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8 22:14
(사진: 프로패셔널 포토그래퍼 Yeah Kkot Ahn 作)
누군가 말했다.
“21세기 문맹(文盲)은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잊어버리고, 다시 배우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동감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현대는 광속(光速)의 최첨단 문명시대다.
이 시대는 매 초마다 엄청난 정보가 생산된다.
이들 정보는 곧바로 퍼스널 휴대폰에 저장되고 사람들은 이들 정보를 소비한다.
이처럼 시장의 신속한 정보유통 때문인가?
사람들은 지혜(智慧)를 축척하는 일에는 열정이 없어 보인다.
대신 지식(智識)추구에 대한 욕구는 대단하다.
이같은 비장함은 21세기 생존판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현대인들이 단 한시도 스마트 폰이 없으면 불안해 하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지구별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들이 그 마술상자(스마트 폰)안에 있지
않은 가!
다섯 살배기 꼬마에게 스마트 폰을 쥐어 주라.
그리고 원하는 질문을 해보라.
수 초 안에 꼬마의 입에서 정확한 지식이 전달될 것이다.
이는 결코 우스개 소리가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꼬마에게 “진리 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한 사람은 누구 인가?”물으면 역시 수 초 안에 정확한 답을 내 놓는다.
이것이 바로 최첨단 메커니즘으로 무장한 채 일상을 사는 21세기 현대인들의 자화상이다.
이처럼 지혜는 없고 지식만이 범람하는 시대에는 사람들의 대화도 획일적(劃一的)이다.
그게 그거 란 뜻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오성다방(五星: 스타벅스 커피 가게)에서 ‘박근혜 집권 스캔들’과 관련된 설전이 벌어졌다.
헌데 이들이 침을 튀 기며 쏟아내는 설왕설래의 대부분은 정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내용들의 짜깁기다.
개인의 명철한 자기 진단은 없다.
2천 4백 여년 전.
소크라테스는 짜증이 날 정도로 집요하게 물었다.
“이 보시게! 방금 그대가 말 한 그것의 뜻은 무엇인가?”
소크라테스는, 매직 상자(스마트 폰)에서 꺼낸 지식으로 변명하는 21세기 현대인을 향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것이다.
그는 단일화 되고 상품화 된 시장 정보가 아닌, 퍼스널을 요구한다.
필요 때마다 지식을 꺼내 쓰는 21세기 인들.
어느 여중학교 교단에서 선생이 질문을 했다.
순간, 교실 내 모든 여학생이 로봇처럼 동시에 스마트 폰을 꺼내 순간 검색을 했다.
그러고는 똑같이 대답을 했다 한다.
지식을 탐구하고 지혜를 축척하는 학당에서 명철(明哲)은 고사하고, 점점 더 동물농장이 돼 가고 있음을 본다.
오래 전 지구별에 머물렀던 어느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일이다.”
현란한 조어(造語)로 지식 소비자들을 매료시키는 언변사(言辯士)들이 넘쳐난다.
매우 영리한 이들은 자신들의 재주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이를 정보 시장에 신속히 유통 시켜 명성과 부를 취한다.
21세기 인들은 이에 열광한다.
그러고는 아무런 검증도 없이 연변사들의 지식을 스마트 폰에 저장한 뒤 공유한다.
영락없는 앵무새다.
얼마전에 있었던 사건 하나.
맥 다방(맥도날드 빵 집)에서 시비가 벌어졌다.
시비의 발단은 이랬다.
이목구비가
반듯하고 후덕하게 생긴 할머니(코리안)가 말했다.
“카라마초프가의 형제들”을 쓴 작가는?”
할머니는 그러고는 자신과 함께 자리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안색을 살폈다.
순간, 질문을 받은 노인들은 좌불안석이었다.
서로가 눈치만 보았다.
명색이 모두 대학물을 먹었다는 이들이어서 더욱 낭패스러웠다.
이때, 어느 할아버지가 말했다.
“빌어먹을 할망구 같으니! 그거 모르는 사람이 이세상에 어디 있나?”
그러고는 허리춤에 걸친 전화기 홀더에서 삼성 갤럭시 7 스마트 폰을 꺼내 순간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10초 후.
할아버지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누구 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지!”
21세기는 바보 천재들의 시대다.
상상을 초월한 지식을 저마다 자랑한다.
불과 반세기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광학문명(光學文明)의 결과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척척박사다.
이처럼 21세기인들은 영명(英明)하다.
헌데, 무엇이 문제인가?
앞서 지적했 듯이 많이 알고는 있으나, 이내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식의 껍데기만 취할 뿐, 속 알맹이를 키우는 노력은 게을리 한다는 뜻이다.
맥 다방에서 목격한 “스마트 폰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는 할아버지의 항변을 다시 오버랩 시킨다.
분초를 다투며 사는 작금의 일상에서 영혼의 양식인 지혜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 따른다.
지혜는 없고 지식만 유통되는 사회는 불안하다.
지식은 사람들의 언변을 수려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혜는 사람들의 인격을 우아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지혜로 무장된 사람은 의롭다.
(신문 칼럼)
이산해: 글
2017.04.19 12:14
2017.04.19 23:35
이산해 글 밭에 오신 귀하에게 허리 숙여 존경을 표합니다.
수려한 시평 입니다.
늘 건강 하십시오.
2017.04.20 02:33
이 산해씨는 탁월한 글쟁이꾼인 것 같읍니다
자신을 들어내지 않고 많은 말씀을 전해 주시지요..
더구나 박학다식이 높은수준에서 가방꾼에 내공도 만만찮은 것 같고..
좋은 이야기꾼의 이야기는 기록문학으로 채톡하드시
여기저기 흔적을 올려놓았으니..
진중하고 소중하고 좋은 내용들
덩달아 진지해지다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다가..
잘 읽었읍니다
Stay that keep try forever..
From Chuck D B
2017.04.23 07:47
늘 행복하시고 건강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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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
도스또예프스키의 첫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아아, 세상에! 저들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지 아십니까! 종이 한 장 써내는 일이 뭐가 그렇게 힘들겠어요?
어떤 때는 하루에 다섯 장 정도 쓰는데 한 장에 3백 루블이나 받는다는군요. 뭐 좀 재미있는 콩트나 웃기는 이야기를 쓰면 5백 루블도 받고, 달라, 못 준다, 아무리 저쪽에서 억지를 써도 이쪽에선 큰소리를 탕탕 친다는 거예요.
(중략) 자작시를 써놓은 공책도 한 권 있는데 시라고 해봤자 다들 짤막짤막하더구만,
그는 노트 한 권에 7천 루블이나 달라고 한다더군요. 그만한 돈이면 웬만한 영지나 커다란 집 한 채 값이죠.”
<가난한 사람들>은 ‘찢어지게’ 가난하고 궁색한 늙은 하급 관리와, 그에 못지않은 가난으로 인해 돈 많은 지주에게 팔려서 시집가는 가련한 처녀가 주고받는 편지체 소설입니다. 도스또예프스키는 24세 무렵, 본인 스스로 하급관리로서 생활고에 시달리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돈 때문에’ 이 작품을 쓰게 됩니다.
그렇게 낸 소설이 대히트를 하면서 그는 일약 스타 작가가 되어 돈과 명예를 거머쥐고
문학의 길을 가게 되는 행운을 얻습니다.
‘러시아가 낳은 악마적인 천재’, ‘도스또예프스키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는 등, 그에 대한 화려하고 웅대한 수식어의 이면적 실상에는 돈,
그것도 생계를 위한 절박한 돈 문제가 똬리를 튼 뱀처럼 도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대책 없는 소비와 도박 빚에 허덕이는 도스또예프스키의 못 말리는 낭비벽이 근본 원인이었지만 그렇게 돈에 쫓기지 않았다면 글을 쓰지도 않았을 테니 위대한 작가가 세상에 드러나는 방식은 어떤 식이건 ‘무죄’인가 봅니다.
만약 당시 상황이 지금처럼 글이 큰 돈벌이가 되지 못하는 때였다면 세계적 대문호 도스또예프스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글재주가 아무리 탁월했다 해도 그것이 돈이 안 된다면 그는 돈이 되는 다른 일을 찾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그의 육필 원고지 사방 여백 곳곳에는 작은 숫자와 덧셈, 곱셈들이 나열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매당 원고료를 계산한 흔적이라고 합니다. 글은 수단이고 돈이 목적이 되어 틈틈이 돈 계산을 하면서 원고지를 메우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몇 장 썼으니까 얼마 벌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국민으로서 최고의 선행이자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돈벌이를 잘 하는 것”이라는 말이 <가난한 사람들>에도 나오지만 그의 소설에는 유난히 돈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걸로 보아 이래저래 도스또예프스키는 돈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입만 열면 돈 타령이요, 매사 돈을 밝히며 궁기에 쩐 대문호의 민낯을 대하기가 어색하고 민망하지만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공무원 봉급으로는 무분별한 소비 습관을 감당할 수 없어서 소설가의 길로 가야 했던 도스또예프스키와, 비록 쥐꼬리 월급일지언정 말단 공무원이 되기 위해 쓰던 소설도 집어치워야 하는 작금의 우리나라 상황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더구나 큰돈을 만질 수 있는 방편 중 하나로 글 쓰는 일이 꼽혔다는 것은 아무리 시대와 공간이 다르다고 해도 잘 상상이 안 됩니다.
저는 지난해 말 소설 한 권을 내고는 얼결에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도스또예프스키처럼
러시아 작가도 아니고, 독서가 유일한 오락거리였던 1800년대 글쟁이도 아니니 소설을 써서 돈을 벌기는
애초 글렀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지난 2015년 우리나라 가구당 서적 구입비는 24% 이상 감소했다고 합니다. 영화, 여행, 맛집 등에 쓰는 돈은
안 아깝지만 책을 사는 데는 지극히 인색하다는 의미입니다. 성인 3명 중 1명은 1년 내내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3명 중 2명이 이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만. 틈만 나면 스마트 폰과 인터넷 서핑,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에 매달려 거기서 재미를 찾으니 책을 읽을 시간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참고로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 국민들의 월평균 독서량은 10권, 미국 6.6권, 일본 6권 수준입니다.
선진국이 달리 선진국이 아닌가 봅니다.
우리나라 독서 현실에서는 글을 쓰면 쓸수록, 책을 내면 낼수록 가난해질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계속 쓰고 싶다면 밥벌이 수단을 달리 강구해야 합니다. 글을 쓸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이 두 명제가 마치 죽느냐, 사느냐의 다른 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언감생심 도스또예프스키를 부러워할 수는 없고, 그저 시절 인연을 탓할 수밖에 없겠지만, 모두들 책을 안 읽어도 너무 안 읽는다는
사실에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습니다.( 지인의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