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에 대하여 / 김영교


소금 때문에 

속살 싱싱한 배추밭은 기 죽어

한 참을 엎드려 침묵한다


머리 푼 빨간 매운 양념이 막무가네로 몸 섞을랴 치면 

그 때는 아우성이다

손끝이 가슴과 힘을 모아 달래고 어루만지는

절묘한 배합의 껴안음에 누글어지는 한 나절


숙성되어야 김치가문으로 신분상승 

그 날을 위해

참는다, 아침이슬 영롱함도 별밤도 기어이 잊는다

더디어 자신을 버린다 그 때 이웃과 손잡는 생

엎드린 사귐이 그제서야 맛대로에 진입한


연한 피부 밑에 뻣뻣한 진흙 고집 그대로 

털어내지 못한 저 들판 거친 바람이 아직 이 몸속에 

숨 죽지 않아 소금 따로 양념 따로 

맛 부재의 사람 김치, 나 


기성복 김치가 판을 치고

조미료가 입맛을 부추기는 세상 멀리

투명한 유리병에 엎드린 채로

그 계절이면 태고적 식탐과 뜨겁게 만나 

숨 죽어서까지 바치는 저 헌신을

먹어치우는 이 몰입의 염치

  

자신을 버릴 때 일어서는 맛 맛 맛

이천년 죽어서 사는 너

드디어

밥천국을 간다 



*이태영동창 댁 2017년 김치행사99F11F335A1BB73525F5C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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