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병 상련이란 말이 있다.
가난이란걸 전혀 보지 못하고 산 이곳 주류 백인들은
사진 찍기 바빴지만
어린 시절 전쟁이 끝나고 나서 홀 어머니 밑에 자란 나는
정말 춥고 배고푼 추억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모두 장미 빛으로 변해 있지만.
그러나 나는 저 집을 본후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먹음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발 걸음을
옮겼다.
펠리페와 사비노는 나를 무척 좋아 했다. ( 아마 매일 맥주를 사다줘서 그런지도 모른다. )
볼리비아 # 10
우리 인간의 부정에는 인종과 문화의 차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믹스떼끼야 # 8 ( 본당 신부님, 그리고 공소 회장님과 함께. )
초등 학교에서 뛰노는 아이들.
볼리비아 농촌 초등 학교 어린이들.
볼리비아 # 9 ( 우리는 저 길을 따라 2마일 가량을 걸어서 동네에 도착 했다. )
전 재산이 모두 요것 뿐이랍니다.
비행장 근처의 하꼬방 동네를 갔다.
볼리비아 # 8
- 끝간데 없는 아열대 정글로 둘러싸인 동네는 마치 6.25 전쟁을 격고난뒤 한 6~7년 # 7
- 현지 인디오 주민의 단출한 집과 가구들. -
믹스 떼끼야 가는 길.
피라밑 꼭대기에 선 피터.
" 믹스떼끼야 가는길 ( 이런길을 4시간이나 가야 했다.) # 6
선교지 믹스떼끼야로 출발하다. # 5
- 티오테와칸의 피라밋에서 피터와 함께 - # 4
나는 저 집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본 수크레시.
산 골짜구니의 초라한 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