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83 추천 수 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신 영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이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동 언덕배기에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 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 마라, 잊지 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오 "


-----<정태춘의 노래 5. 18 >




소리내지 않는 울음은 더욱 깊은 슬픔이다. 울 수 없는 가슴으로 세월을 담으며 살았을 역사 속 상처 깊은 사람들을 우린 진정 잊었을까. 잊은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를, 잊은 적이 없다고 다만 기억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정태춘의 노래 가사 말이 아니더라도 386 세대들의 가슴에 아픔이 붉은 꽃 멍으로 멍울 져 있을 것이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를 잃은 아픔들이, 길 걷다 날아오던 총탄에 쓰러지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창에 찔려 붉은 피 터져 오던 그 날의 아픔들을 어찌 잊을까.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고 형제들을 빼앗기고 정신을 놓아버린 부모와 형제들의 恨은 아직도 남아 붉은 피 빛으로 말없이 강물 되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잊었는가, 그대들이여!" 그 날의 아픔을 어찌 잊을 수가 있을까. 가슴에 남아 한 낮에 씻지 못한 피 빛 어린 恨을 홀로 어두운 밤 달빛아래서 씻고 또 씻어보는 것이다. 이제는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하는 그 영혼들을 잠재우고 싶기에 부끄러운 남아있는 얼굴을 씻고 또 씻어보는 것이리라.

언 30여 년이 가까워 오는 그 날의 기억에서 네 이름은 기억하리라. 네 얼굴 흑백 빛으로 물이 낡고 낡아 허옇게 변할지라도 네 이름은, 그 날의 그 얼굴은 우리들 가슴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지우려해도 지울 수 없는 단어들 몇이 오월이면 밤마다 찾아와 가위눌림에 선잠을 일으킨다. "장갑차, 발포, 총격, 사격, 창, 칼, 대검, 수류탄, 까스탄..." 전쟁이 아니고서는 차마 말할 수 없을 피 빛 어린 무서운 단어들이다. 꿈도 아니고 드라마도 아니고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었다. 그 일은, 그 사건은 현실이었다. 그 날에는, 아주 오랜 일처럼 잊혀져 가는 그 일이 그 날에는 그랬었다. 무고한 시민들이 창, 칼에 무참히 찔리고 짓밟히던 그 일은 차마 볼 수 없는 현실이었다. 꿈이었다면, 이른 아침잠에서 깨어나면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밤새 꾼 꿈이었었다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모두가 알 수 없는 일들 앞에 도무지 가슴이 뛰고 불안한 심정으로 보냈던 기억들이다. 신록의 오월, 모두가 푸르른 자연들은 말이없었다. 하늘은 푸르고 오월의 나무들은 싱그럽기만 했다. 포탄 소리가, 총성이 오가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희뿌연 먼지를 휘저으며 땅위에 서 있는 사람들만이 서로에게 총 뿌리를 겨누고 있었던 것이다. 만삭이 된 여인의 처절한 두 죽음 앞에서, 말끔히 차려 입은 여학생의 교복의 하얀 카라에 붉은 피가 젖어있었다. 무엇이 그토록 처절한 아픔을 만들었을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게 했을까.

무참히 군화 발에 짓밟히고 총칼에 찔린 자국들이, 상처들이, 주검들이 쌓여있던 금남로에서, 평화롭던 한 시골의 마을을 지나면서 한 발, 두 발 들리던 총성은 이내 콩 볶는 듯 하는 요란한 소음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논에서 모내기를 하던 농부들이나 저수지에서 물놀이를 하던 어린이들 그리고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총소리에 놀라 혼비백산 흩어지고 자빠지던 모습들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그 날의 그 아픔을 어찌 잊을까. 살아서 남은 자들은 굴비를 엮듯이 손목마다 줄줄이 묶어 연행을 하고, 죽어서 나자빠진 피에 절은 주검들은 찢기고, 잘려지고, 남은 주검들의 조각들은 질질끌려서 거칠고 마른 흙먼지 일으키며 끌려갔다. 그 맑은 영혼은 하늘에 올랐으면 하고 기도했을 뿐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서움증에 시달리는 아이처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 이 오월이 오면 눈감지 못한 원혼(寃魂)들의 넋을 달래주고 싶다. 흘러온 세월만큼 기억의 저편에 있던 일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남은 가슴에서 그 날의 그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이다. 차마 남은 우리들은 아직도 오월의 붉은 꽃 보기가 부끄럽지만 그 영혼들에게 이제는 평안히 깊은 잠을 잘 수 있기를 마음으로 기도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직도 잠들지 못한 恨서린 영혼들과 남은 恨의 가슴으로 살아가고 있을 모든 이들과 함께 '진혼춤(진혼무鎭魂舞)'을 추고 싶다. 너를 달래고, 나를 다래고 우리를 달래 줄 그 '진혼춤(진혼무鎭魂舞)' 한 판 신명나게 추고 싶다.



5/18/2007.
하늘.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55 소라껍질 성백군 2008.07.31 190
554 이 거리를 생각 하세요 강민경 2008.07.25 291
553 바깥 풍경속 강민경 2008.08.16 260
552 위로 김사빈 2008.08.23 221
551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나은 2008.08.26 608
550 민들레 강민경 2008.09.14 209
549 글 욕심에 대하여. 황숙진 2008.09.13 600
548 백남규 2008.09.16 204
547 포이즌 아이비(poison ivy) 신 영 2008.07.22 380
546 흔들리는 것들은 아름답다 황숙진 2008.07.02 496
545 노래하는 달팽이 강민경 2008.06.30 356
544 한국전통 혼례복과 한국문화 소개(library 전시) 신 영 2008.06.17 537
543 여행은 즐겁다 김사빈 2008.06.12 357
542 유월의 하늘 신 영 2008.06.11 330
541 바람에 녹아들어 강민경 2008.06.09 239
540 세월 Gus 2008.06.08 147
539 일곱 살의 남동생 김사빈 2008.06.05 309
538 혼돈(混沌) 신 영 2008.05.27 268
537 땅에 하늘을 심고 /작가 故 박경리 선생님을 추모하면서... 신 영 2008.05.24 448
»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신 영 2008.05.21 683
Board Pagination Prev 1 ... 83 84 85 86 87 88 89 90 91 92 ... 115 Next
/ 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