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벗동인 제2 소설집

2021.08.24 14:59

김영강 조회 수:8

 

글벗동인 제2 소설집 <사람 사는 서상 출간>

문학나무 2021년 5월 17일

 

글벗동인 2집.png

 

변방의 열린 가능성을 생각한다

 

<글벗동인>의 두 번째 글모음을 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변방(邊方)이라는 낱말입니다.

우선은 한눈팔지 말고 그저 부지런히 쓰자는 소박한 마음으로 모였고,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 1년도 채 못 돼서 이렇게 또 한 권의 작품집을 묶을 수 있으니 그렁저렁 다짐은 지켰다는 뿌듯함이 큽니다.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부터는 왜 쓰는지, 무엇을 써야할지 등을 짚어가며 좀 찬찬히 또박또박 가자는 생각을 합니다.

거기서 만나는 것이 바로 변방이라는 낱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글들은 이른바 이민문학, 교포문학 또는 동포문학, 해외한인문학, 미주한인문학, 코리언-아메리칸 문학등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립니다. (요새는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멋쟁이 용어가 널리 쓰이는 모양입니다만.) 이름이야 어찌 되었건 이 글들은 변방 중의 변방 취급을 받습니다. 우리네 삶이나 꼭 마찬가지지요. 한국 문단에서는 바다 건너 변두리 시골 글동네 취급 푸대접이고, 미국 안에서는 소수계 문학이지요. 실제로 한국 문단에서 제대로 대접받는 미주 문인은 몇 분밖에 안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긴 뭐, 명칭이 여러 가지라는 것부터가 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불분명하다는 뜻이겠지요.

변방의 삶은 대체로 축축합니다. 뜨거운 사막에서도 젖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고원 시인께서 시선집 <나그네 젖은 눈> 서문에 쓰신 한 구절이 실감으로 스며듭니다.

나는 오나가나 나그네다. 이 길손의 눈은 늘 젖어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먼데 있는 친구들 혹은 나그네들의 손을 잡고, 서로 껴안고, 글썽한 눈끼리 눈으로만 애기하고 싶을 때가 자주 있다.”

하지만 변방이라고 꿈마저 없는 건 아닙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한국의 작가들이 쓸 수 없는 그런 글을 쓰자.”는 소박한 꿈을 가질 수 있죠. 속절없는 희망사항으로 끝날지도 모르지만, 꿈은 키울 수 있는 것이죠.

기발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헤매는 소재주의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변방이라는 낱말 안에 단단한 씨앗처럼 들어 있는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떠나온 곳 사이에 늘 아지랑이처럼 어른거리는 그리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매섭게 파고드는 사막바람의 정체, 알록달록 여러 인종들이 섞여 아옹다옹 고달프게 살아가다가 문득 나는 누구인가? 한국 사람 맞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의 머뭇거림, 영어를 하는 아이들과 한국말을 고집하는 나 사이의 불협화음,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고약하게 인종차별을 하면서 과연 피부색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낭패감, 붉게 타오르며 지는 해를 혼자서 바라보며 울컥하는 먹먹함, 내 뼈를 어디에 묻는 것이 옳을지 스스로에게 묻는 서늘한 외로움그런 것들, 그러니까 고국을 떠나지 않고 그냥 살았으면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이나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을 차근차근 곱씹으며 되새김질해 보자는 것이죠.

변방이 늘 서글프고 외롭고 고달프고 사무치게 그립고 아득하고그런 곳만은 아닐 겁니다. 신영복 선생의 말씀을 다시 읽어봅니다.

변방은 창조의 공간입니다. 기존의 틀 속에 갇히지 않고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사는 언제나 변방이 역사의 새로운 중심이 되어 왔다. 역사에 남아 사표(師表)가 되는 사람들 역시 변방의 삶을 살았다. (줄임)인류 문명은 그 중심지가 부단히 변방으로, 변방으로 이동해 온 역사이다. (줄임)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신영복 교수 <변방을 찾아서>에서

변방을 떠돌며 사는 우리들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는 말씀이지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변방이 그런 열린 창조의 공간이기를 빕니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께서 강조하신 결정적인 전제를 거듭거듭 마음에 새깁니다.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 중심부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어야 하는 것

마종기 시인께서 현대문학상을 받으면서 쓴 수상소감의 마지막 구절을 옮겨봅니다.

나는 피차별자가 희망하는 열린 공동체의 의미를 늘 꿈꾸며 나머지 삶을 한국의 디아스포라 시인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도 그런 꿈을 키우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디아스포라 글쟁이의 삶, 분명히 힘겹고 고달프겠지만, 아주 의미가 없는 건 아닐 겁니다.

젖은 눈으로 바라보는 곳이 꼭 고향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이 변방을 창조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는 소망은 그것대로 소중하겠지요. 그렇게 믿습니다.

부디, 변방의 소박한 목소리들을 즐겁게 읽어주시고, 잠시라도 아주 잠깐만이라도 젖은 마음으로 먼 곳을 바라보신다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세상을 넘기고

2021년 새로운 봄을 맞으며

미국땅 나성골 한 귀퉁이에서

<글벗동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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