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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제2시집
2008.07.2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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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339 추천 수 1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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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월란




나를 사러 간다
나는 세상 곳곳에 파수병처럼 진열 되어 있다. 때론 이제 막 지상에 파견된 천사의 옷을, 때론 할로윈 복장같은 섬뜩한 악령의 옷을, 때론 아직 눈뜨지 못한 신생아의 배내옷을, 때론 주머니가 잔뜩 달린 눈부신 수의를 입고 있기도 한다.



나를 사러 간다
명품도 싸구려도 아닌 중저가의 몰로 간다. 나는 중년이며 중산층이다. 이 어중간한 넉살은 고가로도, 저가로도 감당이 안된다. 간이 부어 고가를 고른다면 석달 열흘 쪼들릴 것이며 간이 졸아 저가를 고른다면 온집안은 애물창고가 될 것이다. 정찰 가격을 명찰처럼 달고 진열되어 있는 가능성들 사이로 마네킹이 되어 걸어간다. 내가 값을 지불한다고 해서 언제든 나를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원피스같은 인간에겐 내 아랫배가 너무 튀어나왔을 수도, 바지같은 인간에겐 내 다리가 너무 짧을 수도, 선글라스같은 인간에겐 내 코가 너무 낮을 수도 있다.


  
나는 많이 속아 왔다.
내가 되고 싶어하는, 결코 내가 될 수 없는 나처럼 생긴 분신들에게.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장한 타인의 분신들에게. 나의 생신(生身)은 서둘러 길을 잃어버리고 명품을 복제한 가짜들의 진열대 위에서 하루종일 넋 놓고 앉아 있는 나의 실체를 보기도 한다. Sale, Sale, Sale, Sale, 세상은 손해보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빈민구제 하듯 빅세일의 광고로 덫을 놓지만 인생에는 에누리가 없다는 것을 난 진즉에 알아봤어야 했다.
  


나는 지쳐가고 있다.
팔두신의 미끈한 마네킹 하나가 육신처럼 속살을 드러내고 느슨해진 팔다리를 넋처럼 흔들며 세상을 끌고 가고 있다. 왼종일 다리품을 팔고도 나는 빈손이다. 매나니 두 짝 기어코 두 눈에 지문처럼 새겨 둘지라도 오늘, 나를 사고 싶다. 암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하는지 어느 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기도 하는 나를......

                                                                                        
                                                                                                                                       2008-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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