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결혼 7 (마지막 회)
2012.07.14 14:43
아 버 지 의 결 혼
제 7 회
일주일 정도는 카테터(catheter, 방광의 요도에 연결하여 소변을 제거하는 기구)를 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소변을 자주 비워내야 하니 여간 귀찮은 노릇이 아니었다. 정미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녀가 아버지를 내팽개치고 계속 나가다니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집안에 이혼의 물살이 소용돌이 쳤는데도 숙자 씨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내색이 없었기에 더 불안했다. 이제 겨우 아버지의 마음이 가라앉은 듯한데 숙자 씨가 반전으로 치고 들어오면 정미는 그대로 당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지 않는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어 불안감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숙자 씨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야, 쥐도 새도 모르게 ‘에라 이때다.’ 하고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꼼짝도 않고 숙자 씨를 부려먹었다. 어찌나 엄살을 떠는지 참 뻔뻔하기도 했다. 본인이 해도 될 일이었으나, 아버지는 카테터를 달고 있다는 자체를 역겨워해 내려다보기도 싫어했다. 숙자 씨는 묵묵히 그 시중을 다 들었다. 노인 학교에도 가지 않고 일체 외출을 삼가면서 시간에 맞추어 약을 대령했다. 접촉 부위에 염증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라 항생제를 하루에 세 번 씩 챙겨먹어야 하고, 그 외에도 처방약을 시간 맞춰 먹어야 했다. 그동안에 병원도 멀리 하고, 약도 모르고 산 그에게는 참으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약은 독이라며 평생 비타민 한 알을 안 잡수신 분이다.
조마조마하던 정미의 가슴은 조금씩 진정이 돼 갔다.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의사가 말한,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아버지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카테터를 떼버렸었는데, 그날 밤 또다시 응급실로 향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시 카테터를 달고, 이번에는 열흘 이상을 견뎌내야 했다.
어느 할아버지는 좀 편해 보려고 재혼을 했는데 도리어 거꾸로 된 예도 있었다. 여자가 꼬랑꼬랑 아파서 할아버지가 그 시중을 들어야만 했다. 튼튼한 숙자 씨,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잠시라도 그녀를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숙자 씨는 참으로 아버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정미는 음식을 만들어 여느 때보다 자주 내려갔다. 그리고 “시중들기 힘드시지요?” 하고 고맙다는 말로 그녀를 추어주었다.
“할아버지가 약도 제 때에 못 챙겨 잡수시는데 어떡해요? 이런 시중은 얼마든지 들 수 있으니 괜찮아요. 호. 호. 호. 호. 나한텐 도리어 전화위복이 됐다고요.”
밝은 얼굴로 소리 내어 웃는 그녀를 바라보며 정미도 따라 웃었다. 전화위복? 그럼, 이런 시중이 아닌 저런 시중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전화위복’은 정미이게도, 아버지한테도, 또 숙자 씨에게도 다 해당이 되는 말이 되었다.
그 후부터는 자식들보다 숙자 씨가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아버지는 이혼에 관해 거론하지 않았다. 숙자 씨가 웰페어 못 타는 것을 늘 불평했는데, 그 돈을 받을 날도 가까워오고 있으니 그것도 이혼을 거론하지 않게 된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정신은 흐려져도 이해타산에는 밝아만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하나, 어쨌든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은 틀림없다. 응급실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병원 출입이 잦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아들 둘이 늙어 가는 모습이 측은해서 더는 이혼 소리를 안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천하를 손에 넣을 듯이 기세가 등등하던 큰아들도 지금은 완전히 기가 꺾였고, 작은아들은 형보다 더 늙어 보인다. 자식들을 들들 볶으면서도 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 훤하다. 세 부자의 얼굴이 그냥 삼 형제 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 똑같은 얼굴이 되어간다. 걸음걸이와 목소리도 어쩜 그렇게도 닮았는지, 옆으로 스칠 때는 느낌이 똑같아 누가 누군지 분간이 어렵다.
이제는 모두들 자신의 인생에 쉼표를 찍는 일이 빈번해져야 한다. 정미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리에 앉아 쉬며, 온 길을 돌아다보면 발아래 까마득한 저 길, 참 많이도 왔다. 여기저기 아프고, 어떤 땐 밥해 먹는 것조차도 귀찮다. 깐깐한 남편에 매이다 보니 가끔은 한 달만이라도 좋으니 과부가 되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튼튼한 숙자 씨가 아직까지는 내색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이다. 그것도 자기밖에 모르는 90 노인 치다꺼리를 해야 하니 말이다. 조강지처도 아닌 처지에.
오랜만에 정미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이번에는 숙자 씨도 동행이다. 웅장한 철문을 들어서니 눈앞에 탁 트인 푸름에 정미의 가슴도 활짝 열렸다. 코끝을 스치는 싱그러움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큰오빠가 하와이로 떠나면서 차를 주고 갔기에 정미의 기분이 더 날아갈 듯 상쾌하다. 그것도 새 차나 다름없는 캐딜락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보험 등등 차에 드는 모든 비용은 큰오빠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아버지와 정미의 섭섭했던 감정이 차 한 대로 다 풀려버렸다.
호숫가에는 하얀 오리 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한없이 펼쳐진 파란 잔디 위에 즐비하게 늘어선 소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군데군데 장식해놓은 조각들은 그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산등성이에는 무성한 잎사귀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그곳의 숲 향기가 향수처럼 달콤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 달콤함에 이끌려 눈부신 햇살이 숲을 향해 달려들어, 잎사귀들은 반짝반짝 눈망울을 굴렸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묘지, 그곳에는 생명의 힘이 용솟음 쳤다. 묘지의 의미와는 상반되는 생명력이었다. 정미는 죽은 이들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한껏 마시며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자리 잡은 이곳 글렌데일 묘지는 동양인이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시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 비문들을 둘러보면 중국 사람들을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성씨가 숱하게 많이 눈에 뜨인다. 어머니의 산소는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전망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신 떠나고, 여기 이 사람이 나를 잘 돌봐주고 있고, 또 앞으로도 내 옆에 계속 있겠다고 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나도 이제 당신 곁으로 갈 날이 머지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늘 그랬듯이, 어머니와 마주앉아 주고받는 식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정미가 같은 아파트에 살아 많이 의지가 된다는 말은 올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큰아들이 좋은 차를 정미한테 주었으니 당신도 기뻐하라는 둥, 숙자 씨의 존재에는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정미가 민망해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그녀의 손을 잡는데 갑자기 콧잔등이 시큰했다. 얼른 고개를 젖혀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떠가고 있었다.
떠가는 구름 속에 환히 웃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끝>
제 7 회
일주일 정도는 카테터(catheter, 방광의 요도에 연결하여 소변을 제거하는 기구)를 달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소변을 자주 비워내야 하니 여간 귀찮은 노릇이 아니었다. 정미는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녀가 아버지를 내팽개치고 계속 나가다니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동안 집안에 이혼의 물살이 소용돌이 쳤는데도 숙자 씨는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런 내색이 없었기에 더 불안했다. 이제 겨우 아버지의 마음이 가라앉은 듯한데 숙자 씨가 반전으로 치고 들어오면 정미는 그대로 당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지 않는가? 도무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어 불안감에는 점점 가속도가 붙었다. 숙자 씨가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야, 쥐도 새도 모르게 ‘에라 이때다.’ 하고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꼼짝도 않고 숙자 씨를 부려먹었다. 어찌나 엄살을 떠는지 참 뻔뻔하기도 했다. 본인이 해도 될 일이었으나, 아버지는 카테터를 달고 있다는 자체를 역겨워해 내려다보기도 싫어했다. 숙자 씨는 묵묵히 그 시중을 다 들었다. 노인 학교에도 가지 않고 일체 외출을 삼가면서 시간에 맞추어 약을 대령했다. 접촉 부위에 염증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라 항생제를 하루에 세 번 씩 챙겨먹어야 하고, 그 외에도 처방약을 시간 맞춰 먹어야 했다. 그동안에 병원도 멀리 하고, 약도 모르고 산 그에게는 참으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는 약은 독이라며 평생 비타민 한 알을 안 잡수신 분이다.
조마조마하던 정미의 가슴은 조금씩 진정이 돼 갔다. 휴우 하고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의사가 말한, 일주일이 지나자마자 아버지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카테터를 떼버렸었는데, 그날 밤 또다시 응급실로 향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다시 카테터를 달고, 이번에는 열흘 이상을 견뎌내야 했다.
어느 할아버지는 좀 편해 보려고 재혼을 했는데 도리어 거꾸로 된 예도 있었다. 여자가 꼬랑꼬랑 아파서 할아버지가 그 시중을 들어야만 했다. 튼튼한 숙자 씨,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잠시라도 그녀를 의심한 것이 미안했다. 숙자 씨는 참으로 아버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정미는 음식을 만들어 여느 때보다 자주 내려갔다. 그리고 “시중들기 힘드시지요?” 하고 고맙다는 말로 그녀를 추어주었다.
“할아버지가 약도 제 때에 못 챙겨 잡수시는데 어떡해요? 이런 시중은 얼마든지 들 수 있으니 괜찮아요. 호. 호. 호. 호. 나한텐 도리어 전화위복이 됐다고요.”
밝은 얼굴로 소리 내어 웃는 그녀를 바라보며 정미도 따라 웃었다. 전화위복? 그럼, 이런 시중이 아닌 저런 시중이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이 ‘전화위복’은 정미이게도, 아버지한테도, 또 숙자 씨에게도 다 해당이 되는 말이 되었다.
그 후부터는 자식들보다 숙자 씨가 낫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아버지는 이혼에 관해 거론하지 않았다. 숙자 씨가 웰페어 못 타는 것을 늘 불평했는데, 그 돈을 받을 날도 가까워오고 있으니 그것도 이혼을 거론하지 않게 된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정신은 흐려져도 이해타산에는 밝아만 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연민을 느끼기도 하나, 어쨌든 올바른 판단을 한 것은 틀림없다. 응급실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병원 출입이 잦아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도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아들 둘이 늙어 가는 모습이 측은해서 더는 이혼 소리를 안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천하를 손에 넣을 듯이 기세가 등등하던 큰아들도 지금은 완전히 기가 꺾였고, 작은아들은 형보다 더 늙어 보인다. 자식들을 들들 볶으면서도 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 훤하다. 세 부자의 얼굴이 그냥 삼 형제 같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들은 더 똑같은 얼굴이 되어간다. 걸음걸이와 목소리도 어쩜 그렇게도 닮았는지, 옆으로 스칠 때는 느낌이 똑같아 누가 누군지 분간이 어렵다.
이제는 모두들 자신의 인생에 쉼표를 찍는 일이 빈번해져야 한다. 정미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리에 앉아 쉬며, 온 길을 돌아다보면 발아래 까마득한 저 길, 참 많이도 왔다. 여기저기 아프고, 어떤 땐 밥해 먹는 것조차도 귀찮다. 깐깐한 남편에 매이다 보니 가끔은 한 달만이라도 좋으니 과부가 되어 봤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 혼자 쓴웃음을 짓기도 한다. 튼튼한 숙자 씨가 아직까지는 내색 않고 있지만 앞으로는 모를 일이다. 그것도 자기밖에 모르는 90 노인 치다꺼리를 해야 하니 말이다. 조강지처도 아닌 처지에.
오랜만에 정미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산소를 찾았다. 이번에는 숙자 씨도 동행이다. 웅장한 철문을 들어서니 눈앞에 탁 트인 푸름에 정미의 가슴도 활짝 열렸다. 코끝을 스치는 싱그러움이 무척이나 상쾌했다. 큰오빠가 하와이로 떠나면서 차를 주고 갔기에 정미의 기분이 더 날아갈 듯 상쾌하다. 그것도 새 차나 다름없는 캐딜락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보험 등등 차에 드는 모든 비용은 큰오빠가 부담하겠다고 했다. 아버지와 정미의 섭섭했던 감정이 차 한 대로 다 풀려버렸다.
호숫가에는 하얀 오리 떼가 한가로이 노닐고, 한없이 펼쳐진 파란 잔디 위에 즐비하게 늘어선 소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군데군데 장식해놓은 조각들은 그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산등성이에는 무성한 잎사귀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그곳의 숲 향기가 향수처럼 달콤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 달콤함에 이끌려 눈부신 햇살이 숲을 향해 달려들어, 잎사귀들은 반짝반짝 눈망울을 굴렸다.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묘지, 그곳에는 생명의 힘이 용솟음 쳤다. 묘지의 의미와는 상반되는 생명력이었다. 정미는 죽은 이들도 초록의 싱그러움을 한껏 마시며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자리 잡은 이곳 글렌데일 묘지는 동양인이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시절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 비문들을 둘러보면 중국 사람들을 비롯해 한국 사람들의 성씨가 숱하게 많이 눈에 뜨인다. 어머니의 산소는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전망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는 높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당신 떠나고, 여기 이 사람이 나를 잘 돌봐주고 있고, 또 앞으로도 내 옆에 계속 있겠다고 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나도 이제 당신 곁으로 갈 날이 머지않았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늘 그랬듯이, 어머니와 마주앉아 주고받는 식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정미가 같은 아파트에 살아 많이 의지가 된다는 말은 올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다. 큰아들이 좋은 차를 정미한테 주었으니 당신도 기뻐하라는 둥, 숙자 씨의 존재에는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정미가 민망해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그녀의 손을 잡는데 갑자기 콧잔등이 시큰했다. 얼른 고개를 젖혀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떠가고 있었다.
떠가는 구름 속에 환히 웃는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끝>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89 | 연작소설-콩밭데기 만세/3 바람이 되어 | 김영강 | 2021.06.25 | 53 |
88 | 연작소설-콩밭데기 만세/2 황혼에 핀 연분홍 꽃이파리 | 김영강 | 2021.06.25 | 59 |
87 | 연작소설-콩밭데기 만세/1 미국 사돈과 무공해 인간 | 김영강 | 2021.06.25 | 73 |
86 | 삼부작 - 꿈꾸는 우리 가족 / 3부 본향을 꿈꾸는 엄마 | 김영강 | 2021.05.05 | 68 |
85 | 삼부작 - 꿈꾸는 우리 가족 / 2부 왕을 꿈꾸는 아빠 | 김영강 | 2021.05.05 | 63 |
84 | 삼부작 - 꿈꾸는 우리 가족 / 1부 탈출을 꿈꾸는 아이 | 김영강 | 2021.05.05 | 62 |
83 | 단편소설 / 백까마귀의 눈물 | 김영강 | 2021.05.03 | 84 |
82 | 단편소설 / 스러져가는 별들 | 김영강 | 2019.11.05 | 59 |
81 | 연재소설 <침묵의 메아리>를 끝내고 | 김영강 | 2017.03.27 | 97 |
80 | 중단편 소설 / 이제, 숙제는 끝났다 | 김영강 | 2017.02.13 | 66 |
79 | 단편연재 / 백한 번째 편지 (연재 캐나다 6 - 10 ) | 김영강 | 2016.08.11 | 332 |
78 | 단편연재 / 백한 번째 편지 (연재 캐나다 1 - 5 ) | 김영강 | 2016.08.11 | 416 |
77 | 수필 모음 (2) | 김영강 | 2016.01.26 | 1005 |
76 | 수필 모음 (1) [1] | 김영강 | 2016.01.26 | 1150 |
75 | 단편소설 / 나는 살고 싶다 | 김영강 | 2014.12.02 | 642 |
74 | 중편소설 / 가시꽃 향기 (하) | 김영강 | 2014.01.31 | 547 |
73 | 중편소설 / 가시꽃 향기 (상) | 김영강 | 2014.01.31 | 727 |
» | 아버지의 결혼 7 (마지막 회) [1] | 김영강 | 2012.07.14 | 1055 |
71 | 아버지의 결혼 수정 연재 6 [1] | 김영강 | 2012.07.12 | 969 |
70 | 단편소설 / 아버지의 결혼 수정 연재 5 [1] | 김영강 | 2012.07.12 | 973 |
강기영 (2012-07-17 11:02:34)
< 비바, 숙자씨!>
180도로 돌려 놓지 않고 예상했던 대로 끝을 맺었습니다. 다행입니다.
마지막 회는 기다려서 1등으로 읽는 것 같네요.
소설 전체가 잘 읽혔고, 끝도 잘 맺으셨는데 이제 <아버지의 결혼>을 기다려서 읽는 재미가 없어졌으니 서운해서 어쩌죠? 속히 다른 소설을 들고 오셔서 다시 뵙게 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가까이 계셨으면 <쫑파티>라도 갖고 싶은데 너무 멀리 계시는군요.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김영강 (2012-07-17 11:03:17)
기다려주시고 또 1등으로 읽어주시어 감사합니다. 소설이 잘 읽혔고 끝도 잘 맺었다 하시니 더 고맙고요. 멀리 있는 소설가인데도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시고 또 댓글 달아 주신 것, <쫑파티> 그 이상 제게는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캐나다한인문이협회 카페에 제 소설을 올리게 된 것, 제게는 행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빛과 그림자 (2012-07-17 11:08:21)
저도 결말이 궁금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숙자씨는 착한 여자였군요.
더 험악할 수도 있는 인간관계, 그중에서도 가족간의 갈등을 그나마 아직 철이 덜 든 아버지의 응석과 속이 깊은 숙자씨의 화합으로 봉합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웬지 소설 속에서나마 조금은 미화된 현실을 보고 싶은 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져보는 작은 소망이 아닌가 합니다.
그동안 아버지의 결혼을 함께 지켜보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이제 노령화 사회에 접어든 우리 모두가 풀어야 할 노인들의 소외, 사랑, 삶의 질... 등등 심각하지만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사회문제, 가족문제를 실감나게 잘 그리셨단 생각이 드는군요.
김영강 (2012-07-17 11:09:11)
가족의 갈등 구조를 그린 세태소설이라 결말을 아름답게 지었습니다. 작가가 결말을 딱 지어주는 소설을 저는 그리 환영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빛과 그림자 님 말씀대로 "소설 속에서나마 조금은 미화된 현실을 보고 싶은 독자의 작은 소망"을 충족시켜 주기 위함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문제들"을 적당히 까발기면서 은유로 살짝살짝 비껴갔는데도 다 감지하시고, 실감나게 잘 그리셨다고 하시니 용기가 푹푹 솟습니다. 고맙습니다.
빛과 그림자 (2012-07-17 11:09:51)
< 이제는 모두들 자신의 인생에 쉼표를 찍는 일이 빈번해져야 한다.> 글 속 정미씨처럼 잠시 쉬었다가 다시 만나뵙길 기대합니다. 강선생님 말씀처럼 언제고 쫑파티를 하긴 해야 할텐데...어떻게 하나... 남은 숙제 하나 갖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영강 (2012-07-17 11:10:32)
그동안 시방, 수필방, 소설방을 부지런히 들락거렸습니다. 그곳에는 빛과 그림자 님의 등불이 카페를 환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관심있게 남의 글을 읽어주고 정성스레 댓글을 달아주는 마음이 바로 등불 아닐까요? 여기저기서 또 다른 등불들이 불을 밝히고 있으니 카페가 더욱 더 환해지리라 믿습니다. 그 등불들이 이미 <쫑파티>를 대신했으니 숙제는 다 풀렸습니다.
jeongchoi (2012-07-17 11:11:31)
무료한 하루하루에서 청량 제 같은 글이었음니다 좋은 가족의 한사람 한사람 표현도 좋았읍니다 제마음도 잔잔해지는 기분 입니다 이제 언제 또 다음 소설을 보내 주시려나 하고 기다리겠읍니다 감사 합니다
김영강 (2012-07-17 11:13:43)
"무료한 하루에 청량제 같은 글"이라고 과찬을 해주시니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합니다. 앞으로도 소설이 팍팍 계속 나올 것 같고요. 그런데 카페 이방 저방을 들여다보아도 jeongchoi 님의 글은 안 보이네요. 저 역시 기다릴게요.
손정숙 (2012-07-17 11:14:27)
먼저 장에서 주신 답글을 읽고 7회로 넘어오니 그 연장선인 듯 너무 잔잔하고 고요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먼저의 종결을 그대로 두고 180도 돌아서 숙자씨께 엎어지는 극적인 연출을 했으면 어땠을까 나름대로의 종결을 상상해 보다가 역시 아름다운 소설이라 감탄합니다. Never say GOOD BYE! 라는 영화 있었지요. 전 환영파티를 더 좋아합니다.
속히 돌쳐 옵서예! 내내 건강하시기를 ..^^데이지
김영강 (2012-07-17 11:14:59)
"잔잔하고 고요하다는" 느낌,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주인공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드디어 집안에 평화가 깃들었으니까요. 가족 문제를 그린 소설이라 문제를 잘 마무리 지어야 될 것 같아 아름답게 끝냈습니다. 저는 지금 수필방 시방을 방문하면서 손 선생님 글을 계속 만나고 있습니다. "육 피트의 내장", 주제인 비이만 할머니의 얘기는 잠깐 뒤로하고 저는 손 선생님의 공부를 향한 그 강하신 마음가짐에 또 김동 먹었습니다.
달샘 (2012-07-17 11:15:45)
모두들 좋아해 주시니 나도 덩달아 좋으네요.
헤피엔딩으로 끝나서 또 개운하기도 하고요.
또 만나요. 해정언니.
김영강 (2012-07-17 11:16:22)
덕분에 <아버지의 결혼>이 더 빛을 보게 됐어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시고 또 호응해 주실 줄은 진짜 몰랐거든요. 그렇죠? 이 소설은 아무래도 헤피 앤딩으로 끝내는 것이 정답 맞지요? 단편을 연재로 올리는 것, 글마루 카페에도 한 번 시도해 보심이 어떨는지요?
신영봉 (2012-07-17 11:17:18)
이곳 토론토에서도 L.A 에 계신 선배님의 글을 대할 수 있어서 매우 반가웠습니다.
김영강 (2012-07-17 11:18:01)
이장희랑 동갑네시라고요? 저보다는 한참? 반가워요 후배님. 신영봉 님을 만나려고 이방 저방을 들여다봤지요. "웃기는 건망증"에서는 절실히 공감하고 웃고, "빨간 조끼"를 읽으면서는 내 빨간 코트가 생각났어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코트예요. 아주 새빨간. LA는 코트가 필요 없다고들 하나, 나이를 먹어 가니 코트도 필요하고 내복도 필요하네요. 아이고, 먹어가는 게 아니라 이미 다 먹어버렸습니다 그려. 추울 나이.
석천 이상묵 (2012-07-17 11:19:49)
소설을 성공적으로 올려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작가와 독자들의 아름다운 앙상블이었고요. 여기 소설가와의 교감도 수확이 됐음 합니다.
토론토 사시는 김채형 작가의 단편이 이어진 다음 다른 작품을 바로 올려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숙자씨가 말하는 전화위복의 내용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전 부인의 묘소에까지 동행한 것을 보면 전화위복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아마 숙자씨의 마음을 사로잡는 특단의 배려를 할아버지가 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비법은 널리 유통돼도 좋을듯 하군요.
수고하셨고 거듭 감사 드립니다.
김영강 (2012-07-17 11:20:59)
< 아버지의 결혼>을 카페에 올리게 해준 캐나다문인협회에 제가 도리어 감사를 드려야지요. 더구나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호응을 해주셔서 "작가와 독자들의 아름다운 앙상블"이 이루어져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여기 소설가들과의 교감도 제게는 큰 수확이 됐습니다. 한데, 숙자 씨가 말하는 "전화위복"의 내용을 잘 알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숙자 씨가 "이불을 똘똘 말아쥐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저런 시중"은 안 들어도 된다는 거지요. 콕 찝어내기가 좀 거시기해서 메타포로 복선을 깔았는데, 끄집어내서 표현을 해도 될 듯 싶습니다. 그런데 이 비법이 널리 유통될 수는 없습니다. 여자도 여자 나름이니까요.
김영강 (2012-07-17 11:21:36)
김채형 작가님의 단편이 이어진 다음, 제 작품을요? 제게는 과분한 말씀이지만 그래도 될는지 망설여집니다. 저는 아주 나중 차례가 돼도 좋습니다.
물방울 (2012-07-17 11:28:29)
짧지만 부모님과 자식들 그리고 나머지 생을 살아가는 부모님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였어요. 어려움을 지내고 나니 서로들 얼마나 필요하고 감사한지를 깨닫게 되지요. 정미씨 엄마의 산소를 방문하며 다시 한번 삶을 돌아보고 동기간과 부모님의 교량 역활을 하는 딸로서 충실한 모습 보기 좋습니다. 다시 꼬소하기 보다 구수해 지신 부모님 때문에 잔잔한 감동이 전해 지네요. 아무리 나이가 들으셨어도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고 자식들 역시 그래야 두루두루 안심입니다.
선생님 너무 수고 많으셨네요.
김영강 (2012-07-21 16:31:14)
< 아버지의 결혼>, 이미 발표가 된 소설이지만 이렇게 인터넷에 올리고 보니, 댓글에서 도움을 받습니다. 확실하게 지적을 하고, 더 자세하게 끄집어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요. 물방울 님 말씀대로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행복해져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들 역시 두루두루 안심"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두루두루 마음 편하라고 이 소설은 해피 엔딩입니다. 정미가 제일 기분이 좋아보입니다. 차도 생겼으니 앞으로 아버지와 숙자 씨를 태우고 다닐 수도 있게 됐고요. 모두 시니어 세대인 등장 인물들,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옵소서.
메로나 박인숙 (2012-07-21 16:33:31)
호흡이 긴 소설을 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흥미진진하게 풀어내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읽는동안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강 (2012-07-21 16:35:02)
그간에 수필방, 시방을 방문해 봐도 메로나 님을 만날 수가 없었는데 카페회원산문방에 갔더니 계시네요. 어젯밤, 외출에서 아주 늦게 들어와 메로나 님을 만나게 됐는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품을 다 읽었습니다. "모든 단어와 표현에 불이 켜지듯 반짝이는 생명을 입히는 그녀", 등등. 저 역시 "으악" 하고 보니 석천 선생님께서도 한말씀 하셨더군요.
"멸치의 꿈"은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요? 꼭 기회가 왔음 좋겠습니다. 물론 우리글로요. 멀리 있는 소설가의 글, 흥미진진, 그리고 읽는 동안 즐거웠다고 하시니 저 또한 즐겁습니다.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