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은 2014년 고원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침묵의 메아리”를 단편으로 개작한 작품입니다. 

결말을 오픈했기에 마무리에 맞추어 줄거리가 약간은 변형되었습니다.

 

일간신문을 대충 훑다가 문예면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거기에는 ‘침묵의 비밀’이라는 단편소설이 실려 있었는데, 작가의 사진이 강미경이었기 때문이다. 필명이 강 미셀로 적혀 있었으나 그녀는 분명히 강미경이었다. 30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해주는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강미경이 소설가가 되었단 말인가?’

한국 문단에서 뽑은 올해의 최우수 작품에 강미경의 소설이 선정되었었다. 그녀의 사진을 보는 순간, 돌멩이 하나가 퐁당 하고 해주의 가슴속으로 뛰어들어 파문을 일으켰지만 물결은 곧 잔잔해졌다.

 

강미경····. 그녀는 한때 해주가 애절하게 사랑했던 남자인 이민우의 아내다.

‘이민우가 강미경을 소설가로 만들었나? 소설가 아내를 두었다는 것도 그의 이미지에는 도움이 될 테니까.’

대학 시절, 이민우는 어릴 적 꿈이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고전문학에 관해서 특별히 조예가 깊었다. 조선 시대 시조들을 줄줄 외웠으며 작가들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한민족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를 해주는 존경했다. 그에게는 학자가 딱 어울렸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이민우는 어디까지나 돈을 쫒는 사업가였으며 이재에 밝은 현실적인 남자였다. 그가 해주를 버리고 강미경을 선택한 사실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아프고 괴로웠던 추억들이 이제는 모두가 다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었다. 헤어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해주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를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은 깨달았다. 참 우습게도, 해주는 이민우가 떠난 것까지도 감사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약력을 보니 강미경은 오래 전에 일간신문에서 실시하는 신춘문예에 당선을 했고, 문학상도 탔었다. 약력 맨 끝에는 ‘버지니아 거주’ 라고 적혀 있었다.

‘엘에이에서 언제 버지니아로 갔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혹시 우리의 삼각관계에 얽힌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고 해주는 재빨리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아니었다. 사실 삼각관계이긴 했으나 소설을 쓸 만한 소재는 아니다. 한 남자가 변심하여 다른 여자한테로 가버린 지극히 흔한 스토리였으니까. 그러나 소설엔 처음부터 상상조차 못 한 사건이 전개되고 있었다. 해주는 긴박감에 휩싸여 숨을 죽였고, 드러나는 내용에 빨려 들어갔다.

 

강미경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강애경, 그녀는 25년 전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고, 해주와는 친구 사이였다. 애경이를 따라 교회에 나갔다가 해주도 이민우도 자연스럽게 강미경을 만나게 되었다.

강미경을 처음 보는 순간, 해주는 깜작 놀랐다. 애경이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쌍까풀이 진 깊은 눈, 그리고 오뚝한 콧날과 갸름한 얼굴이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유난히 흰 피부는 그녀를 한껏 더 돋보이게 했고, 갈색의 윤기 나는 긴 머리 또한 조화를 잘 이룬 모습이었다. 키도 크고 늘씬했다. 곁에서 애경이가 뭐라고 한참 수다를 떨고 있었으나 그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경의 언니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되었다. 그때 해주는 강미경과 이민우의 마주치는 묘한 시선을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다.

 

소설은 바로 애경이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것이었다. 놀랍게도 소설에는 실명이 그대로 표기되어 있었다. 동생인 애경의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인데, 작가인 강미경이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갖다 붙였다는 것은 실로 획기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필명이 강 미셀이니 가능한 일이었을까? 자신의 감정이 강미경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와 이제는 강 미셀로 굳어졌다는 의미일까?’

 

소설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12월의 어느 날 밤, 전화벨 소리가 정적을 깨며 요란하게 울렸다.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던 미경은 얼른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밖에는 바람이 몹시 불고 있었다. “휘이잉 휘이--잉.” 하고 유리창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가 가슴속을 헤집고 들어왔다. 갑자기 온몸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끼쳤다.

“애경이가 자살을 했어요. 천장에 목을 맸다고요.”

뭔가에 쫒기는 듯, 숨 가쁘게 뱉어내는 말이 귓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엉--엉--.” 우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애경의 남편 톰이었다. 벌떡 일어나 앉는데 무거운 둔기로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아찔함에 현기증이 났다. 애경이가 자살을 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혹시 꿈을 꾸고 있나 하고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보았으나 이어지는 톰의 말은 명확한 현실이 되어 미경의 가슴에 칼날처럼 박혔다.

“밤중에 웬 전화야?” 하고 남편이 어둠 속에서 말했다.

“톰이에요. 톰.”

미경은 부들부들 떨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남편이 얼른 일어나 불을 켜고 전화기를 뺏었다.>>

 

해주는 숨을 한 번 크게 내쉰 후, 그 다음을 읽어 내려갔다.

소설에 서술한 바에 의하면 애경은 센트럴 엘에이 지역, 어느 열악한 환경의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고, 미경은 동생의 집에 가보기는커녕 그 동네조차도 첫 발걸음이었다고 했다.

갈수록 궁금증은 더해 갔다.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최고로 비싼 동네에 살던 애경이가 이렇게 살다가 죽었다는 말인가?’

해주는 신문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허구인 소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문도 없는 입구가 입을 쩍 벌리고는 시커먼 속을 드러내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파트 건물은 꽤 높은데도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안 했고 층계는 너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애경이가 산다는 4층으로 올라가니 컴컴한 복도 양쪽으로 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마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애경의 죽음은 옆방에서조차도 모르는 듯, 삭막한 분위기는 처참할 정도로 고요했다. 어슴푸레 시야에 들어온 복도 끝이 지옥의 입구라도 되는 듯, 미경의 몸은 경직되어 갔다.

아파트엘 들어서니 천장에 목을 맸다는 애경이가 방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가슴에서부터 무릎 위까지 얇은 담요를 덮고, 얼굴을 약간 오른쪽으로 돌린 채 두 눈은 감고 있었다. 목에는 노끈의 붉은 흔적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쭉 뻗은 두 다리는 푸르스름한 색을 띠고 있으면서 약간은 얼룩덜룩했다. >>

 

문장 표현에 사실감이 살아 움직였다. 애경의 시체가 바로 해주 눈앞에 있었다. 심장박동이 빨라져 해주는 왼손으로 가슴 한복판을 쓸어내렸다.

 

<< 톰은 한참을 조용히 훌쩍거리다가 고개를 젖히며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일 끝내고 들어오니까 저기에, 저기에····.”

남편이 벌떡 일어나 저기라는 곳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고개를 들어 천장에 시선을 꽂았다. 형광등 불빛에 눈이 부셨다. 거기에는 손목만큼 굵은 파이프가 여러 개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곧고 매끈매끈한 보통 파이프가 아니었다. 납으로 만들었는지 허연 색깔에 표면이 좀 꺼칠꺼칠해 보이고 또 약간은 울퉁불퉁했다. 파이프가 천장에 딱 붙어 있지 않고 그 사이에 약간의 공간이 있었다. 히터 시스템이라 했다. 톰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내려놓으면 금세 도로 살아날 것만 같아서····.”

천장에 매달려 있는 애경을 톰은 방바닥에 내려놓고 인공호흡을 시키면서 살려보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숨은 이미 끊어진 후였다고 한다.

톰은 병원 랩에서 테크니션으로 일을 하는데 그 시간이 일정하지가 않다. 정식 직원이 아니고 병원에서 불러줘야만 하는 파트타임이라 뜨내기 신세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주로 밤에 일을 하며 요즘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휴가 간 직원들이 많아 거의 매일 일을 했다고 한다. 밤 열두 시에 일을 끝내고 행여 아내가 깰까봐 살며시 들어왔는데, 애경이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애경이가 목을 맸다는 노끈이 눈이 띄었다. 가는 나일론 줄을 여러 겹으로 꼬아서 만든 매끈매끈 윤기가 나는 아주 튼튼해 보이는 손가락 굵기 정도의 끈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빨래 말릴 때 쓰는 줄이라고 했다. 빨랫줄치고는 짧았다. >>

 

애경의 친구인 해주에게는 참으로 충격적인 줄거리였다. 허구로 꾸민 소설이라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름까지 실명을 사용해 더 그랬다. 갑자기 활자가 뒤엉켜 해주는 눈을 감았다. 한참 동안 눈을 감은 채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니, 뛰는 가슴이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그다음은 주인공인 강미경이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줄거리가 이어졌다. 네 살 차이로 태어난 그들 자매의 가족관계가 서술되어 있었다.

물론 소설 밖의 강미경과 애경이도 네 살 차이다. 생김새를 묘사한 부분도 실제와 같았다. 어릴 적부터 성격이 워낙 못돼 부모의 속을 썩이며 거기다가 판별 능력까지 없는 바보 동생을 둔 것이 너무 부끄러워 미경은 차라리 애경이가 죽어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해주는 깜짝 놀랐다.

‘항상 동생을 감싸고 생각만 해도 애처로워 죽겠다는 듯이 눈물까지 글썽이던 강미경이 아니던가? 아! 이건 소설이잖아. 왜 나는 소설을 자꾸만 현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허구인 소설이 해주가 알고 있는 현실과 너무나 똑 같았다. 교통사고로 부모가 죽은 후 유산 문제의 갈등이 잘 그려져 있었다. 애경이한테 유산을 물려주면 하루아침에 탕진을 해버릴까 염려한 부모는 모든 것을 큰딸인 미경에게 맡겼다. 둘째 딸의 모든 것을 큰딸에게 위임한 것이었다. 몰론 큰딸을 그만큼 믿었고, 미경 역시 동생의 일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각오를 한 것도 잘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유산 내놓으라는 동생의 행패에는 당할 수가 없었다. 집으로 찾아와 돈 내놓으라며 가재도구를 때려 부수는 장면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돼 있었다. 옆집 사람이 경찰까지 불렀으나 동생의 손에 차마 수갑을 채울 수는 없었다고 서술했다.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결국은 애경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었다고 강미경은 소설에서 밝히고 있었다. 해주가 거의 알고 있는 그들 자매 이야기였으나, 유산을 분배한 사실은 몰랐다.

원하는 돈을 손에 쥔 애경은 뉴욕으로 갔었다. 애경이와 소식이 두절 된 것이 아마 그때인 것 같다. 소식이 없는 것이 해주에게는 차라리 더 좋았다. 그녀가 이민우의 처제라는 인간관계에서도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잊고 살다가, 결국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돈을 다 탕진한 2년 후에 애경은 언니 앞에 나타났다. 동생이 결혼을 했다면서 남편이라는 사람과 함께 미경을 찾아온 것이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다.

 

<<이사를 했는데도 용케 집을 찾아왔었다. 애경은 너무 살이 쪄 몰라볼 정도였다. 대책 없이 마구 먹어대던 어릴 적 모습이 생각 나 미경은 진저리를 쳤다. 이제 겨우 스물아홉인데, 완연한 중년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동생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반면에 남편인 톰은 동생보다 10년이 위라는데도 도리어 애경이보다 더 젊어보였다. 그는 유난히 하얀 피부에 짙은 눈썹이 맨 먼저 눈에 띄는 백인이었다. 톰은 완벽한 한국말을 했다. 놀라서 물었더니 어머니가 한국 여자이며 한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는 고등학교 때 왔다고 했다. 뉴욕에서 만나 넉 달 전에 결혼을 했고, 그곳에서 살다가 언니가 보고 싶어 엘에이로 왔다는 것이다. 동생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언니, 내가 다 잘못했어. 용서해 줘. 앞으로는 그런 일 절대로 없을 거야. 이제 나도 결혼했으니까 마음잡고 잘 살게.”

이상하게도 미경은 아무 감정이 일지 않았다. 동생이 “언니! 언니!” 하고 소리 내어 흐느끼면서 자신을 껴안는데도 목석을 대하는 것같이 아무 느낌이 와 닿지 않았다.

톰은 아내가 울고불고 야단인데도 놀라지도 않고 으리으리하게 잘 꾸며진 실내를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높은 천장으로부터 길게 늘어진 샹들리에의 불빛을 눈이 부신 듯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그날은 쌀쌀맞은 언니를 원망할 겨를도 없는 듯이 눈물만 쏟아놓고 돌아갔지만 미경은 곧, ‘또 돈타령을 하겠지.’ 하고 애경의 반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다음 날 바로 전화가 왔었다. 생각했던 대로 역시 돈 이야기였다. 미경은 ‘또 시작이로구나.’ 하는 후끈한 덩어리를 품고 고민에 빠져 밤잠을 못 잤다. “언니가 안 도와주면 나 죽어버릴 거야.” 하고 전화를 탕 끊은 동생의 음성이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남편은 죽든 말든 인연을 끊어버리라고 강력히 말했다.

 

두 자매는 실명 그대로 표기가 되었으나 어느 한 곳에도 이민우의 이름은 거론되지 않았다. 계속 남편이라고만 호칭을 했는데 톰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이민우를 그대로 그려놓아 해주는 쓴웃음을 흘렸다. 하얀 피부와 짙은 눈썹, 뚜렷한 이목구비 등····. 여고 시절, 이민우를 처음 봤을 때 혹시 외국인인가 하고 잠시 혼란을 겪었던 사실이 새삼 뇌리를 스쳤다.

 

이민우를 안 다음부터 햇빛에 반짝이는 이파리 하나도 아름다웠고, 모든 사물이 그를 통해 비쳐졌다.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불꽃으로 인해 세상이 더 환하게 눈앞에 펼쳐졌고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태양, 밤하늘에 총총 박혀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 그리고 바람 소리조차도 그녀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가느다란 별빛 하나, 소소한 빗방울 하나에서도 감동이 느껴져 영혼까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태어난 그 자체가 축복으로 다가왔다. 촛불 한 자루가 방안에 밝음을 채우듯, 가슴의 사랑 한줌이 온 세상에 밝음을 채우고 있었다.

 

이민우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느 일요일 아침, 누가 요란스럽게 초인종을 눌렀다. 어머니랑 일하는 아줌마가 시장에 가고 없어 해주는 부리나케 대문으로 달려갔다. 키가 큰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어딘가 이국적인 인상을 풍기는 얼굴이었다. 피부도 유난히 하얬다. 그는 해주가 목표로 하고 있는 A 대학 배지를 달고 있었다. A 대학은 서울에 있는 명문으로 해주가 다니는 대전의 C 여고에서는 합격자 수가 매년 한 두 명 정도에 불과했다.

“사모님, 계셔?”

해주 어머니를 사모님이라 부르며 그는 대뜸 반말을 했다. 그리고 턱을 쳐들고 눈에 힘을 주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안 계신데요. 어떻게 오셨어요?”

그는 “나····. ” 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모님이 아침에 들르라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가 무슨 말인가를 더 계속하려는데 마침 어머니가 아줌마와 함께 집엘 도착했다. 그를 보자 어머니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반가워했다.

“내가 한발 늦었네. 미안해요. 일단 들어가요.”

아랫사람에게 항상 친절한 성품을 가진 어머니를 해주는 존경하지만 아들 같은 사람한테 너무 쩔쩔매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했다. A 법대 배지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그녀는 피식 웃었다. 어머니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지극히 예의가 발랐다. 그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하는 트럭 운전기사의 아들이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대전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운수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그 후부터 이상하게도 이민우 모습이 언뜻언뜻 해주의 머리에 떠올랐다. A 대학에 입학을 하고부터는 그와 마주치는 요행을 바라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고, 일부러 법대 건물 앞에까지 가서 서성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해주는 이민우를 만났다. 하늘이 무겁게 내려앉아 빗발이 가는 금을 그으며 흩뿌리고 있는 오후였다. 분명히 이민우였다. 하루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고 있는 것같이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우산도 없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면서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해주는 뒤를 쫓아가며 “저기요.” 하고 불렀다. 무심결에 나온 호칭이었다. 그는 계속 앞만 보고 걸었다. 해주는 바짝 다가가서 “저기요.” 하고 또 불렀다.

그가 휙 돌아보았다. 그녀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네가 여기 웬일이냐?” 하면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얼른 해주 우산 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으면서 우산을 치켜들었다. 그는 근처 빵집으로 들어갔다. 해주는 군말 한마디 없이 자석에 끌리듯 그를 따랐다.

이민우는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여 지금 3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그의 유창한 화술에 말려들어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이민우는 학교생활의 길잡이가 되어 해주를 도와주었다. 이렇게 인연이 되어 그들은 가끔 만나 저녁도 먹고 영화 구경도 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해주는 엄격한 가정에서 틀에 박힌 생활을 했다. 대학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제약받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도 맘대로 만날 수가 있어 좋았다. 대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았더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점점 그에게 빠져들었다. 매일같이 만나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이민우는 대학 입시생들에게 과외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 회사에서 장학금을 받고 있었으나 집에 생활비까지 보태야 하는 입장이라, 학교 끝난 후는 항상 학생들 공부방으로 달려가야 했다. 데이트할 시간이 충분치가 못했다. 이민우보다도 해주가 더 몸이 달았다.

 

2학년으로 접어든 어느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주위는 이미 어둑어둑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길가의 네온사인들이 하나 둘, 불을 밝히는 가운데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산을 떨었다. 그들은 둘 다 하숙방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어딜 가는지 이민우는 계속 걸었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꾹 찌르고는 묵묵히 걸었다. 한참을 걷던 그는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어디 조용한 데 없나.”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민우가 해주를 데리고 간 곳은 덕수궁이었다. 그녀는 밤에도 덕수궁이 문을 여는지 몰랐다. 불을 어슴푸레 밝히고 있는 길을 따라 청춘남녀들이 손을 붙잡고 더러는 어깨를 감싸안으며 걷고 있었다. 어두운 숲속에서도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그날 밤, 숲속에 파묻혀 있는 벤치에서 이민우는 해주에게 첫 키스를 했고, 그날을 계기로 그들의 사랑은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아침나절에 덕수궁을 향했다. 그날은 미술전시회가 있었다. 과외도 쉬고 모처럼 자유로운 주말이라 종일토록 같이 있을 수 있었기에 해주는 즐거웠다. 그림이 아닌 밑으로 내려쓴 석 줄의 붓글씨 앞에 그가 멈추었다.

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紅顔을 어듸 두고 白骨만 무첫는다

盞 자바 勸하 리 업스니 그를 슬허하노라.

옛날 글로 씌어졌지만 술술 잘 읽혀지는 시조였다.

“이 시조는 이조 선조 때, 임제라는 문인이 지은 시조인데 임제라는 본명보다 백호라는 호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지. 이건 백호가 황진이 무덤 앞에서 읊은 시조야.”

해주는 얼른 시조의 마지막 구절을 지적하며 말했다.

“여길 잘못 썼나? 슬퍼가 슬허로 돼 있네.”

그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슬퍼의 옛말이 슬허야.” 하고.

그때였다. 이민우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민우는 잠시 어정쩡한 표정을 짓다가 금세 안색을 바꾸어 반가운 어조로 인사를 했다.

“김 부장님, 오랜만입니다.”

김 부장이라는 사람은 해주에게 눈길을 주면서 “사장님 따님?” 하고 이민우에게 물었다. 해주를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인사해. 아버지 회사 김 부장님이셔.”

해주는 가슴이 철커덩 내려앉았다.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 모양 얼굴이 빨개졌다. 덕수궁을 나와서도 해주 맘은 아버지로 가득 차 천근만근 무거웠다. 시커먼 돌덩이 하나가 가슴 한복판에 얹혀 있는 듯했다. 아침부터 내려앉아 있던 하늘은 여전히 을씨년스러웠다. 광화문 가락국수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책방에도 들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그들은 르네상스로 향했다. 그 당시, 많은 대학생들이 르네상스에 드나들었다. 물론 데이트 장소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그들도 자주 그곳을 찾았다.

 

이민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음악에 묻혀 있었다. 김 부장 일행의 흘끔거리는 시선이 자꾸 떠올라 해주의 기분은 엉망이 되어갔다. 침묵의 무게가 점점 더해 가는 그때, 해주는 이민우가 잠을 자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 멍한 기분이 들며 몸의 알맹이가 다 빠져나가 버린 듯했다. 그러나 오죽 피곤하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뒤따라 그녀도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는지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자세가 편치 않아 의자에 등을 바짝 붙이려고 몸을 꼼지락거리는데, 그가 덥석 해주의 손을 잡았다.

“배고프다. 저녁 먹으러 가자.”

그는 해주의 손을 붙들고 일어섰다.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착잡했던 가슴이 금세 훈훈해져 쓴웃음이 나왔다.

‘실컷 잤어요?’ 하고 쏘아주지도 못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네. 미안해.’ 하는 한마디 말이라도 할 수 있건만 그는 암말 안 했다. 저녁 시간이 이미 지나 있었다.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이제 각자의 집으로 갈 일만 남았다. 종일을 내내 같이 있으면서 단둘이 있을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집 동네에 들어서서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주 가던 찻집을 향했다. 찻집은 텅 비어 있었다. 늘 반가워하던 주인 여자도 안 보였다. 그가 해주의 손을 꼭 쥐었다.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의자에 팔걸이까지 있어 손을 잡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자기 뺨에다 갖다 댔다. 손을 빼내려고 하는데도 그는 놓아주지 않았다. 누가 볼까봐 흠칫했다. 해주는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그의 뺨은 뜨거웠다. 이미 어두워진 바깥에는 가는 비가 불빛 속에서 빙수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색색가지의 네온사인들이 활짝 웃고 있는 불빛 환한 어두운 저녁, 저녁 비는 불빛 속에서만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찻집 입구에서 우산을 사 쓰고, 천천히 걸었는데도 어느새 그들은 집 앞까지 와 있었다. 그가 해주의 어깨를 감싸안고 돌아세우며 저기까지만 다시 갔다 오자고 했다. 그리고 다 와서는 또 돌아서고····. 그렇게 그들은 우산 속에서 여러 번을 왔다갔다 반복했다.

“해주야!” 하고 그가 불렀다. 보통, 부를 때와는 뭔가 다른 억양이었다. 불러만 놓고 잠잠했다.

“왜요?” 하고 묻는 해주에게 그는 가만히 말했다.

“너, 그냥 내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가라. 맨날 쪼물딱 쪼물딱하고 다니게”

밤이라도 새울 듯, 그렇게 한참을 왔다갔다 하다가 그는 어느 컴컴한 골목으로 해주를 밀어붙였다. 삼켜버릴 듯이 진한 입맞춤이 그녀를 덮쳤다. 거센 포옹에 해주는 가슴이 조여들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냘픈 새 한 마리가 그의 품안에서 꼼짝을 못 하고 할딱거렸다. 우산은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해주가 이민우와 자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버지의 진노는 하늘을 찔렀다. 이민우를 남자 친구로 사귄다는 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 된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민우 자체를 싫어했다. 믿음이 안 가는 놈이라고 했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소문난 바람둥이라고 엄마도 완강히 반대를 했다. 그러나 해주에게는 아무런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덕수궁 미술 전시회에서 김 부장을 만난 후, 아버지가 곧 아시리라고는 각오했지만 이리도 강력하게 반대할 줄은 몰랐다. 똑똑한 이민우이니 아버지가 어느 정도는 수용하리라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와 계속 만나고 있는 것을 눈치 챈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해주는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미국 유학이라는 불호령이 떨어진 때부터 이민우의 태도에는 냉기가 흘렀다. 감정이 현실에 따라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사실에 해주는 놀랐다. 그녀와 헤어지려고 마음을 굳힌 게 분명했다. 해주의 아버지에게 불려가 불벼락을 맞았다면 그의 자존심이 땅바닥에 내팽개쳐졌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를 그처럼 냉랭하게 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에서 다시 만났다. 이민우가 해주와 같은 B 대학에 유학을 왔기 때문이다. 사법 고시에 낙방을 해 미국으로 현실도피를 한 것이라 했다. 부모와 동생들이 자신의 어깨에 매달려 걸음조차 떼놓을 수가 없어 그 짐 덩어리를 바닥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고시에 낙방을 한 후, 유학 준비를 위해 부지런히 일을 해서 돈을 마련했고, 그리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세상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자신의 힘으로 날개를 달아 바다를 건널 수밖에 없었다고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그리고 현실의 흐름은 순식간에 물줄기를 바꾸어놓았다. 그는 그동안 해주가 까마득히 몰랐던 아버지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사업이 좀 부진하다고만 생각했지 아주 파산을 한 것은 몰랐다. 빚에 몰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채 피해 다니는 것도 몰랐다. 어찌할 줄을 몰라 울기만 하는 해주를 그는 꼭 감싸안았다. 그의 품에 안기니 모든 시련과 고통이 다 해결될 것만 같았다.

“사업의 흥망은 정한 이치 아니니? 떠나기 전 날, 어머닐 잠깐 뵈었는데, 어떻게 해서라도 학비 조달은 할 테니까 집 걱정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랬어. 아버지는 분명히 재기하실 거야.”

이민우와 사귀는 것조차도 반대하시던 아버지 어머니가 이제는 그에게 해주를 부탁하는 입장이 돼버렸다. 그러나 그 후, 해주에게는 하늘과 땅을 온통 뒤흔들어놓는 크나큰 슬픔이 연이어 닥쳤다.

심장마비로 아버지 사망이라는 비보가 날아들었고, 그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마저 저 세상으로 가버리셨기 때문이다. 불과 2년 동안에 한평생을 살아도 겪지 못할 비극을 해주는 체험했다. 허지만 그가 해주 곁에 있었기에 그녀는 비극을 딛고 일어설 수가 있었다. 부모처럼 그를 의지했고, 남편처럼 그를 믿고 따랐다. 그렇게 2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결국 해주는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겨버리고 말았다.

 

그러다가 임신이라는 커다란 고민 덩어리를 안게 되었다.

"병원에 가봐야 되겠어요."

"그러지 뭐. 임신이 확실하면 유산을 시켜야 되겠지?"

너무나 쉽게 그가 내뱉은 말이다. 예리한 칼이 해주의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한 통증이 왔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숨을 고른 다음에 용기를 내어 말했다.

"뱃속의 아이도 한 생명체인데 어떻게 아이를 죽여요? 왜요? 나으면 안 돼요?"

형편을 뻔히 알면서도, 그의 관심 없는 태도와 무책임한 소리에 반동으로 튀어나온 말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진단은 받아야 하니, 이주일 후 병원 예약을 했다. 예약도 이민우가 알아서 다 해주었다. 그 이주일 동안 해주는 내내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가 끝까지 유산을 고집하면 혼자 나아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미래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갈팡질팡하는 이 고통이 부모님만 옆에 계시면 다 해결이 될 것 같았다. 도대체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해주는 그의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해주는 이민우 원하는 대로 따랐으니 마땅한 일이었다.

병원에 갈 날이 다가올수록 불안하고 무서웠다. 병원 앞에 서니 더 무서웠다. 예약이 된 병원은 종합병원에 부속된 산부인과가 아닌 자그마한 개인병원이었다. 해주는 수치심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는 태연하게 모든 수속을 밟았다. 신상 조사서 등, 모든 것을 작성해 주었다.

 

신은 확실했다. 그날로 바로 수술을 할 줄 알았는데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해주의 마음은 또 흔들렸다. 아무 대책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애를 낳고 싶었다. 그와 그녀 사이에 태어나는 아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예쁠 것 같았다. 위대한 인재로서 온 세계를 위해 크게 공헌할 수 있는 그런 아기가 태어날 것 같았다. 얘기를 꺼냈다가 해주는 또 설득을 당했고, 그가 원하는 쪽으로 그녀 마음도 굳어졌다.

며칠 후, 해주는 수술대 위에 누웠다. 수술 역시 큰 병원이 아닌 그 병원에서 이루어졌다. 부분 마취를 했기 때문에 정신은 말짱했다. 달그락달그락하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눈을 감았는데 목구멍으로부터 치솟아오르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 생명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고 싶었다.

 

그 즈음에 해주는 우연하게도 한국 마켓에서 애경이를 만났다. 누가 해주를 유심히 보다 말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주 화려한 차림새였다. 키가 큰데다가 살도 꽤 찐 편이라 화려한 차림새가 더 눈에 띄었다. 해주의 이름까지 불렀는데도 그녀는 누군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나 강애경이야. 중 2때 너랑 짝했잖아.”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중 2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며 애들 앞에서 엉엉 울었던 애다. 어릴 때는 키가 해주랑 비슷했기에, 몰라볼 만도 했다. 그리고 얼굴도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애경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몰라보겠지? 나 말야. 눈 코 입, 다 뜯어고쳤어. 그래서 옛날 사람들, 나 아무도 못 알아봐.”

해주는 “키도 고쳤어?” 하고 물었다. 그녀보다 키가 훨씬 큰 것이 이해가 안 돼 무심결에 뱉은 말인데, 말을 하고 보니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애경은 배꼽을 쥐고 웃었다.

“그래. 그냥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막 먹어댔더니 키도 크고 살도 찌고 그러더라. 그런데 넌 중학교 때나 지금이나 똑 같네. 배짝 말라서 그런지 더 작아진 것 같아. 근데 왜 이렇게 말랐니? 어디 아픈 사람 같아. 너 어릴 적엔 무지 이뻤는데. 지금은 야, 얼굴이 그게 뭐냐? 그냥 팍 늙어버렸다 야아.”

애경은 상대방의 기분 같은 건 염두에도 없는 듯이 하고 싶은 말들을 탁탁 뱉어냈다. 그녀는 해주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안쓰러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모든 것이 다 휘청거리며 해주 눈을 어지럽히던 때이니 그 몰골은 자신이 봐도 유해주가 아니었다.

그녀는 서먹해하는 해주 손을 잡아끌고 마켓 옆 빵집으로 들어갔다. 애경은 신상조사를 하듯이, 언제 미국에 왔느냐, 어느 학교에 다니며 어디에 사느냐 등등, 말을 속사포로 쏟아놓았다. 그녀의 태도와 말투에는 진실 된 반가움이 담겨져 있었다. 그녀는 공부하고는 원래가 인연이 멀어 커뮤니티 칼리지에 적만 두고 그냥 왔다 갔다 한다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부모님이 사는 집에 방이 남아돌아가는데도 그녀는 따로 나와 살고 있었다. 애경은 사는 것이 신바람이 나 죽겠다는 듯이 희열이 차 재잘거리다가 갑자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집은 언니가 부모의 꿈을 다 이루어주고 있으니 난 이대로가 좋아. 우리 집에선 언니는 하늘이고 나는 땅이야.”

해주의 아파트에 들르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애경은 부모님과 언니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해주는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를 대신했는데 한참 듣다보면 그녀의 말엔 앞뒤가 맞지 않았다.

상대방의 허물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아량과 관용이 있어야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친구를 아낄 줄 알아야 하고, 고독할 때 위로할 줄 알아야 하고, 어려울 때 도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해주에게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애경이가 좀 이상하다고만 생각이 들고, 그녀가 해주를 필요로 하니 얘기를 들어줄 뿐이었다.

 

졸업은 점점 더 멀어만 가고 이민우도 해주에게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강미경이 등장한 후, 그는 떠났다. 이미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똑똑하고 예쁜 여자, 같은 여자가 보아도 어딘가에 끌리는 매력을 가진 강미경, 그리고 그녀는 부잣집 딸이었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그녀의 형편은 뛰어도, 뛰어도 넘어야 할 험난한 고개들이 계속 나타났지만 강미경은 확 뚫린 고속도로를 승용차를 타고 달리고 있었다. 이민우는 그 옆자리에 타기만 하면 되었다.

 

뇌에서는 분명히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면서도 해주 가슴 한구석에서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민우가 ‘미안해.’ 하고 그녀에게 도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가 돌아오기만 하면 슬픔과 아픔과 비참함까지도 모두가 한순간에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해주가 붙들고 있는 한 가닥 끈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강미경과 결혼을 했다.

“근데 빅뉴스가 있어. 강미경의 혼전 임신. 어때 너한테는 빅뉴스 아니니? 우리 부모가 결혼 반대한 거 너도 알지? 그런데 금세 허락을 받아내고 결혼을 한다기에 이상하다 했더니, 언니가 임신을 했더라고.”

애경이의 말은 뇌성번개가 되어 그녀의 정수리를 후려쳤다

‘뭐라고. 내 아이는 그렇게 죽여 놓고 강미경과는 아이 때문에 급히 결혼을 했단 말이지?’

부르르 치가 떨리며 어금니 사이에서 소리가 부서졌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심장에 빨간 신호등이 켜지며 인생이 멈추어버린 느낌이었다. 눈앞에는 온통 안개비와 같은 눈물기가 뿌옇게 어려 물체가 흐릿하게 번져갔다. 애경이의 얼굴이 물속에서 일렁거렸다.

 

소설의 끝 부분은 이렇게 매듭지어졌다.

 

<아침이 되어서야 푸르스름한 가운을 입은 남자 둘이 들어섰다. 진회색의 제법 두꺼운 비닐로 머리에서 발끝까지 애경이를 둘둘 말고는 노끈으로 팔 그리고 발목 부분을 단단히 묶은 후, 들것에 담고는 두 사람이 들고 방을 나갔다.

그 순간,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섬광처럼 머리를 스쳤다.

‘천장에 목을 매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사람을 발견했으면 놀라 뛰어나와 먼저 옆집 사람을 부르는 것이 상식 아닐까?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다니, 그럴 수는 없다.’

밖으로 나오니 길 한쪽 옆에 앰뷸런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차 뒷문을 열고 들것째로 애경의 시체를 밀어넣고는 문을 쾅 닫았다. 부르릉거리는 요란한 자동차 소리가 동생의 통곡이 되어 미경의 고막을 쳤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애경아!” 하고 부르며 달리는 차를 향해 뛰었다. 남편이 따라와 붙들었다.

어느새 쫓아왔는지 톰도 미경의 팔을 잡았다. 소름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녀는 톰의 팔을 세차게 뿌리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가슴속에 쌓였던 덩어리들이 통곡이 되어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통곡 소리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하늘에 땅에 마구 퍼져나갔다.

남편이 말했다.

“남들한텐 자살했다 그러지 말고 교통사고라고 해.”

그다음 날부터 미경은 편지함을 열 때마다 가슴이 섬뜩섬뜩했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유서는 없었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창작이고 허구라고 하지만, 강미경의 소설을 읽어 내려가면서 해주는 의혹에 빠지기 시작했다. 뻔히 알면서 애경의 죽음을 신고조차 않은 채 자살로 덮어버린 것일까. 그들이 원하는 일을 톰이 대신 해주었기에.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진실을 밝혀도 괜찮을 것이라는 계산 아래 이 소설을 발표했을까? 이 소설을 근래에 쓴 것은 절대로 아니다. 아마도 애경이가 죽고 나서 바로 썼을 것이다. 끝맺음에서 교통사고로 위장하라는 이민우, 아니 미경의 남편 말은 현실감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해주의 발걸음은 학교 채플을 향했다. 만사가 귀찮고 의욕이 없어져 몸속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했다. 아무리 주먹을 힘주어 쥐어보려 해도 손에 힘이 모아지지가 않았다. 가슴 밑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린 것같이 허전했다. 숨을 쉬어도 허방으로 다 새어버리는 것 같았다.

동이 막 트기 시작한 아침의 교정은 무척이나 한적했다. 교회당도 텅 비어 있었다. 기도도 할 줄 모르는 해주인지라 눈을 감고 “하나님!” 하고 입속으로 불러보았다. 부르긴 했는데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그녀는 “도와주세요.” 라고 소리를 내며 기도하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하나님. 지금 저는 아무런 의욕이 없습니다. 제게 의욕을 주시고 힘을 주셔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세요.”

몇 마디를 지껄이는데 목이 메면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이제는 눈물이 그친 줄 알았는데 다시 울음이 복받쳤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이 다 옳았어요. 이민우는 나쁜 놈이었어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넋두리까지 나왔다.

“왜 엄마까지 날 두고 떠나셨어요. 엄마 엄마····.”

흐느낌이 어느새 통곡이 되었다. 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소리가 바깥으로 새나가는 줄도 모르고 마냥 울고 또 울었다. 한참을 울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웬 남자가 해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의 햇살에 눈이 부셨지만 그의 얼굴이 금세 눈에 들어왔다.

언어학과 교수인 닥터 애론 스미스였다. 그는 한국 고아로 어릴 때 미국에 입양이 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5개 국어에 능통한 유명 교수였지만 학생들은 그를 아무 스스럼없이 애론이라고 불렀다. 그가 그렇게 불러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도 친구처럼 친했기에, 첨에 해주는 그가 교수인 줄 모르고 학생인 줄 알았다.

무안해서 얼른 일어나 인사를 하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왼다리가 뻣뻣해지면서 송곳으로 후벼파는 것 같은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온몸을 휩쌌다. “아아아--. ” 하고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저절로 들린 왼다리를 두 손으로 부여잡았는데, 해주는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통증은 처음이었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 엉덩이로부터 왼발이 뜯겨나가는 것같이 아팠다. 뜯겨나간 자리에 혈관이 실밥처럼 너덜거리는 것이 감은 눈 속에 보였다. 검진 결과는 디스크였다.

 

사실, 얼마 전부터 왼다리가 아팠었다. 밤에는 더 심했다. 왼다리가 어찌나 욱신거리는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등뼈 사이사이에 못을 밖아 놓은 것같이 돌아눕기도 힘들었다. 밤새 끙끙 앓으며 해주는 몸 아픈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알게 되었다. 사랑? 이민우? 그런 건, 육체적 고통에 비하면 정말 하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침이 되면 통증이 덜해 견딜 만했고 또 그런 증상이 매일 계속되지는 않아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하고 내버려둔 것이 병을 키운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간에 애론이 그녀의 보호자 노릇을 완벽하게 해주었다. 병원, 학교, 또 보험 관계의 모든 일을 그가 일사천리로 해결을 해준 것이다. 해주는 애론의 손을 덥석 잡을 수밖에 없었다. 심장에 켜 있던 빨간 신호등이 서서히 파란불로 바뀌면서 그녀의 인생이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사철이 서로 얼싸안고 해마다 사랑을 잉태해 계절의 순환기에 접어들 듯, 해주의 삶도 또 하나의 부활인 봄을 맞게 된 것이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자신에게 그는 신이 보내준 천사였다. 그날, 텅 빈 교회당에서 해주는 통곡을 하며 신에게 매달렸었다. 그리고 그 통곡의 끈이 해주와 애론을 결혼으로까지 이어주었다.

 

결혼 1년 후에 아이가 들어서는 행운이 찾아왔고, 행운은 연달아 이어져 해주는 4남매를 낳았다. 첫 임신과 유산, 그 악몽이 되살아나 혹시 애를 못 낳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에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신은 그녀 편에 서 주었다.

 

결혼을 한 다음에 공부를 계속한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으나 후회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가정이 가장 중요했다. 아이들,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리고 좋은 남편 주신 것을 신에게 감사했다.

어느 순간, 남편이 곁에 없는 삶을 상상하고는 눈앞이 캄캄해져 그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항상 그는 해주의 커다란 버팀목이었다. 꿈과 소망을 키우며 사랑의 동반자로 함께 가는 세상에 둘도 없는 소중한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다.

 

이제, 해주의 나이도 50을 훌쩍 넘어섰다.

‘그동안에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이해의 작가 수상을 축하한다면서 전화라도 한 번 걸어 볼까?’ 하는 예기치도 못한 생각이 불쑥 치솟았다. 그러다가 ‘뭐하러? 전화는 무슨.’ 하고 피식 웃음을 흘렸는데도 또 갑작스런 충동이 일곤 했다. ‘침묵의 비밀’이 해주를 뒤흔든 것이다. 결국 해주는 신문사에 전화를 걸고 말았다. 다시 연락해주겠다는 직원에게 전화번호를 남겼다.

 

소설을 또 읽었다. 처음 읽을 때보다 더 강렬한 의문이 스쳤다. 소설에 나타난 바와 마찬가지로 애경은 결혼을 했었고, 남편은 톰이라는 이름으로 소설에 등장하는 그런 남자였을까? 어떻게 목을 매고 죽어 있는 사람을 혼자서 내려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경찰에 신고를 하던지 먼저 옆집 사람이라도 부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소설에서의 강미경도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제시했었다.

25년 전에 이미 한 줌의 재로 산산이 흩어져버린 애경이다. 무거운 머리를 겨우 가누고 누워 있어도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음이 납덩이가 되어 온몸을 짓눌렀다. 신문사에 전화를 해버리고 나니 기분이 묘했다. 물론, 애경의 죽음을 캐보자는 의도는 손톱만치도 없다. 신문사에서 연락이 와도 강미경에게 전화를 한다는 확신은 없다. 연락이 안 오면 그만이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해주는 뜻밖에도 강미경의 전화를 받았다. 흥분된 목소리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신문사에서 연락받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그리고 또 얼마나 놀랐는지 꿈인가 생신가 했단다.”

뜻밖의 전화에 뜻밖의 말을 듣고 보니 해주는 어리둥절했다. 물론 놀랐겠지. ‘동생 친구 유해주’라는 메시지에 애경이 보담 먼저 자신의 남편인 이민우가 앞을 가렸을 테니까. 반가웠다는 말은 생소했다.

“안 그래도 너를 찾아보려고 지금 수소문을 하던 참이었는데. 이렇게 네가 연락을 주다니····. 정말 신이 도운 것 같구나. 내가 너를 꼭 만나야 할 일이 있어. 나한테는 정말 중요한 일이야.”

‘나를 찾으려고 수소문을 하다니····.’

30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 그녀는 비약했다. 꼭. 꼭을 몇 번이나 강조하면서 해주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건강이 별 시원치 않아 비행기를 탈 수가 없어서 그러니 네가 여기로 와 줄 수 있겠니? 꼭 부탁한다.”

그녀의 음성엔 해주가 거절할 수 없는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어디가 편찮으세요?”

“너도 알잖아. 나 허릿병 있는 거.”

오래 전 어느 날, 애경이가 갑자기 찾아왔었다.

“어디 아프니? 얼굴이 못쓰게 됐어.”

해주는 다른 얘기는 묻어두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응. 디스크에 걸려 다리가 아팠는데 이제는 거의 다 나았어.”

“뭐? 디스크? 왜 하필이면 우리 언니가 걸린 병에 걸렸냐? 언니도 첨엔 다리가 아팠었거든. 그 병엔 푹 쉬는 게 최고야. 우리 언닌 수술을 두 번이나 했는데도 늘 허리가 아프대. 꼴까닥 죽어버리면 그건 재미가 없고, 그냥 누워서 꼼짝 못하는 병신이 됐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너 솔직히 말해 봐. 우리 언니 꼬꾸라지면 속 시원하겠지?”

해주는 이런 애경을 보면서 어쩜 인간이 저렇게 악할 수가 있을까 하고 의문스러웠다. 가끔 그녀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듯, 자신의 치부를 송두리째 드러내어 해주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더 이상 가다간 또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몰라 해주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애경아, 앞으로는 내 앞에서 언니 얘긴 하지 마. 듣기 싫거든.”

이제 그만 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겨우 참고 있는데 다행히 그녀가 일어섰다.

“우리 언니 또 수술할 날이 곧 올지도 모르니 기대해도 괜찮아. 혹시 알아? 지금은 네 애인 뺏고도, 또 부모 유산 다 가로채고도 저렇게 이민우 사업이 잘돼, 하나님이 원망스럽지만 사람 일이란 모르는 거야. 우리가 뭐 다 살았니?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강미경은 해주에게 전화를 걸어 꼭 와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했다. 안 가면 안 되는 일이 있는 듯이 그녀는 해주에게 매달렸다. 결국 해주는 버지니아행 비행기를 탔다. 세미나 관계로 타주에 출장 중인 남편에게 친구 집에 다녀오겠다는 전화를 하는데, 조금은 아리송했으나 마음은 홀가분했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하늘엔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다녔다. 손을 뻗치면 뭉텅 바로 잡힐 듯하고, 훌쩍 건너뛰면 구름 위에 사뿐히 내려앉을 것 같다. 세상이 가뿐하게 다가왔다. 한데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애경이가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떠가고 있었다.

‘난 억울하게 죽었어. 정말 억울하게 죽었다고. 그래서 내 영혼은 하늘나라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허공을 떠돌고 있단다. 내 죽음의 의문을 풀어줘.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어. 제발, 제발 부탁이야’

애경이가 해주에게 간절한 눈길을 보내면서 호소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잘 정돈된 엘에이 시내가 바둑판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납작한 장난감 차들이 줄줄이 움직였다. 온갖 잡다한 인생살이가 해주 손바닥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해 세상사가 참으로 보잘 것 없어 보였다. 삶 속에 얽혀 있는 정교한 인간관계나 운명 같은 것이 한낱 종이 한 장처럼 얄팍하게 느껴졌다.

 

공항에 도착하니 강미경이 아닌 중년의 미국 여자가 해주를 맞았다. 의외였기에 운전을 못할 정도로 허리가 아픈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유해주’라고 쓴 작은 팻말을 들고 있었다.

“미셀이 아파서 못 나왔습니다.”

미셀이라는 이름이 무척이나 생소했다.

“어디가 많이 아픈가요?”

여인은 가타부타 말을 않고 입술을 약간 움직이며 어색한 웃음을 띠었다. 그 표정이 아리송하면서도 엉거주춤했다. 미셀이 집으로 모시고 오라고 했다는 말만 하고는 여기서 한 40분쯤 걸린다고 했다.

‘집으로? 이민우가 살고 있을 그 집에?’

공항을 벗어난 차는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가을은 벌써 끝이 나버리고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길 양쪽에는 잎을 다 떨군 채 몸통을 드러낸 가로수들이 일렬종대로 서 있고 거리엔 차들도 한산했다. 가로수길이 끝나자 건널목이 나왔고, 건널목이 끝나니 마을 입구가 나왔다. 낡은 집들과 잡목이 흩어져 있는 환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택들과 잘 손질된 나무들이 운치를 이루는 아름다운 주위 풍경을 상상했던 해주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여인은 혼자 차를 탄 듯이 꼼짝을 않고 앞만 바라보았다. 더러는 말을 걸면서 강미의 안부를 들려줄 만도 하건만 그녀는 침묵했다.

 

강미경의 집 앞에 도착을 했다. 자그마한 단층으로 오랜 세월 동안 손길이 안 갔는지 퍽 낡은 인상을 주는 집이었다. 탁한 먼지 색 같은 벽 색깔이 아주 옹색하고 충충해 보였다. 현관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를 제외하고는 온통 정원인 앞마당에는 잎은 다 떨어지고 가지만 제멋대로 뻗친 나지막한 나무들이 여기저기에 산만하게 서 있고, 이미 말라버려 갈색으로 변한 꽃나무들의 무리가 함부로 넘어져 있었다. 오래 돌보지 않아 쾌쾌하고 축축한 냄새가 났다.

여인이 키를 꽂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열렸는데도 강미경의 얼굴은 볼 수가 없었다. 해주는 조금은 떨리고 또 흥분이 되었다. 문을 열자마자 바로 좁은 복도가 나왔다. 벽에는 그림 하나 붙어있지 않았다. 복도 왼편엔 거실로 보이는 자그마한 방이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은 곳 같아 싸늘한 냉기가 전해 왔다.

여인을 따라 거실을 지나서니 툭 트인 뒤뜰이 시야에 들어왔다. 뜰은 꽤 넓었으나 오랫동안 가꾸지를 않아 그대로 폐허가 되어버려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집안 분위기도 전혀 예상 밖이라 해주는 점점 미스터리에 빠져들었다.

어쨌든 시야가 환해지니 가슴이 확 트였다. 그곳 실내는 거실보다도 훨씬 넓고 밝았다. 가족들이 주로 쓰는 패밀리 룸 같았다. 옆 벽이 아치형으로 툭 틔어져서 부엌과 식당이 바로 붙어 있었다. 그곳에도 강미경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거기에는 백발의 웬 깡마른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말라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해 순간적으로 해주는 섬뜩했다. 퀭하니 움푹 파인 두 눈만이 온 얼굴을 차지하고 있었고 마른 목이 머리를 지탱하기도 힘들어 보였다.

‘언니는 어딜 가고 저분은 누구일까?’

멈칫하다가 해주는 그만 하마터면 ‘악’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녀가 바로 강미경이었기 때문이다. 강미경은 몰라보게 늙어 있었다. 염색을 하지 않은 머리 때문에 더 늙어 보였겠지만 그렇게 온통 백발이 될 나이는 아직 아니라 해주는 더 놀랐다.

 

‘강미경이 저렇게 변하다니··· ···.’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있지만, 강산이 열 번을 변하더라도 강미경이 저토록 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느 날, 사라져가는 석양빛을 창 너머로 받으며 교회 구석진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해주는 그때 “헉” 하고 숨을 들이쉬고는 금세 뱉어내지를 못했었다.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해주가 가까이 가고 있는데도 그녀는 일어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해주는 다시 한 번 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혹시 일어설 수가 없어서?’

앉아 있는 의자도 특수하게 제작된 것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팔걸이와 등받이 발판 등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널따란 오른편 팔걸이 바깥쪽에는 스위치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해주는 “언니” 하고 부르며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의자 앞에 털썩 꿇어 앉아버렸다. 언니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왔다. 손은 작고 까칠했으나 따뜻했다.

“내가 너무 변해서 놀랬지?”

해주는 말을 잃고 눈물을 흘렸다. 언니의 뻥 뚫린 커다란 눈에서도 눈물이 강물처럼 쏟아져 나올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녀는 해주를 어제 만났던 사람처럼 담담하게 대했다.

“그러고 보니 딱 30년 만이구나. 내가 이토록 변한 건 그만큼 나한테 사연이 많았다는 증거야.”

강미경은 첫마디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했다. 기운이 다 빠져버려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의자 밑바닥으로 스르르 가라앉을 것 같은 모습이었으나, 그 음성에는 생동감이 넘쳤다. 말을 이어가는 그녀의 눈빛도 밤하늘의 별처럼 초롱초롱했다.

‘무슨 사연이 그렇게 많았을까?’

 

집 안 어디에도 이민우의 자취는 없었다. 아들과 강미경이 찍은 사진 한 장이 벽난로 선반 위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아들은 이민우와 판에 박은 닮은꼴이었다. 지금쯤은 서른에 가까운 나이일 텐데 사진은 틴에이저 때 찍은 것 같았고 강미경도 새파랗게 젊어 있었다. 신문에 났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혹시 이혼을 한 게 아닐까?

이혼을 해 처녀 적 ‘강’으로 도로 돌아갔다면 등단 연도를 볼 때, 아주 옛날에 이혼을 한 것으로 계산이 나온다. 그럼 그 후에도 불행한 일만 계속됐다는 말인가? 아닐 것이다. 결혼 후에도 자신의 본성을 고수하는 여자도 많으니 강미경이 저렇게 된 것은 분명히 이민우와의 결혼 생활에서 온 결과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이 집에 살고 있지 않는 것이 확실하다.

‘아무리 그래도 어찌 저렇게까지···.’

강미경은 저녁 준비가 다 됐다고 하면서 호텔 예약을 취소하라고 했다. “여기서 자라.”는 그녀의 말꼬리엔 해주가 가버릴까 봐 안타까워하는 아쉬움이 끈끈이 묻어 있었고 눈빛에도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강미경이 혼자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들은 다이닝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위치를 누르니 의자는 스르르 미끄러져 식탁 앞 알맞은 위치에서 멈췄다. 의자와 마찬가지로 식탁 역시 그녀에게 맞게끔 특수 제작이 된 듯했다. 의자가 워낙 높은데도 그녀의 앉은키에 잘 맞았다. 식탁에 딸린 의자도 보통 의자보다는 높았다.

저녁을 먹은 다음, 해주는 좀 망설이다가 언제부터 이렇게 많이 아팠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걷지 못함을 뜻하는 질문이다.

“허리 때문에 고생을 좀 했어.”

그녀의 눈빛에 슬픔이 가득했다.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었다. 그 속에는 왠지 아픈 기억들이 파편처럼 박혀 있을 것만 같아서다.

“마지막 수술 때는 정말 힘들었어. 그렇지만 난 절대로 죽을 수 없었어. 꼭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었거든. 그래서 신께서 내게 기적을 베푸셨는지도 몰라. 소설을 쓰라고 말야.”

 

그녀는 구체적인 이유는 덮고 넘어갔다. 소설 얘기가 시작이 되어 해주는 ‘침묵의 비밀’ 첫 부분을 화제에 올렸다. 애경의 죽음을 소설에 연관 지은 것이다.

“첫머리에 동생의 죽음을 묘사한 부분은 꼭 언니가 겪은 일 같았어요. 애경이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지 않나 하고요. 또 끝 부분에 교통사고로 위장하라는 대목도 나오고 해서요.”

한데, 강미경은 불같이 소리를 지르며 해주를 야단쳤다. 야단을 치는 정도가 아니었다. 어찌나 화를 내는지 너무 놀라 까무러칠 정도였다.

“그게 무슨 소리니? 소설은 어디까지나 픽션이야. 허구의 세계, 말짱 지어낸 거짓말이야. 창작이라고 창작. 소설을 가지고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어? 너 정말 무식하구나. 애경이는 분명히 교통사고로 죽었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해주의 전신을 후려쳤다. “교통사고로 죽었어.” 하는 끝말에는 글자 하나하나를 길게 늘이면서 강조를 했다. 동시에 옥타브를 확 높이며 악을 썼다.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강렬했다. 30년 만에 만난 사람한테 이럴 수는 없다.

‘애경이가 그렇게 죽었단다.’ 하고 혹시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는 해주의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해주는 얼른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겁이 났다.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메말라 있었다.

“참 언니도. 내가 소설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을 못 하겠어요. 어디서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는지 언니의 상상력에 놀랐다는 거죠. 제 말은 소설이 그만큼 현실감 있게 잘 씌어졌다는 거예요. 다음이 궁금해서 소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언니는 소설가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났어요.”

다행히 강미경은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언제 그리도 화를 냈냐는 듯이 금세 가라앉은 음성으로 “그래? 그렇지 나도 내가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하고는 애경이가 죽은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해주는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의문들을 일체 입 밖으로 끄집어내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이 단박에 섰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실명인 것도.

“애경이 남편이 그랬어. 자길 만나기 전에 어떤 남자와 동거를 했었다고.”

강미경은 애경이로부터 소식이 두절되었던 2년 동안의 행적을 그녀의 남편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남자를 잘못 만나 있는 돈 다 없애고 알코올 중독이 되어 뉴욕의 어느 재활원에서 고생하는 애경이를 구해줬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 많은 돈을 2년 만에 다 탕진을 했을까 하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돈의 액수는 밝히지 않았다.

 

애경의 남편은 소설에서 서술된 톰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강미경은 애경의 얘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흑흑 흐느끼면서 오열했다. 해주도 그녀에게 감전이 돼버려 금세 눈물이 났다. 그것은 애경을 위한 눈물이 아니라 강미경의 모습에서 온 슬픔 때문이었다.

 

애경의 남편은 요리사였다. 물론 한국 사람이었다. 한인교회에서 주일학교 선생으로 봉사하는 진실한 종교인이었다. 어둠의 구석구석을 찾아 봉사 활동을 벌이는 참으로 신실한 하느님의 종이었다. 직업은 중국식당 요리사였으나 꿈은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알코올재활센터에서 봉사를 하다가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한 애경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를 위해선 언니를 만나 화해를 하고 따뜻한 가정을 갖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이 되어 결혼을 한 후, 언니가 있는 엘에이로 달려왔다는 것이다. 교통사고가 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 못한 그는 생활이 조금 안정된 후에 언니를 만나 그간의 사연들을 다 이야기하려 했는데, 이렇게 죽은 후에 그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다면서 애경의 죽음을 진실로 슬퍼했다는 것이다.

계속 울음을 그치지 않고 얘기를 하는 강미경의 목소리엔 굴뚝 속 모양 그을음이 잔뜩 스며들어 있었다. 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내 갑갑하고 답답했다. 깅미경이 또 다른 소설을 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의 내용이 자꾸 생생하게 떠올랐다. 혼란에 혼란이 거듭되고 있었으나 해주는 입도 벙긋 안 했다.

“그때, 식당을 보러 가다가 사고가 났었어. 차가 중심을 잃고 프리웨이에서 중앙분리대를 받고 삥 돌았는데 뒤에서 과속으로 오던 트럭이 들이받은 거였어. 엘에이로 와서 한 달도 못 돼 일어난 사고였어. 둘이 같이 탔었는데 애경이만 죽은 거야.”

 

언니 앞에 다시 나타나, 한 달도 못 돼 애경이가 죽은 사실은 소설과 일치했고, 교통사고로 죽은 것은 소문과 일치했다. 그녀는 눈물콧물 범벅이 된 얼굴로 클리넥스를 휴지통에 수북이 쌓아갔다. 자기가 유산을 내주지만 않았더라도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며 쉬지 않고 슬피 울었다. 다 자기가 보살피지 못한 탓이라고, 모두가 자기의 책임이라고 진실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 죽어서 어떻게 어머니를 만날 수 있겠느냐며 죽은 후의 걱정까지 했다.

그렇게 울다가 금세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실컷 울어 속이 시원해졌는지 그녀 얼굴은 정말 괜찮아 보였다. 소낙비를 내리쏟다가 활짝 갠 하늘처럼 강미경의 표정에는 반짝하는 햇빛까지 비쳤다. 언제 그렇게 흐느꼈냐는 듯, 정말 거짓말같이 말끔한 얼굴이었다. 강미경은 애경이를 눈물의 강에 떠내려 보내며 아주 깨끗하게 일단락을 지었다.

간간히 맞장구를 치며 해주는 강미경의 얘기를 다 들어주었다.

 

얘기는 방향을 틀어 자신의 신세한탄으로 들어갔다.

“왜 나는 내 가족을 모두 잃어야만 하니?”

가족이란 부모님과 애경이만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민우도 아들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란 말인가?’

집 안에는 이민우의 그림자는커녕 흔적조차도 없다. 다른 여자한테로 가 버렸을까 하는 상상을 넘어 그가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강하게 밀려왔다.

 

드디어 강미경의 입에서 이민우가 나왔다. 해주의 짐작은 적중했다, 이민우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다.

“죽었어. 12년 전에.”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이 마치 지나가던 강아지 한 마리가 죽었다는 식의 말투였다. 그리고는 말을 끊고 해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무슨 수수께끼라도 푸는 듯, 피카소의 그림처럼 복잡하고 난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목소리와는 반대로 눈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감정의 변화를 살피는 듯해 좀 불편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 눈빛이 해주 얼굴을 찔러 기분이 나빴다.

남편이 죽었다고 하니, 위로의 인사를 던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해주는 정말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통 감이 안 잡혔다. 아무 감정이 일지 않고 담담했다. 침묵이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다문 입은 열리지가 않았다. 다행히 적합한 말이 떠올랐다.

“교통사고였어요?”

강미경은 “아니.” 하고 한마디로 잘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 뒷말에 해주는 누군가가 무거운 둔기가 자신의 정수리를 내리치는 듯하는 커다란 충격을 느꼈다.

“이민우가 그렇게 죽었다.”

‘그렇게 죽다니? 소설 첫머리에 나온 장면이 이민우의 죽음을 그린 것이란 말인가? 그렇담 이민우가 목을 매고 자살을 했다는 말이 아닌가?’

죽었다는 말에는 별 감정이 일지 않았는데, 목을 매고 자살을 한 사실에는 가슴이 요동쳤다. 놀라는 해주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워낙에 큰 사건이라 미국 신문에도 나고 한국 신문에도 났었는데 네가 못 본 모양이구나. 봐서도이름이 마이클 리로 기사가 나갔으니 모를 수도 있지. 벌써 12년 전 일이니까 지금은 다 잊혔을 거야.”

한국 신문, 미국 신문, 둘 다 보기는 하지만 해주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마이클 리라는 이름도 기억에 없다. 사업가가 목을 매고 자살을 한 것이 신문이 떠들썩할 정도로 큰 사건이 될 수는 없다. 워낙 큰 사건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니 그 뒷면에는 반드시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강미경은 얘기의 골자는 쏙 빼놓고, 이민우가 나쁜 놈이라는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나는 이민우가 그렇게 나쁜 인간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남자였어. 거기에 나도 넘어갔지만 말야. 남을 비평하고 중상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비인간적인 면은 몽땅 다 가진 그런 인간이었다고. 그리고 진실하지가 못해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어.”

시작부터 그녀는 이민우를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리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못한 일이다.

“이민우와 살면서, 그가 철저한 악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사람이 그토록 악해질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랄 지경이었어. 그에겐 양심이라는 것이 조금도 없었어. 그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왜 내가 이민우하고 계속 살아야만 했는지 지금 생각하니 참 한심해.”

자신의 남편이었던 이민우, 이미 죽어서 없어진 사람인데도 강미경은 그를 계속해서 짓이겼다. 남편이 죽은 후에는 자기가 잘못한 일만 생각나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반성하는 아내들이 많다는데 그녀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 같았다. 망자에 대해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말도, 죽은 사람은 다 용서가 된다는 말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죽은 남편을 계속 죽이고 있는 그녀의 태도로 보아 그 뒤에는 무슨 흑막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그는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든 간에 목적만 달성하면 되었고, 돈만 아는 죽일 놈이라고 욕을 먹어도 안색 하나 안 변하는 인간이었어. 나중에 사업이 기울어지기 시작하니 인간성이 더 포악해지더라고. 그런 경우에는 사람이 수양을 하게 되어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좋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도 있건만 그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어. 오죽하면 부모하고도 의절을 했겠니?”

 

화제는 아들에게로 옮겨졌다. 혼전임신을 하여 낳은 바로 그 아들이다. 해주는 그들의 결혼이 아이로 인해 급하게 서둘러졌다는 사실을 애경이로부터 들었을 때, ‘내 아이는 그렇게 죽여놓고, 뭐가 어쩌고 어째? 어디 두고 보자.’ 하고 이빨을 악문 기억이 났다.

“자기 친자식한테 어찌 했나 알면 너도 놀랄 거야.”

이상하게도 이민우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 제이슨을 미워했다. 제이슨 역시 아버지를 무서워하고 또 싫어해 아주 어릴 적부터 “엄마 왜 그러고 사느냐” 면서 이혼하라고 졸라댔다. 아빠로부터 도망가자고 했다. 세월이 갈수록 부자관계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빠지고 말았지만, 반항으로 맞서지 않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복종을 했다고 한다.

“한 번은 골프채를 휘둘러 제이슨이 죽을 뻔했었어. 생각하면 내가 너무 가슴이 아파. 나 역시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고. 내 건강은 자꾸만 나빠지고 세월이 갈수록 그의 행패에는 가속도가 붙었어. 그래서 나는 점점 더 바보가 돼 갔나봐.”

이민우 얘기를 시작하고부터는 말의 두서가 없었다. 순서도 뒤죽박죽이 돼 가며 그 일관성을 잃어갔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민우를 나쁜 놈으로 몰고 가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치고 있는 듯 했다. 아들 얘기를 할 때는 더 그랬다.

‘어릴 때부터 괜히 미워해? 친아들을? 꾹 참고 복종하면서 꼼짝 못 했는데도 아버지가 골프채를 휘둘러?’

강미경은 그녀의 암울했던 결혼생활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여자 문제로 인해 가정불화가 극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민우의 여자 편력은 세월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은 금발의 미녀를 아예 작은마누라로 들여앉혀 공공연히 두 집 살림을 했다. 더 이상 남편과 살 수가 없었다. 이제는 이혼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강미경은 여행을 떠났었다.

 

사건은 여행 중에 일어났다. 아들이 열여섯 살이 되던 해였다. 이민우는 자신의 대저택, 아들과 아내가 살고 있는 집, 차고 천장에 목을 맸고, 이를 맨 처음 발견한 제이슨이 아버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것이었다.

“이민우가 그렇게 죽었다.”라고 강미경이 토로하기 시작했을 때, 불현듯 소설에 그려진, 애경이가 목을 맸다는 그 허연 히터 시스템이 떠올라 해주는 그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창작이 아닌, 직접 경험하고 눈으로 보고 느낀 그대로 묘사를 해놓은 듯이 생생히 현실감이 살아 움직이는 장면이었다.

톰으로부터 애경이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웨스턴 길을 따라 피코를 지나 한참 남쪽으로 내려가,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흑인지역의 오래된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안 해 층계를 딛고 올라갈 때 느꼈던 가슴 섬뜩함, 지옥을 향하는 통로 같았던 어슴푸레한 복도, 애경이가 목을 맸다는 천장에 붙은 손목 굵기의 울퉁불퉁한 납덩이의 파이프····. 그리고 고개를 약간 모로 돌린 채 방바닥에 반듯이 누워 있는 애경의 시체, 목에 선명하게 그려진 불그스름한 흔적, 푸르스름한 색깔이 약간은 얼룩덜룩하게 퍼져 있는 쭉 뻗은 두 다리. 목을 맬 때 사용했다는 샛노란 끈.

 

그런데 현실에서의 애경은 프리웨이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리고 소설에서의 애경이와 현실에서의 이민우, 이 두 죽음이 “그렇게 죽었다.”는 같은 점이 있었으나 그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강미경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현장은 이미 깨끗이 치워진 다음이었다.

사건 이후 바로, 남편의 여자 쪽에서 소송을 걸었고 검찰측에서도 제이슨이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끈질기게 사건을 물고 늘어졌다

 

벌써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미국이라는 법치국가에서 정말 이럴 수가 있니? 사형 언도가 내려지고 이미 집행도 시행이 됐는데, 나중에 진범이 잡혀 판사가 옷을 벗고 승려가 된 그런 경우도 있잖아? 꼭 그 격이라니까.”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해주는 듣기만 해도 된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근데 지금 와서 뭐라 그러는지 알아? 참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와. 검찰과 합의를 하자는 거야. ‘길티’ 라고 인정을 하면 석방해 준다고 말야.”

그 당시 제이슨은 미성년자였고 12년을 감옥에서 보냈으니 그것으로써 죗값은 치렀다는 것이다. 그녀는 점점 더 흥분했다. 12년 동안이나 죄 없이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 정말이지 원통하고 분해 미치겠다는 듯이 목소리를 벌벌 떨었다.

“우리 쪽 변호사는 이제 지쳤는지 아들을 위해서는 합의를 보는 것도 괜찮다는 거야. 정말 너무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정말 너무 억울해”를 연거푸 외치면서 눈에 불을 내뿜듯 열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 그녀의 내부로부터는 뜨거운 열정이 끝없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정말 이럴 수는 없어, 길티라고 인정을 하라니····. 법치국가인 미국에서 죄 없는 사람을 옭아매고 뒤집어씌워 이래도 되는 거니? 제이슨이 아버지를 죽이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차고 천장에 아버지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우선 내려놓고 봐야지····. 그렇잖니? 내려놓으면 도로 살아날 가능성도 있잖아?”

순간, 아내가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을 톰이 내려놓았다고 했을 때, 소설 속의 주인공 미경이 ‘그럴 수는 없다.’고 강하게 의문을 내비친 것이, 번개처럼 번쩍하며 뇌리를 스쳤다.

동시에 강미경의 울부짖는 소리가 귓전을 내리쳤다.

“분명히 자살이야. 자살이라구우우--- ”

커다란 두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사건 이후, 아들 이야기가 시작되는 대목에서부터는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어 해주는 아찔아찔했다. 우는 것도 힘들고 지쳐보였다. 허약한 육체가 목소리에 울려서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갈라지고 마른 가슴 한구석에서 오래 응고되어 있던 피가 솟구치는 것처럼 그녀는 피눈물을 쏟고 있었다.

목에는 푸른 심줄이 돋아 이마빡까지 벋쳐 팽팽한 핏줄이 금세 툭툭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쏟아지는 소낙비에 뇌성과 번개를 동반한 통곡이었다. 저러다가 그냥 정신이라도 잃을 것 같아 해주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광기에 서린 미경의 눈빛에는 섬뜩한 섬광이 번뜩거렸다. 해주가 소설의 첫 부분을 잠깐 언급했을 때, 불같이 화를 내며 언성을 있는 대로 높였던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아까, 집에 도착했을 때도, 틴에이저로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문을 나서는 것을 보았다. 24시간을 지켜봐야 할 정도로 강미경의 정신건강이 안 좋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강미경은 앞에 놓인 냉수를 한 모금 들이켰다. 물 잔을 쥔 손이 떨렸다. 감정이 여울처럼 휘돌아 치며 한없이 격렬해졌다가 조금은 잠잠해진 것 같았다.

“나는 지난 12년 동안 글쓰기에 매달려 살아왔어. 글을 쓸 땐 시간이 잘 가서 좋고 또 아들이 빨리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겨 좋아. 그간에 여러 편의 단편도 썼고 중편도 썼지만 마음에 들지가 않아 발표를 않고 묵혀둔 것이 더 많아. 만일 내가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못했을 거야. 이 상황에서도 소설 쓰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고 보람돼.”

“그게 다 재질을 타고 때문 아니겠어요? 이번 소설도 한국의 기성작가들을 제치고 문학상을 탔다는 것,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강미경이 제일 좋아하는 말로 해주는 그녀의 만면에 웃음꽃를 활짝 피게 했다.

“그렇지? 실은 난 내가 글 쓰는 데에 재능이 있는 것도 모르고 살았어. 그런데, 글을 써보니까 줄줄 써지는 게 너무 재미있고 신바람이 났어. 그리고 또 신문에 당선도 되고 하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말야.”

자화자찬에 빠져 있는 강미경은 행복해 보였다. 불행과 행복이 초를 다투며 교차하고 있었다.

“지금은 장편을 쓰고 있는 중이야. 제목은 ‘이제, 숙제는 끝났다.’ 어때, 제목 멋있지?”

해주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보통 소설을 쓸 때는 써놓고 제목을 정하는데 이번엔 제목이 딱 미리 정해졌단다.”

잠깐 말을 끊었다가 그녀는 “줄거리가 완전히 실제로 일어난 얘기를 소재로 했기 때문일 거야.” 하고 서두를 던진 후, 더 자세한 설명을 했다.

“맞아. ‘이제, 숙제는 끝났다.’는 완전히 실제 얘기야. 허구는 하나도 안 들어가. 그러니 얼마나 실감 나겠니? 애경이 얘기를 실제 얘기로 네가 오해한 거와 마찬가지로 이번 장편은 독자들이 실제 얘기라고는 도저히 믿지 않을 거야.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니까. 이번 장편은 자신 있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으니 분명히 영원히 살아남을 불후의 명작이 될 거야. 숙제로 남은 앞으로의 현실을 내가 풀어내는 거야.”

 

이제야 버지니아까지 해주를 부른 진짜 본론 이야기로 접어든 듯했다.

“실은 소설 속에 네가 많이 등장을 해. 애경이 친구라는 것에서부터 이민우를 쓰려면 너를 빼놓을 수는 없잖아. 이민우와 너랑 알았던 세월, 가족관계, 그리고 이민우와 헤어진 후, 네가 어찌 살았는지, 또 한 남자한테 짓밟힌 너의 그 처절한 심정이 어땠는지를 그리고 싶어. 이민우의 결혼 전과 결혼 후, 그러니까 너와 내가 공동작가가 되는 거야. 할 수 있겠지? 거기다 한 가지 줄거리를 더 붙여 버림받은 네가 이민우 아이를 낳았다고 하면 더 재미있을 거야 그지?”

쓴웃음이 일었다. 뭔가 소설의 영감이 스쳤을까? 모를 일이다. 더구나 공동작가라니? 지금 강미경은 완전히 상상 속에서 살고 있는가?

 

소설에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 강미경은 정색을 하고 해주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이민우는 널 사랑하지 않았어. 순진한 너를 농락한 거야.”

지금 해주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한 마디였다. 다만 해주의 감정을 부추겨서 이민우를 더 나쁜 놈으로 만들기 위한 그녀의 계획이 내포된 말이라는 것에는 확신이 갔다. 아들의 무죄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장편을 쓰고 있는 사실이 점점 확실해졌다. 이미 죽은 그를 그토록 악인으로 몰아붙인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만일 아들이 진짜 범인이라 하더라도 ‘그래 그런 놈은 죽어 마땅해’ 하는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강미경은 그 큰 눈을 스르르 감더니 의자 스위치를 눌러 등받이를 뒤로 젖혔다. 의자는 금세 편안한 침대가 되었다.

“피곤하지 않으세요? 이제 그만 주무셔야죠.”

그녀는 손을 저으며 괜찮다는 말을 연발하고는 누운 채로 말을 이어갔다. 얘기를 쉴 새 없이 내쏟으면서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계속 초롱초롱했다.

“그에게는 돈과 섹스, 그런 것들이 전부였어. 너도 알잖아. 내 허리가 결혼 전부터 안 좋았던 것····. 그런데도 그는 내 허리를 분질러 버릴 듯이 덤벼들었어. 나중엔 그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선 내 몸이 편했으니까.”

 

그는 해주게도 온 세상을 때려 부수듯이 달려들었었다. 정말 그런 밤들이 싫었다. 그러나 남편을 만나고부터 해주의 몸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발로 차버리듯 무지막지하게 해주를 대하던 이민우에 비해, 남편은 그녀를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이 소중하게 대했다. 그가 해주를 안을 때마다 그녀는 불빛이 명멸하는 밤의 바다를 빠른 속도로 둥둥 떠내려갔다. 그곳은 보석을 쏟아놓은 듯 불빛이 춤추는 긴 황금 바다였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강미경은 의자를 다시 세웠다.

“소설은 한국어로 먼저 출판한 다음에 영역을 할 거야. 체력과 능력이 딸리면 미국 작가에게 의뢰하면 돼”

소설을 써서 금세 돈방석에 앉을 것같이 그녀는 이야기에 한참이나 열중했다. 그러나 해주의 귀에는 허상의 세계에서 횡설수설 늘어놓는 혼잣말에 불과했다.

 

강미경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말짱한 정신으로 옛 일을 회상한 것이다.

“근데, 내가 소설을 구상하면서 생각해낸 건데, 아니 생각해낸 게 아니라 그런 생각이 진짜로 들었는데 말야, 이민우가 세월이 갈수록 비인간적이 되어 갔고 또 자살을 한 데에는 뭐가 있는 것 같아.”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혼자서 독백하는 것처럼 중얼댔다.

“혹시, 애경의 혼이 이민우한테 들러붙은 것이 아닐까? 너도 알겠지만, 애경이가 좀 이상했잖아. 이민우 하는 짓이 꼭 애경이 같아서 내가 깜짝깜짝 놀랠 때가 많았어. 술수를 써가지고 남을 옴짝달싹 못 하게 꽉 옭아매는 것도 똑같고, 성격이 포악한 것도 똑같고····.”

 

강미경은 애경이가 자기를 괴롭힌 얘기는 일체 않고 동생이 죽은 것이 애처로워 죽겠다는 듯이 눈물만 쏟았는데, 드디어 “너도 알겠지만.”으로 서두를 꺼내고는 똑같다를 반복하며 애경이와 이민우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둘이 그렇게 죽은 것도 똑같고····.”

죽었다는 사실이 같다는 말인지 죽은 상황이 같다는 말인지 그녀는 애매하게 말을 흘렸다. 이번 장편은 요리사인 남편과 교통사고를 당한 사실을 그대로 그릴 것이라 바로 전에 분명하게 말을 해놓고도 얘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 문제를 좀 깊이 파고들어 영혼의 세계로 끌고 가려고 해. 애경의 죽음을 타살로 몰고 가는 거야. 물론 표면에 나타내지는 말고 독자들에게 암시만 주는 거지. 그러면 소설이 더 흥미를 끌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영원히 미해결로 남는 살인 사건들도 많잖아?”

 

애경의 죽음이 교통사고라고 누누이 강조하던 강미경이 지금은 소설 속 애경의 죽음을 사실인 양 언급하고 있다. 교통사고를 타살로 몰고 간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그러면 ‘침묵의 비밀’ 속에 묻힌 애경의 죽음을 장편소설, ‘이제, 숙제는 끝났다’에서 파헤쳐 보겠다는 심사인가? 교통사고로 위장된 애경의 죽음, 타살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경찰에 신고도 않고 자살로 덮어버린 강미경과 이민우····. 그 침묵의 비밀이 숙제로 남아 그녀에게 소재를 제공한 것인가? 그러면서 장편소설, ‘이제, 숙제는 끝났다’에서의 이민우는 더 악질로 그려지는 것이다. 제이슨을 위하여.

“네 생각은 어떠니?”

그 순간 해주는 목구멍까지 치솟는 말을 꿀꺽 삼켰다.

‘그렇게 끌고 나가려면 애경이의 죽음이 타살인데 이민우가 덮어버린 걸로 해야죠. 그래서 억울하게 죽은 애경의 혼이 이민우한테 들러붙었다····. 그러면 소설의 줄거리가 타당성 있게 전개될 거예요.’

하지만 해주의 심정은 오늘밤에라도 꺼져 버릴지 모르는 촛불 같은 강미경의 심기를 조금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잘못하다간 또 불같이 화를 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소설의 소재가 교통사고에서 타살로 전환이 됐으나 모르는 척했다.

 

다행히 간벙인이 나타나 얘기는 거기서 그쳤다. 잘 시간이 넘었다면서 그녀는 휄체어를 조심스레 끌며 해주에게 눈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수많은 사연들이 숨어 있는 듯, 그 눈빛이 묘했다.

하나의 생각이 번개처럼 번쩍하고 정수리를 내려쳤다.

‘제이슨이 이민우를 진짜로 죽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제이슨 역시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이 아닐까?’

세상엔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인데도 강미경이 홀로 상상의 나래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나름대로의 각본을 짤 수도 있는 것이다. 너무나 큰 충격으로 인해 상상이 현실로 능히 둔갑할 수도 있다. 그 시간에 제이슨이 어디에 있었는지의 정확한 알리바이, 차고 천장에 목을 매고 있는 이민우를 아들이 언제 어떻게 발견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지 않았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내려놓았는지····. 이는 ’침묵의 비밀’, 애경이의 죽음에서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증거가 없었다면 미성년자였던 제이슨이 12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할 수는 없다. 언도가 내려져 지금은 사건이 종결됐어야 한다.

‘그럼 혹시 사형을? 아냐. 아니야. 내가 왜 이런 끔찍한 생각을?’

지금 강미경은 오직 한 가닥 소망의 불빛을 붙들고 살고 있다. 아들이 곧 석방되리라는 소망의 불빛, 그것이 그녀의 삶의 등불이다.

 

강미경이 열을 뿜어대는 장편소설, ‘이제, 숙제는 끝났다’가 정말 존재할까? 그러나 그 숙제는 영원히 끝나지 않고 '침묵의 비밀‘ 속에 묻혀버릴 가능성이 더 크다. 자려고 눈을 감았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생각이 얽히며 기분은 자꾸만 깊은 나락으로 가라앉았다. 닫힌 방 저쪽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기침 소리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힘이 없었다.

 

얼마쯤 지난 후 기침 소리는 잠잠해졌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눈가에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끝>

 

 

 

 

 

* 이 소설은 2014년 고원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침묵의 메아리”를 단편으로 개작한 작품입니다. 결말을 오픈했기에 마무리에 맞추어 줄거리가 약간은 변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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