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지나간다
이 월란
산 너머엔 봄이 왔다는 흐드러진 봄꽃의 루머처럼
충혈된 시야 속 동맥혈같은 기억의 줄을 잡고
길 건너 관광버스 한 대 지나가듯
그렇게 이별이 지나간다
상설시장의 인파 사이로 꼬리 감추며
무소속 정치인의 짧은 호시절 시끌벅적했던 강단처럼
용달차에 실린 어느 빈곤한 이삿짐처럼
옛집의 기억을 덜컹덜컹 흘리며
그렇게 이별이 지나간다
시간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떠내려가는 허연 쌀뜨물처럼
누군가에 의해 예약된 압력밥솥의 자동타이머가 칙칙 푸욱
오늘의 세월을 익히듯
그렇게 이별이 지나간다
<그동안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문장 남긴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돌아오고 말 방황하는 자식의 인사말처럼
언제 정신없이 달렸는지 기억도 없이 날아 온 속도위반 딱지처럼
오늘도
그렇게 손짓하며 이별이 지나간다
2008-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