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굽은 여자
이 월란
아직, 등 굽을 나이도 아닌 이목구비 고운 그 여자
등이 살짝 굽었다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생각의 바닥을 슬쩍 굽혀 놓고
그녀의 해정한 시선까지 슬쩍 휘어 놓던
인식 밖에 아득히 휘어진 곡선
직립의 동물을 곧추 세우는 소위 척추다
그래서 대낮에 그녀를 보아도 살짝 엎드린 그녀의 등마루 위로
저물지도 않은 하늘가에 붉어지는 노을 한조각 보였던가
걸어왔을 아득한 길 저쪽, 경사 느린 언덕쯤에
그녀의 헉헉대는 어린 숨소리가 들렸던가
아무도 묻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던
그녀의 굽은 등 뒤에서
중년을 넘기도록 도대체 몇 마디나 하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과묵한 그녀의 남편
부피가 없는 얇은 휴대전화 너머에서
술기운 빌어 인생과 세월을 안주 삼아 살짝 울먹이고 있었다
<우리 와이프, 계모 밑에서 자랐죠
어린 시절 무거운 등짐에 허리 한번 못펴고 살았다네요>
지금은 몇 손가락에 꼽히는 사업가가 되어
허리도 펴고 목에 힘주어도 되는 지금도
어린 등뼈가 휘청거렸을 때마다 뒤뚱뒤뚱 패였을 그 발자국들로
아직 소녀같은 고운 웃음가에 패이는 볼우물에도
눈물이 빗물처럼 고여오겠다
마른땅이 젖어 오겠다
2008-0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