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길을 걸으면
이 월란
인연의 기슭마다 고로쇠나무 투두둑 심줄처럼 불거져 나와 있다
초록빛 포화들이 숲갓층 높이 푸른 불꽃을 뿜어내고
아주 아주 먼나라의 함성에 포위된 숲띠 가득
수액이 도는 소리 수성처럼 흐른다
바람을 깨우는 잎새들은 악행을 저지른 듯 두려워 떨고
음원이 없어도 이명증을 앓고 있는 숲땅
숲나이가 흘러온 내밀한 세월 가득
푸른 철책 굽이굽이 잠행하는 날숨들 사이로
나무들은 뼈저리게 서 있다
웅숭깊은 걸음을 뗄 때마다 나를 지나친다
함부로 디딘 걸음이 숲과 숲 사이에 길을 내고
무림 사이를 걷는다
사랑과 증오의 경계를 걷는다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걷는다
너와 나 사이를 걷는다
이 숲의 하류를 지나면 새순 돋듯 봄밤의 기억처럼
우리, 허물 벗어던진 애벌레처럼 성충이 되어 날아갈까
알 깬 새짐승처럼 날개 돋혀 비행할까
봉쇄된 낙원의 문 한번 더 두드리고 싶어질까
물 속같은 수풀에 잠수한 두 발이
성한 곳 없는 나의 내장 속을 걷는다
나는 숲이다
2008-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