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쓴다
이 월란
적막한 천지의 말, 다 알아듣지 못해, 이리 버거워
발빠른 세월의 말, 다 전해주지 못해, 이리 힘겨워
이젠 투명히 멀어져간 너를 쓴다
물처럼 고여 앉아 파문으로 떨어지는 너를 받는다
어느 명함 빼곡히 채워진 축복의 리스트는
누군가의 빈주머니 속으로 구겨질 고뇌의 항목
발 떼자 사라져버린 서로의 집을 찾아 돌고 돌아 오는 길
어린 상주의 눈물처럼 바람도 시리고 꽃도 서러운 날
울어다오, 젖지 않을 환희의 가슴으로
밝혀다오, 평생의 어둠을 깨우고도 남을 그 새벽의 기억으로
어느 기억을 두드려 파헤치더라도
영원히 새겨두진 못할 엇갈린 나이테 사이로
기어코 미련 한 줌 줍게 되더라도
꽃씨를 받던 뒷모습으로도 꽃을 피워내던
사랑은 사랑으로 족했나니
사라진 새벽별 하나로도 매일 아침 동이 터오나니
퀵 서비스처럼 순간으로 왔다 폭죽처럼 사라지는 하루해도 가벼이
원시의 바다를 해풍으로 돌아 나와
고독의 부리를 내어 오늘도 너를 쓴다
열 마디 손끝 녹여 흔적 없이 너를 쓴다
2008-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