔 시어머니와 자신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딴 '귀영장학회'를 만들어 장학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암을 통해 행복을 배우다

이후 그녀는 가디나 글사랑 창작교실과 사우스베이 평생대학에서 시 창작 지도를 하는 등 후학양성에도 열심이었다. 그러다 2014년 두 번째 암이 들이닥쳤다. 정기검진에서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소리가 절로 나왔을 듯싶었다. 

"뭐 담담했어요. 그래도 그때라도 알게 돼 천만 다행이다 싶었죠. 그러면서 암에게 말했죠. 나 림프암도 이겨낸 여자야라고.(웃음)"

수술을 통해 왼쪽 가슴을 부분절제 했고 1년간 방사선 치료도 받아야 했다. 

"분명 힘든 시간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제게 암은 축복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고 이전엔 몰랐던 감사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됐으니까요."

일흔 중반에 만난 암과 동행한 고단한 여정이었지만 그녀의 시작(詩作) 열정은 꺾을 수 없었다. 2012년 출간된 수필집 '꽃구경'에서 그녀는 '글을 쓰고 싶은 열정과 꿈이 가늘게 흔들리던 나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주지 않았나 뒤돌아보게 된다. 눈물도 많았고 외로운 날도 많았다. 밤잠 설치며 내 몫의 고통을 잘 감당하도록 참을성 없는 내가 다듬어져 가고 있었다. 은혜였다'고 고백한다. 그렇게 밤잠 설쳐가며 쓴 시들을 모아 지난해 여덟 번째 시집 '파르르 떠는 열애'를 펴냈다. 시집 속 수 많은 시들 중 서울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도 게시돼 서울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쉬어가는 의자'가 눈길을 끈다.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이제 앉기로 한다/(중략)/내리막길이 다리 뻗고 앉으니/맑은 바람이 앉고/햇살이 퍼질러 앉고/마음을 지나가는 고마운 생각들/무리지어/어르며 흔들며/아삭아삭 앉는다' 아마도 이 시는 삶을 향한 수줍은 떨림과 치열한 열애 사이를 건너온 노시인의 자기고백인 동시에 세상 모든 약한 것들에게 내미는 따스한 위로이며 응원일지도 모르겠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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