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콩밭데기 만세/3 바람이 되어
2021.06.25 07:11
연작소설 - 콩밭떼기 만세
3. 바람이 되어
명 간호사와 첫 만남 이후로, 그녀가 아부지 집에 왔을 때, 교수님이 나를 불러서 밥을 한 번 같이 묵었습니다.
그날, 제자사모님이 맛있는 반찬을 마이 해서 잘 묵고 싸오기까지 했지요. 또 한 번은 아부지가 신세를 마이 진다꼬 아주 근사한 미국식당에서 밥을 거하게 산 적도 있습니다. 비프스떼끼라 카는데, 세상에 세상에··· 그리 연한 고기는 생전처음 묵어 봤어요. 입에서 살살 녹더라꼬요.
명 간호사는 남편과는 일찍 사별하고 서른 중반에 아들 하나 덱고 미국 왔답디다. 안사돈이 ‘미스 명’이라고 소개를 한 거는, 현재는 독신이다 뭐 그런 뜻이었나 봅니다. 명 간호사 이름이 안젤라라는 것도 알았어예. 안젤라? 이름이 참 좋네예. 그 뜻이 바로 천사 아입니까? 내가 본 첫인상이 딱 이름 그대로였지요.
그 좋은 이름 놔두고 안사돈이 와 미스 명이라고 소개를 했는지 모리겠네요. 명 간호사가 독신이라는 걸 내한테 밝힐 필요도 없는데 말입니다. 친한 사이면 이름 부린다 카더마는. 저거 둘이는 친해도, 내가 완전 한국적인 한국 남자라 미국 이름을 피했나? 아이구 마, 내가 그런 거 깊이 생각할 게 머 있노? 안젤라건, 미스 명이건 상관할 게 뭐 있노?
어쨌든 간에 내는 안젤라가 명 간호사보다는 부리기가 좋네예. 미국서는 친하모 이름 부린다 카더마는···
그날 식사 도중에 제자사모님이 안젤라랑 내를 은근히 묶을라 캐서 여엉 어색한 자리가 되었었어요. 자기네끼리는 말이 오고간 듯한 느낌이 들었어예. 말이나 됩니까? 공부 마이 해서 똑똑하고, 또 젊고 예쁜 여자가 내한테 가당키나 합니까? 내보다는 나이가 10년도 더 젊어요.
더구나 깍쟁이 중에도 상깍쟁이로 보이는데 내 같은 촌놈은 어림도 없지요. 암, 어림도 없구말구요. 말도 안 되는 말이지요.
그런데, 머리는 그리 돌아갔으나 마음은 그기 아닌기라요. 옛날에 아내 만났을 적 생각이 나며, 선녀와 나무꾼이 재현되는 기이 아인가 하고 가슴이 두근두근했어요. 떼쟁이라꼬 결정타를 날렸으모 멀리 내빼야 되는 기이 정상 아입니까? 이 콩밭떼기 성질에 말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콩밭떼기는 오데로 간기고? 첫 대면에서 천사 같아 보인 기이 탁 머리에 백히서 그런 긴가?
근데, 그날 저녁에 교수님이 제 방에를 오셨어요.
“공 선생, 아까는 미안했네. 실은, 집사람 성격이 너무 적극적이다 보니 좀 주책스러운 데가 있어요. 아까는 실례를 했어요. 우리 딸한테 공 선생이 어떠냐고 집사람이 몇 번을 나한테 얘길 했는데 내가 가만있으니까 답답해서 그만 말이 나왔나 봅니다.”
‘아닙니다. 실례 안 했습니다.‘ 하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도는데 말은 안 나오고 아까 낮에 식사도중에 사모님이 얘길 꺼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슴에서는 막 파도가 출렁출렁했어요, 한데, 입안에서 돌던 말은 어디로 갔는지 머리는 엉뚱한 방향으로 내빼고 있었어요.
‘서로가 좀 비슷해야지 여러 가지로 너무 차이가 나. 내가 너무 부족해서 안 돼 안 돼.’
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는데 교수님이 갑자기 말의 연결에서 벗어나 제 칭찬을 했어요.
“공 선생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좋은 사람이에요. 온갖 악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공 선생이야말로 참으로 순수하고 선한 사람입니다.”
무안해서 할 말을 잃고 “아이 별 말씀을요···” 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한마디를 했는데 교수님께서 화제를 바꾸었습니다.
“실은, 딸아이가 젊은 나이에 혼자되었지만, 아들 때문에 재혼 같은 건 상상도 않았어요.”
아들 때문이라니······
교수님으로부터 참 슬픈 이야기가 흘러나왔습니다.
딸이 결혼하고 아들을 낳았는데, 장애아였답니다.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도 몸을 뒤집지도 몬하고 해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정밀검사를 받았대요.
검사 결과, 뇌에서 까만 점이 별견되었는데, 그기이 혹이 아니고 구멍이었다 캅니다. 혹이라면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인데 구멍이라서 수술이 불가능했다네요. 결국은 선천성 소아마비라는 진단이 내려졌답니다.
그러나 머리는 완전 천재였대요. 머라 카더라? 머? 하일리 기프디드? 그러니까 한국말로 하모 천재학교쯤 되겠지요? 거서도 일등만 했답니다.
아이가 어릴 적부터 그리 질문을 마이 했답니다. 하늘은 왜 파라냐, 노을은 왜 빨가냐 등등, 우주에 대해서 많은 걸 묻고 아주 궁금해 했대네요. 모두가 다 명 간호사는 생각도 못한 질문들이라, 그거를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대답을 해줬답니다.
그라고 아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음악회 등, 미술전시회에도 데리고 댕기고 여행도 참 마이 댕깄다 캅니다. 무슨 행사나 모임에도 참석을 하구요.
자신의 인생을 아들에게 온통 다 바친 거지요. 아니, 그기이 자신의 인생이었을 겁니다.
사위는 아이가 세 살 때 세상 떠나고, 아이 열 살 적에 길이 열려 미국으로 왔대네요. 교수님 부부가 미국에 온 것도 딸 때문이었다고 해요. 사모님은 손자 뒷바라지하는 딸 뒷바라지하느라고 평생을 가슴 미어지게 살다가, 그래도 손주가 박사학위 받는 거는 보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우주공학박사 학위까지 받은 겁니다. 어머니가 기적을 이루어낸 거지요. 진짜진짜 인간승리입니다.
교수님 얘기를 들으면서 깜짝짬짝 울매나 놀랬는지 모립니다. 본인의 의지도 의지이지만 엄마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헌신에 감동해서 눈물이 났어요.
아! 명 간호사! 대단합니다. 훌륭합니다. 존경합니다.
아들은 지금 서른 중반인데, 재택근무를 하면서 정부기관의 우주공학 연구팀 일원으로 일하고 있대네요. 물론 엄마랑 함께 살면서요. 엄마가 지 때매 평생을 희생하는 것을 늘 가슴 아파하는 아들이래요. 언젠가 한 번은 엄마도 남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꼬 할아버지한테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군요.
“딸애가 아들 하나에만 온갖 정신을 쏟고 사느라고, 남자가 호감을 보이며 다가와도 일체 눈을 안 돌려요. 찬바람으로 다 싹싹 쓸어버려요. 더구나 한 번 안 좋은 일이 있고부터는 더해요.”
교수님 말씀인즉, 딸이 어떤 남자한테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는구먼요. 첫째로 아들한테 잘해주고, 또 둘이서 좋아해 결혼까지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은 남자가 떠나버렸답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이 아주 나뿐 놈이었대요. 장애아들 둔 것을 노골적으로 성처를 줬다니······ 그것도 떠나기 위한 방편으로요. 어쨌든 집 한 채를 날렸다는구먼요. 아주 홀랑 쏙았더래요. 완전 이용만 당했다지 멉니까? 그래서 그 담부터는 남자 기피증이 생겨 주위에 남자들이 얼씬거리기만 해도 톡톡 쏘아서 다 도망을 치게 만든다네요.
아! 그래서 나한테도 그랬었구나.
“남자들한테는 야박해도 아픈 사람들한테는 얼마나 잘하는지, 우리 딸만 찾는 환자들이 많아요. 사돈댁과도 아주 친하게 지낸다고 해요. 특히 안사돈과는 아주 가까이 지낸답니다.”
“아! 네에······ 저도 그리 느꼈습니다.”
“나도 나이 들다 보니 아픈 데가 많답니다. 다행히 집사람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나까지 딸한테 짐이 되면 어쩌나 하고 걱정 많이 했었지요.”
가마이 생각을 해본께 교수님이 80이 넘은 나이에 재혼을 하신 것도, 그라고 노인아파트로 분가를 하신 것도 딸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것 같아요. 그런 줄도 모리고 내는 80 넘어서 재혼하신 거를 이상하게 생각했거덩요. 이제 이해가 갑니다.
그라고 그 며칠 후에야 ‘아1’ 하고 언뜻 머리를 스친 어떤 생각이 있어요. 교수님이 그날 제 방에 들른 것이 재자사모님이 주책을 부려 미안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딸에게 장애아 아들이 있다는 것을 나한테 알려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구요.
가끔 저는 교수님이 김 장로님과 비슷한 데가 마이 있다꼬 느낍니다. 참 감사하지요. 주위에 이렇게 좋은 분들이 있다는 것이···
내는 마 배운 기 없어서 잘은 모릅니다만도, 세상이 온통 나쁜 놈들 천지라 캐쌌는데, 그래도 나쁜 놈들보다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그래 생각합니다. 그래 믿어요. 그라이 내 같은 무지랭이도 이래 살아남아서 이래 잘 사는 거 아입니까! 그라이 마 쪼매라도 착한 인간, 좋은 사람 될라꼬 애쓰며 살아야지예, 나쁜 짓 하지 말고요! 마, 그리만 살모 내는 앞으로도 그냥 지금 맹키로 잘 살 거 같아예. 막연하게 어떤 믿음이 있는 기라요. 좋은 사람 돼가꼬 열심히 좋은 일해서 이 세상에 보탬이 되고 남한테 도움이 되면 그기 성공한 삶 아이겠습니까?
하이고, 이거 공자님 앞에서 문자 써서 안 됐네예, 미안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떤 사람은 내를 바보, 축구라 캅니다, 완전 천치 취급을 하는 기라요. 제발 정신 좀 차리라꼬 충고를 해요. 된장인지 똥인지도 분간을 몬 한다는 겁니다.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거 맹키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거라요.
김 장로님이나 이 교수님은 지를 순수하다꼬 좋은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이 분명하다꼬 지는 그래 생각합니다. 그러니까니 김 장로님은 지를 무공해인간이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신 거 아이겠어요? 한데, 그 사람은 그게 바로 바보라는 뜻과 같다는 깁니다. 정말 그런가예? 그 사람은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인데, 사람을 믿지를 못해요.
앞으로 무신 겁나는 일이 터질지도 모리는 기이 세상인데, 너는 참 천하태평 성질도 좋다야아-- 그러다가 나중에는 분명히 크게 당한다꼬! 당해! 그란답니다.
내 보고 무식해서 그렇다는 거겠지요. 자기는 공부 마이 했거덩요.
글쎄올시다요···.
하이고, 높은 자리에는 맨 학교 마이 댕기고 공부 마이 한 사람들만 앉아 있잖습니까? 그런데, 세상이 와 이래 어지러운지 모리겠네요! 그기 다 진짜 나쁜 짓은 공부 마이한 자슥들이 하기 때문 아니겠어요? 한 번은 테레비에서 그랍디다. 아주 완전 까놓고 사기를 친다꼬요. 그기 다 정직하지 못해 그리 된 기 아이겠어요? 학교에서는 그런 거 안 갈켜주나요?
근데 또 웃기는 말도 있습디다. 대학교 중퇴해야 성공한다 카는··· 그런 사람이 많타카던데.... 그 말이 사실인교?
거 뭐더라? 아, 빌 게이츠라카는 사람도 그렇고, 스티브 잡스라카는 사람도 그렇고··· 좋은 학교 잘 댕기다가 티이나와 크게 성공했담서요?
그라고 또 어느 분 왈, 내 오지랖이 너무 넓다고 이제 좀 작작 나서라면서 범위를 줄이래요 줄여! 줄여! 그라다가 오히려 상대방한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네요. 글쎄올시다. 내는 나서는 기이 아이고 상대방을 도와주고 싶어서 그라는 긴데 말입니다.
그라고 보이, 헷갈리기도 합니다. 내는 남을 위해서 한다꼬 하는 긴데, 상대에 따라서는 상처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하고요. 그러니까니 남을 도와주는 일에도 상대방을 입장을 먼첨 생각해라, 머 그런 말 같네예.
상대방 입장을 생각 몬 하고 내 혼자서 찧고 까분 적이 있긴 있어예. 예전에 내가 사돈을 무지 미워한 적이 있잖습니까? 낼로 무시한다꼬요. 그라고 본께네, 사돈 입장에서는 그럴 수고 있겠다 싶어예. 아니 백이면 백 사람, 다 그랬을 겁니다. 근데 그거를 이해 몬 하고 그리도 미워한 기이 후회가 됩니다. 암 때메 고통이 심한 것도 모리고 만날 얼굴 찡그린다꼬 미워한 것도 후회가 막심합니다.
사돈이 암에 걸린 거를 알고부터는 너무 안돼서 내가 잘못한 거만 자꾸 생각나서 혼났구먼요. 지금 건강 회복이 돼서 천만다행이지, 만일 무신 일이나 생겼시모 우짤 뻔했겠십니까? 내가 미안해서 몬 살지요. 몬 살아.
교수님이 제 방에 다녀가신 이후로 자꾸 안젤라 생각이 나고 밤에도 잠을 설칠 때가 많았습니다. 한참 잊고 살았던 아내 생각도 나고요. 교육대학 졸업하자마자 두메산골로 발령받아 농사꾼 만나 결혼하고, 딸 하나 낳고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 떠난 아내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의 아내 모습을 그려보려니, 안젤라 얼굴과 겹쳐지면서 콧잔등이 시큰해지네예. 그라고 보이, 그녀가 아내와 마이 닮았어예.
그녀가 아부지 집에 올 때가 됐는데 하고 은근히 기다려지는 요즘입니다. 그날 제자사모님이 괜히 주책을 부려, 아부지한테 왔다가 고마 가뿌맀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여자라고는 진짜진짜 그림의 떡이라고 완전 포기하고 산 이 콩밭떼기올시다. 아니, 그림이니, 떡이니, 하는 그런 말은 내 사전에는 없었습니다. 김이 몰씬몰씬 나는 떡이 눈앞에 보여도 그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않았어예. 감정이 고마 딱 굳어 돌덩어리가 돼버렸는지 무감정, 무감정··· 무감정이었습니다.
일편단심 민들레야! 오직 아내뿐이었지요. 아! 옛날 옛적··· 나무꾼이 선녀를 흠모하던 그때를 생각하니, 완전 돌덩어리인 내 가슴에 솜사탕이 사르르 녹아듭니다.
변화가 오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변화가···
아내 가고 처음으로, 뭔가 다른 내면의 갈망이 지를 흔들 것만 같은···
아이고! 이를 우짭니까? 이를 우짭니까?
하루아침에 실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 생겼어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지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만날 남편 아침을 준비하던 안사돈이 해가 중천에 뜨도록 기척이 없어, 이상해서 데이지가 침실 문을 열어본께 글쎄, 침대에서 떨어져서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 있더래요. 놀래서 급히 가까이 가보이, 진짜 죽어 있더랍니다. 사인은 심장미비라네요.
그 순간에 누가 같이 있기만 했어도 죽지는 않았실 낀데. 사돈 방처럼 응급시에 필요한 조치가 돼만 있었더라도 죽지는 않았실 낀데. 안사돈한테 이런 응급상황이 발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소리라도 질렀더라면··· 그러나, 방도 너리고 집도 커서 들리지도 않았실 낍니다.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밀입니까? 정말정말 너무 합니다. 신이 있으모 말 좀 해 보이소! 남편 간호에 온 힘을 다 쏟았는데요!··· 이기이 오데 말이나 됩니까?
몸이 그 지경이 되도록 본인도 집안사람도 별로 신경을 안 썼다고 합디다. 두 남자가 워낙에 환자이다 보니 그리 됐을까예? 그레고리와 결혼을 하고, 미국에 따라 온 다음에는 일본에 있는 가족하고도 별 연락 없이 살았다고 해요. 울매나 외로웠을까요? 전 남편한테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어려서 죽었다고 해요.
아, 불쌍한 사람. 딸이라도 옆에 있었더라면 잘해 주라꼬, 잘해 주라꼬 그랬을 낀데···
장례식 때는 독일에서 아들도 오고, 선교사 딸도 오고 다 왔습디다. 이미 죽은 다음인데, 땅을 치고 울고불고 해봤자 머합니꺼? 아무 짝에도 소용 없다꼬요.
사돈 양반이 그리도 슬프게 마이 울데요. 비쩍 마른 외모 맹키로 맘도 비쩍 말라 보이는데도, 그리도 슬프게 마이마이 웁디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슬프게 웁디다. 자기 대신 아내가 갔다고 생각하는 거 같데예. 울면서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무신 말인지 한 개도 몬 알아듣겠는 거를 딸아이가 대충 통역을 해줬습니다.
“그래 당신이 못 다한 목숨까지도 내가 악착스레 살아갈게. 당신 몫까지 살 테
니 걱정마! 여보,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내 사랑 릴리!”
근데, 안젤라가 조가를 불러 깜짝 놀랐습니다. 안사돈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그녀가 조가를 부를 줄은 꿈에도 생각 몬 한 일입니다. 실은, 식장에 들어서자마자 혹시 그녀가 왔나 하고 부지런히 눈을 움직였으나 보이지가 않아 이상하다 했더니 사무실에 있었나 봅니다.
그녀의 노래 부르는 모습을 가마이 보고 있노라니, 아내와 많이 닮았다는 것을 또 느꼈어요. 목소리도 참 비슷했어요. 옛날에 아내가 두메산골에서 야학 선생 할 때, 풍금 치면서 노래 가르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때 내가 아내의 노래를 듣다가 운 적이 있어요. ‘울밑이 선 봉선화야!’···
아내의 모습이 딱 울밑에 선 봉선화처럼 외로워 보였지요.
노래 부르는 안젤라의 모습도 아주아주 외롭고, 너무너무 슬퍼 보입니다. 와 안 외롭겠습니까? 또 그 슬픔이 오죽하겠습니까?
마침, 내가 아는 노래인 ‘천 개의 바람이 되어’를 불러 더 감동적이었어요. 사람들이 어찌나 마이 울던지 고마 장례식장이 눈물바다가 돼버렸습니다.
조가는 영어로 불렀지만, 지는 그 뜻을 다 압니다. 세월호 사건 때 들어 알게 된 노래로 가사가 너무나 좋아서 잊지 않고 있어요. 노래를 첨 들을 적에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닿아서 감동을 받은 노래였거덩요. 뭐라 그래야 내 느낌을 다 표현할 수가 있을지 모르겠네예. 아무튼, 그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고 또 큽니다.
나의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그곳에 나는 없어요. 잠들어 있지도 않아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저 넓은 하늘을 흘러가고 있어요.
가을엔 햇살이 되어 들녘에 내려 비추고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지요.
아침엔 새가 되어 당신을 잠 깨워주고
밤에는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줄께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 안사돈의 영혼이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언제나 어디서나 남편을 잘 지켜줄 겁니다. 그리고 아내 역시 천 개의 바람이 되어 지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저는 항상 그랬어요. 내놓을 꺼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무지랭이 주제인데도, 그냥 괜히 자신만만하고 믿는 구석이 있어서 걱정 없이 살았거덩요. 그기 다 아내가 나한테 믿음을 준 거 같아예.
아침엔 새가 되어 당신을 잠 깨워주고
밤에는 별이 되어 당신을 지켜줄께요.
맞습니다! 맞아요! 맞아!
순간, 흐느끼는 울음 속에 “어무이”라는 말이 내 귀에 들어오지 멉니까? 딸아이가 곁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어무이, 어무이······” 하면서요.
언젠가 내가 딸아이한테 시어머니한테 와 이름을 부르냐꼬 핀잔을 준 적이 있어요. 그때 딸이 좀 더 친해지면 ‘맘’이라꼬 부를끼라 카더마는, 금세 “내는 ‘어무이’라꼬 부를 낍니다.”라고 말끝을 맺기에 참 가슴이 아팠었지요.
진즉에 ‘어무이’라꼬 불러보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아, 죽은 후에야 저렇게 ‘어무이’라꼬 부르면서 서럽게 우는 딸아이를 보니 자꾸자꾸 아내 생각이 나서 더 슬퍼집니다. ‘엄마’, ‘어무이’를 불러 보고 싶어도 대상이 없었던 딸아이입니다.
아내와 안젤라, 그리고 안사돈이 ‘어무이’라는 말속에 함께 뭉쳐 있는 듯한 생각이 언뜻 스치네요. “어무이”라는 단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무한히 좋기만 한, 운명적인 말 아입니까? 노래를 부르는 안젤라 양옆에 아내와 안사돈의 환영이 보이는 듯합니다.
아! 산삼! 산삼이 탁하고 머리를 칩니다. 만날 머릿속에서 오락가락한 산삼···! 내도 참 한심합니다. 와 그간에 실행을 몬 했을까요? 진작에 산삼으로 몸보신을 했으모 안사돈이 이 위기를 면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후회한들 무신 소용이 있겠습니까? 산삼 묵어야 할 사람은 이미 죽고 없는데요.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선교사 딸은 미국본부에 지원을 해서 지 아부지 집에 같이 살게 됐다꼬 합니다. 진짜진짜 잘된 일입니다. 그런데 놀랜 건, 분명히 아아가 둘이었는데, 다섯 명을 덱고 왔더라꼬요. 세 명은 입양을 했대요. 쌔까만 아아들이 얼굴이 빤들빤들한 기이, 참 귀엽습디다. 아들 둘, 딸 셋, 고만고만한 오남매가 한 집에 살모 사돈 회복도 빠르지 않겠어요? 내는 희망이 생깁니다.
그라이까네 이 집은 인종 전시장인 셈이라요, 백인에 일본인 부인, 한국인 며느리와 사돈, 흑인 사위와 아이들… 참 우리 사돈 양반 참 대단한 사람이지요. 마음이 그리 넓어요. 내 같았시모 죽어도 그리 몬 했을 낍니다.
불행히도 톰은 걸어댕기게는 회복할 수가 없다네요. 영원히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대요. 그러나 얼굴에는 그늘이 없어요. 예전 그대로 건강색이어서 보기 좋고, 아주 밝아요. 뱃사공 사위가 말도 잘 하고 성격도 활발해서 좋은 친구가 돼 줄 낍니다. 그 덕분에 집안에도 활기가 넘칠 거 같고요.
겨우 일 년 만인데도 손주 녀석들이 부쩍 컸더라꼬요. 딸은 미국 있을 때보다는 살이 빠졌는데, 더 세련이 되고 멋있어졌습디다.
“외국 물이 좋은가 보다. 니는 더 멋쟁이가 됐네.”
“그래예? 아부지도 더 젊어지고 멋있어졌어예. 아부지 건강한 얼굴 보니까, 지는 마--,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참 웃겨요. 내는 내가 앞으로도 더 안 늙고 만날 이대로 유지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주먹을 불끈 쥐모 팔뚝에 알통이 툭툭 불거져 나와요.
딸은 독일로 금세 돌아갔습니다. 사위 일도 그렇고, 애들 학교 때메도 오래 머물 수가 없나 보더라꼬요.
내 예상대로 사돈네는 집 분위기부터가 활기를 띠게 됐고, 사돈 양반 그레고리도 거뜬히 걷게 되었어요. 안사돈이 세상 떠나고, 폭삭 더 사그라들까 봐, 참 많이들 걱정을 했는데, 산 사람은 다 살게 마련인가 봅니다.
장례식 때 “그래 당신이 못 다한 목숨까지도 내가 악착스레 살아갈게. 당신 몫까지 살 테니 걱정 마! 여보,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하면서 마이도 마이도 울더니 그 의지가 그대로 실현이 된 깁니다. 참 고마운 일입니다.
뱃사공 사위가 안사돈 못지않게 잘한다꼬 해요. 건장한 체격에 젊은 남자 아입니까? 휠체어 타는 톰 시중도 다 든다꼬 합니다. 사위 이름이 하도 길어서 쎄가 잘 안 돌아가, 자꾸 뱃사공이라꼬 부르게 되네예. 이해해 주이소. 제가 농부로 뼈가 굵어서 그런지, 뱃사공이라는 말이 참 친근감이 가고 좋습니다.
내가 저거 시아배 걱정 하는 거 알고, 하루는 딸이 “아부지는 걱정도 팔자야.” 하고, “인자 아부지도, 맨날 남 걱정만 하지 말고, 아부지 자신을 위해서 사이소. 우리 시아부지는 무슨 힘 덕인지 모르겠는데, 병원에서도 놀랄 정도로 마이 나았어예. 완전 기적이라예 기적! 아부지는 쪼끔도 신경 쓸 거 없어예.”
그라고 보니, 딸 말도 맞네요. 그렇지만 남을 돕는 기 바로 내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힘 드는 줄도 모르지요.
잠깐 말을 끊었다가 딸은 엉뚱한 소리를 했어요.
“아부지, 그 노인아파트에서 아부지 인기 짱이라 카던데, 데이트할 만한 여자 없어예? 반찬 해다 주는 여자도 많다카더마는 맘에 드는 여자 없어예? 나이 많은 할매는 안 되고요. 한 육십 정도면 딱 좋겠네예.”
나이까지 정해 주며 지껄이는 딸한테 “없다. 없다.” 그딴 소리 하지도 마라꼬 대꾸를 하는데, 갑자기 안젤라 얼굴이 떠오름은 웬일이었을까요?
그라다가 언뜻 내가 그 집 정원일을 해주모 우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어떤 남자는 아들 때메 멀어졌다고 했지만, 내는 그 반댑니다. 아들 때메 더 마음이 갑니다. 그리고 잔디 깎아 주고 정원 손질도 해주면 그 아들과도 가까워지지 않겠습니까? 아들이 꽃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해서 뜰이 넓은 집에 산다꼬 했거덩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명 교수님이 저를 찾았어요. 갑자가 딸집에 갈 일이 생겼는데, 라이더를 줄 수 있냐꼬요. 마침 그때 제가 한가했습니다. 아니 바쁘더라도 만사 제쳐놓고라도 가야지요. 암 그래야지요.
택시를 불렀다 카는데 오다가 사고가 났대요. 다음 택시는 좀 시간이 걸린다 카고요. 퍼뜩 제 생각이 나서 부탁한다꼬 했지만 저게는 정말 좋은 기회였습니다.
일 때문에 좀 먼 데 나가 있던 딸이 아들한테서 급한 연락을 받고 집으로 가는 중인데, 프리웨이가 너무나 메어 차가 정지상태이니 아버지보고 아들한테 가보라고 했답니다.
차 안에서 교수님이 손자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는 말을 했습니다. 장이 나빠서 설사를 자주 한대는군요.
‘무신 일일까?’
도착을 하니, 큰일은 아니었고, 집전기가 몽땅 나가서 컴퓨터고 뭐고 다 멈추는 바람에 아들 일에 큰 지장이 온 거였어요. 동네 다른 집은 다 괜찮고 명 간호사 집만의 문제이니, 얼른 두꺼비집을 점검을 했지요. 제 짐작이 맞았어요.
간단히 손을 보고 나니 금세 고쳐졌습니다. 별거 아닌데도 세 사람이 다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오히려 제가 몸 둘 바를 몰랐지요. 이들과는 간단하게 인사만 했고, 할아버지와 손자가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저는 정원으로 나왔습니다. 아들이 앉아 있는 휠체어는 좀 특수하게 보였습니다. 노인들 병원에 모시고 다닐 때 보던 휠체어와는 아주 달랐어요.
팔걸이와 등받이 발판 등도 예사롭지가 않았구요. 널따란 오른편 팔걸이 바깥쪽에는 스위치가 여러 개 붙어 있었습니다.
집은 자그마한데 교수님 말씀대로 뒤뜰은 꽤 넓었어요. 척 보기에 손댈 데가 많아 얼른 차에서 전자 가위를 가꼬 왔지요. 삐쭉삐쭉 제멋대로 나와 있는 가지를 다듬고 동글동글한 거는 동그랗게, 가지런한 거는 가지런하게 원래의 모습대로 다 다듬어 놓으니 제가 보기에도 깔끔했습니다. 마침, 집 앞 정원 손질을 끝낸 후, 옷을 탈탈 털고 매무새를 고치고 있는데 명 간호사가 들어왔어요. 나를 보고 활짝 웃으며 우찌나 반가바하고 고마워하는지 지가 되려 무안합디다. 웃는 모습이 참 예뻤어요.
“어마나! 집 전체가 아름다워졌어요. 딴 집 같아요.”
그리고는 제 팔을 붙들면서 집 쪽으로 발걸음을 뗐어요. 순간 감전이나 된 것처럼 찌르르한 느낌이 전신에 퍼지지 않겠어요? 이 무슨 조화인지···
교수님이 수고 많았다면서 얼른 씻고 나오라며 저를 화장실로 안내해 주었습니다. 어느새 사모님께서는 저녁 준비를 다 해놨었어요. 아들은 이미 밥을 먹었다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요.
슬픔이랄까, 아픔이랄까?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뭔지 모를 물결이 쏴아 하고 가슴을 적셨습니다.
몸 상태에 장애가 없다 해도 장애자는 얼마든지 있는 기이 이 세상입니다. 장애인이라는 기이 영 남의 일 같지 않은 깁니다. 생각해 보이 내도 장애인인기라요! 영어 몬 하는 영어장애인 아닌교? 하고 싶은 거 몬 하는 기 장애인이지 별 겁니까?
그날 밤이었어요. 아내가 꿈에 나타났어요. 물론, 아내가 늘 네 맘속이 같이 있었으나 꿈에 나타난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하도 그리워서 꿈에라도 한 번 봤으모 울매나 좋을꼬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그리움이 잔잔한 행복이 되기도 했지마는 그리움이 너무 짙다 보니 괴로움이 되기도 했지요.
참 웃기는 거는 말입니다. 꿈속에서도 꿈이라는 것을 안다는 사실입니다. 잔디 깎으로 가는 도중 집을 못 찾아서 막 헤매고 다니는 꿈을 꿀 때도 ‘괜찮아, 괜찮아. 이건 꿈이야! 꿈! 꿈일 뿐이야.’ 하고 나를 위로한 적이 있다니까요.
꿈속이었으나 참 행복했어요. 온몸이 살살 녹는 거 맹키로 행복했습니다. 진짜로, 진짜 같았어요. 꿈같지가 않았어요.
품안에 쏙 들어온 아내를 폭 안고 행복에 젖어 입을 맞추려고 얼굴을 맞대고 보니, 품에 안긴 여자는 아내가 아닌 안젤라로 변해 있었습니다. 후다닥 놀라야 마땅한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감정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계속 행복했어요.
잠을 깼는지 말았는지 그다음엔 비몽사몽간에 딸과 안젤라 아들이 우리 둘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꿈속에서는 그리 행복하더마는, 꿈을 깨고 보니 그기 아이라예. 딸과 안젤라 아들 얼굴이 눈에 밟혔기 때문입니다.
딸이 이런 말을 더러 했었지요.
“아부지는 자알 생기고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여자 친구 없어예? 여자한테 관심을 갖고 좀 둘러보세요.”
하지만 저는 “그딴 쓸데없는 소리는 하지도 마라.” 하고 핀잔을 주곤 했습니다. 물론 명 간호사 얘길 하면 딸은 손뼉을 치며 좋아할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장애아들이 있다고 하면 손뼉을 치지는 않을 겁니다.
한국서 두메산골 살 때, 농부로서 뼈 빠지게 일을 하면서도 동네 궂은일은 다 맡아 하는 나를 보고 딸은 못마땅해 하면서도 아부지가 좋아서 하니, “아부지는 팔자야, 팔자!” 그랬고, 또한 미국 와서도 노인들 뒤치다꺼리하는 아부지를 “아부지는 팔자야 팔짜1 그랬으니, 이번에도 ”팔자야 팔짜!“ 하고 이해할 거예요. 딸은 착하니까요.
딸 말마따나 진짜 팔자는 팔자인 갑십니다. 팔자는 못 쏙인다 카더마는.
아무튼 간에, 아부지가 행복하다는데 우짜겠습니까?
내는 마, 나로 인해서 상대방이 행복해지면 그기 바로 내 행복입니다.
그 후, 내내 안젤라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이리 미적거리고 있는 기이 혹시 딸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그간에 내가 그런 생각을 통 몬 했는데 어떤 잠재의식이 나를 지배했었나? 하구요.
아입니다. 그건 아일낍니다.
야! 이 콩밭떼기야! 도대체 니 지금 뭐하고 있는 기고? 자신을 가져라, 딸도 분명 좋아할 끼다.
그렇게 마음을 굳힌 바로 그다음 날이었어요. 사돈네에서 지를 초대했어요.
딸이 시아부지랑 톰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 캐서, 큰 맘 먹고 소주를 사 가꼬 갔지요. 요새는 소주도 독하지 않은데다가, 이런저런 과일 향이 나게 만든 것도 많데요. 여자들이 술을 마이 묵는 바람에 여자용으로 그래 만들었다 카데요.
내는 모리고 갔는데, 그날이 톰 생일이었습니다.
집 풍경이 확 달라졌더라꼬요. 정원이 아주 잘 손질되어 있었어요. 저쪽 놀이터에서 놀던 손주 다섯이서 띠이와서는 내 앞에 쪼르륵 서서 인사를 하는데 진짜진짜 귀엽습디다. 누가 가르쳐줬는지 내한테 ‘하라버지’라 캐서 놀랍고, 기쁘고, 좋아서···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잠깐 안사돈이 눈앞을 스칩디다. ‘죽은 사람만 불쌍하지···’ 그래도 마아, 하늘나라에서 남편이 건강 되찾아 잘 살고 있는 거를 보모 기뻐할 겁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기 세상 이치 아닙니까?
그라고,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은··· 사돈 양반의 건강해진 모습을 보니, 진짜로 진짜로 안사돈이 ‘천 개의 바람이 되어’ 남편을 지켜주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근데, 뜻밖에도 사돈네에서 안젤라를 만났지 멉니까?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데이지와 아주 가까운 사이로 보이고, 선교사 딸하고도 무척 친한 것 같았어요. 영어로 좔좔좔 말하는 그녀가 신기해 보이고 존경스럽기까지 했어요. 우리 사돈 양반 그레고리도 그렇고, 톰 건강에도 그녀의 역할이 아주 컸었나 봅니다.
그라고 말을 들어본게, 그간에 다섯 아아들하고도 자주 봐서 가까워졌다고 하네예. 아아들이 명 간호사를 그리 좋아한답니다. 그랑게네, 하라버지라는 말도 그녀가가 가르쳐준 모양이네예.
진짜진짜 반갑더라꼬요. 우찌나 반가운지 하마터면 띠이가서 얼싸안을 뻔했다니까요. 그녀를 보는 순간 가슴이 쿵.쿵.쿵. 하고 막 띠었어요. 30년이 훨씬 넘게 완전 돌부처가 돼 가꼬 살아온 싸나이한테 말입니다.
“해피 버스데이”를 외치며 내가 가꼬 간 쐬주를 근사한 와인잔에 담아 건배를 했어요. 다들 맛이 좋다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굿. 굿.“ 하네예. 뱃사공 사위와 선교사 딸은 계속 홀짝홀짝 마시고 있구요. 저 역시 쐬주 맛이 이리도 좋은 걸, 예전엔 미처 몰랐네예.
향긋한 바람이 붑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도 얼굴에도 화색이 만연합니다. 다들 바람이 되어 서로서로를 어루만지고 있는 거 같아예.
천상에서도… 지상에서도…….
식사를 끝낸 안젤라가 손주들을 덱고 저어-- 저쪽 잔디밭에서 띠이 놀고 있네요. 아아들 다섯이서 손뼉을 치고 좋아하는 모습과 더불어 온 집안에 행복 꽃이 만발했습니다. 행복의 꽃밭에서 내 눈은 지금, 오직 한 사람만 따라 댕기고 있습니다. 오로지 한 사람만…
어, 멀리서 안젤라가 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네요. 한 손이 아닌 두 손을 다 들고요. 아이고, 우찌나 반갑고 고마운지 내도 두 팔을 번쩍 들고 마구 흔들었지요. 팔을 흔들었다기보다 머라카노… 만세를 불렀다카는기 맞겠네예.
대한독립 만세! 콩밭떼기 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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