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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수녀님의 안내로
멕시코씨디   근처의 볼만한곳을   다  보고      
수녀원에   돌아와     꿀맛 같은    저녁을  먹은후      
우리는  곧   잠자리에  들었다.        


이튼날    아침    습관대로   동네 근처를  산보한후  
수녀원으로   돌아왔다.
불은색  계통의  부르갬밸레아가     자생으로   피여  있었으며
건드리기  만해도   쓰러질  듯한  울타리,                  
그리고 빨래줄에는  어제의   빨래가  그대로  
널려  있었다.                
홀쭉한  배를한   개들이  아무에게나  꼬리를  
설래설래  흔들고 있는
정말 우리에게는 낯이 익은 그 옛날 시골 풍경이다.

아침 미사를 보고 난후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고    곧  공항으로   출발했다.
오후 2시  비행기였기 때문에  
12시쯤  공항에  바래다  달라고  미리  수녀 님께  
말씀을  드렸었다.
사흘 동안   수고해  주신   정수녀님과   간단한   포옹으로  
작별을  고했다.
" 수녀님  시카고에서 뵙겠읍니다. "
" 마태오 형제님,  그리고 피터   !
건강하고 멋진 여행되기 바래요. "
( 여담이지만 그 다음해,
나는 수녀님을 시카고에서 뵙고
그분이 내게 배풀어 주신
친절에 진심으로 보답할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

짐가방을    책인한후,    
멕시코 국내선   멕시카나 항공사의     아툴코행   터미날로  
걸음을  재촉햇다.        
피터와  나는    터미널  게이트에   앉아    
약간의  흥분을  느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가는   행선지 믹스떼끼야라는    곳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곳이기   때문이다.  
오하카주의   조그마한  마을   믹스떼기야는        
가장  가까운  비행장이  지금  우리가  가는  
아툴코란    휴양지이고
거기서  차를타고  다시  4시간  가량을  가야  
그곳에 도착할수가  있다 했다.    
오하카주 역시 당시에  반정부  활동이  치열했던  
치아파스주 바로  옆에 위치해서   아직도  개발은  요원하고
원주민들인  인디오들이  대대로  변함없는  생활을  
영위하는 곳이라고  
정  수녀님이   설명해 주셨었다.

이제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며
주위가 소란 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나는 읽던 책을 백팩에 집어 넣고 피터에게 말을 걸었다.
" 피터야    !
왜 내가 오늘 너와 함께 여행하는지 아니   ?  "
있지 사랑하는 피터야   !
먼 훗날,
네가 사회의 한 지도자가 되여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때가 온다면
그때 말이지,
오늘 나와 함께한 여행을 생각하고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깊히 생각해서
결정을 내려다오   !  "
" 네 아빠   !
잘 기억하고 있겠읍니다. "
        
조금후  탑승이  시작됐다.    
탑승객들은  모두  멕시코 부자  여름 휴양객들이였으며  
백인조차  한사람도   없이    오직   나와  피터만이  
이방인이였다.        
비행기가 이륙한후  한시간이 좀 지나자   태평양의  파도가
유리창으로 보이고    다른곳은  온통  초록색의  나무숲으로
뒤덮힌  광활한    아열대  밀림지대가  펼쳐진다.
그리고
조금후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를  스치는 소리와  함께    
휴가를  온  휴양객들이   함성을  지르며  기쁨의   환호를    
지르는  맨뒤에   피터와  나는  
천천히 비행기를  내렸다.            

비행기는   공항 앞  활주로에   그냥  서  있었고    
승객들은   거기서  내려  각자의  손가방을  들고    
뙤약 볓이   내리 쪼이는    넓직한  길을  따라   공황까지
걸어가서  부친  짐을  찾게  돼 있었다.    
스페니쉬로  쓰여진  안내문은   피터가  제빨리  읽고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공황에서   짐을  찾았다.


길고  굵은   원목 기둥을   세운후     석가래를  언고    
다음은 마른  야자잎으로  
지붕을  높이하여  덮은후     그  꼭대기에  
실링팬을  달아   애어컨을  틀지 않아도   실내는   시원했다.
우리가 공항입구를  나오자  마자    멕시코인  운전기사와  
두 동양 여인이  
우리를  반가이   마지한다.        
사복을  한  두 수녀님이     우리를  기다리신 것이다.    
호 사비나  수녀님과   며칠전  휴가를  가신  수녀님  몫을
대신하기  위해   맥시코 씨디에서  오신   수녀님이 셨다.  
우리는  구내 식당에서   간단히  마실것을  한잔씩  한다음  
곧바로  수녀원의   90년대쯤  만들어진  
쉐비  부레이저를  타고  
또 다시  장장  4시간을  가야  하는 것이였다.        


  1. 펠리페와 사비노는 나를 무척 좋아 했다. ( 아마 매일 맥주를 사다줘서 그런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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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리 인간의 부정에는 인종과 문화의 차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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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볼리비아 # 8

  11. - 끝간데 없는 아열대 정글로 둘러싸인 동네는 마치 6.25 전쟁을 격고난뒤 한 6~7년 # 7

  12. - 현지 인디오 주민의 단출한 집과 가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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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선교지 믹스떼끼야로 출발하다. # 5

  17. - 티오테와칸의 피라밋에서 피터와 함께 - # 4

  18. 나는 저 집을 보고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19.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본 수크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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