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날갯짓

2010.11.04 08:18

백남규 조회 수:579 추천:79

문학은 존재의 날갯짓이다.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존재는  태어나자 마자 힘차게 운다. 배고픔과 아픔을 울음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어려서는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을 하려고 한다. 어머니,아버지가  아이의 욕망을 억제하기 시작한다. 아이는 또 울기 시작한다. 머리통이 굵어지면 울어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희미하게 깨닫기 시작한다. 유치원,학교에서 무언가를 또 배운다. 이건 해서 안 되고,저것도 해서 안 되고..../  



  어떤 글을 읽을 때는 감명을 받고 어떤 글은 그냥 지나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에겐 한없는 흥미와 호기심이 유발되지만 다른 이는 금방 잊어버린다. 무엇일까? 타인의 관심을 유발하는 요소는? 극도의 나르시시즘적인 몰입과 감정이입은 연애감정과 비슷하다. 유토피아를 그리워하는 마음이야 예나 이제나 다르지 않다.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집이기에 더욱 그리운거겠지만. 유토피아=이상향=무릉도원=낙원 등등, 이름이야 어떻게 부르든 간에 동서고금의  사람들은 살기 좋은 곳을 그리워했다. 이샹향의 조건은 평등,자유,사랑 등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려운 조건이 실현된 사회를 뜻한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런 사회가 실현된 적은 유사이래 단 한번도 없다. 아마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성이 천지개벽하듯이 바뀌지 않는한 말이다. 신라시대에 향가라는 노래가 전해온다. 그 중에 '서동요'라는 노래가 있다. 단 넉줄의 짧은 시가이다. 내용도 간단하다. '선화공주님은 맛둥방을  남 몰래 얼어두고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삼국유사에 실려 지금까지 전해오는 이 노래의 의미는 간단하다. 서동과 선화의 사랑이야기이다.  남녀간의 사랑이야 태초이래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재가 아닌가. 그러나 서동요의 주제는 사랑이 아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라시대의 체재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이다. 그 시대는 '골품제도'라는 이상한(?)한  제도가 있었다. 성골,진골이 아니면 출세할 수 없는 제도이다. 골품에 들지  못하는 신라의 사내 서동도 잘 살고 싶었다. 출세의 장애인 골품제도를 없애기는 너무나 어렵고 그래서 머리 좋은 그는 그 제도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뼈의 품질을 높이는 방법은 단 하나, 결혼 뿐이다. 그래서 공주와의 결혼을 그토록 간절히 노래한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자본주의에서 성골,진골은 재벌이나 부유층이다.그래서 소설이나 영화,드라마의 단골소재는 부잣집 자식과  가난한 집안 애들이 어떻게 결혼하는냐, 그 와중에 어떤 슬픔과 고통이 따르느냐. 등등 천편일률적인 이야기가 질리지도 않고 방영되는 이유이다.





조선시대로 내려오면 유명한 정철의 "사미인곡"이라는 노래가 있다. 대학 시험을 보려고 달 달 외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노래도 마찬가지다. 왕의 총애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시대를 반영한 처절한 날갯짓의 노래다. 말그대로 생살여탈권을 가진 무자비한 왕권에 도전하기란 꿈에도 어렵고 그러자니 왕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한 안간힘을 꼿꼿한 선비인 정철이도 부끄럼을 잊은 채 읊어댄 것이다. 처절하게.

  







  현대를 탐욕의 시대라고 한다. 인간의 인식을 좌지우지하는 한 가지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생각하기 편한

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생각하기 편한 대로 생각하다보면 자신에게 유리한 인식만 하게 된다. '내가 능력이 있으니까 돈을 잘 버는 거야'라는 인식은 '나는 잘났고 너는 못났어', '그래서 너는 그렇게밖에 못살고 나는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야', '어차피 세상은 정글이야. 능력 없으면 빨리 죽는 거지, 뭐. 누군가는 굶어죽게 생겨 있는 세상에서 능력 없는 사람들이 죽어 자빠지는 것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지', '경쟁에서 누군가는 지게 되어 있는 거고 중요한 것은 내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야. 남 신경 쓸 필요 없어' 등으로

자가 동력적으로 전개된다. 그렇게 되면 기아 난민이 왜 생기는지, 정말 생길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관심은 없어지게 되고 어떻게 하면 자신이 누릴 수 있는가에만 관심을 쏟게 된다. '나 때문에 저 사람이 굶어.'라는 인식은 하지 않게 되고 마음속에 그러한 생각이 들어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면서 그러한 인식에서 도망치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 추구 때문에 희생되는 타인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는 경향성을 성찰없이 스스로에게 허용하다보면 인간은 점점 더 탐욕적으로 변하게 된다. 지금의 세계화시대는 그 탐욕이 전 세계를 무대로 해서 삼킬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허용된 시대이다. 초국적기업은 전 세계를 무대로 사람이든 원료든 단물만 빼먹는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쌓아놓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운영자들은 행복할까? 다른 더 큰 다국적기업이 자기의 기업을  삼키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초국적기업의 모습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도대체가 근본적으로 돈이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는 할 것인가?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사람은 만족을 할 것인가? 자신의 탐욕에 대해서 그 파급 효과를 깊이 성찰하면서 스스로 제동을 거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이 탐욕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힘이 있는 자들이 유리한 결과를 얻는 데에 충실히 복무할 것이다. 지금의 결과는 바로 이러한 탐욕에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돈보다는 사람이 중요하고 지구위에 사는 사람은 모두가 생명을 이어가야 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조차 인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폐기되는 것은 '어떻게든 나만은 이겨보겠노라', '나만은 성공하리라' 하는 생각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패자의 위치에 넣어서 생각해보지 않으려는 인간의 인식의 편향성 때문이다. 지금의 경제시스템이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모두 우리의 습관적인 인식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자가 동력적으로 전개되는 인식의 경향성에 따라 습관적으로 생각해서는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좋은 대안을 찾을 수가 없다.




  어느 시대나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많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은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조차없다. 그래서 글쓰는 사람들이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해서 울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모기소리만한 항변일지라도 그렇기때문에 가치있고  '서동요'가 오늘날 까지 전해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시대 모든 서동들의 처절한 날갯짓을 표현한 노래이기때문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 선과 악 [2] 백남규 2016.08.22 171
27 존재의 울림 [2] 백남규 2016.08.21 200
26 위험한 여자 [2] 시스템관리자 2016.07.19 272
25 위험한 여자 [1] 백남규 2016.07.18 179
24 사람이 원하는 것 [1] 백남규 2016.07.18 165
23 삶과 죽음 [1] 백남규 2014.10.15 260
22 행복 백남규 2014.10.11 113
21 추은진의 ‘타협의 여왕’ 백남규 2014.04.18 480
20 교육 백남규 2014.03.19 226
19 구자애의 시세계 백남규 2014.03.12 242
18 구자애의 시 백남규 2013.08.22 241
17 저울 백남규 2013.07.13 455
16 은폐와 노출 백남규 2013.07.10 246
15 예술가의 한 유형-non conformist 백남규 2012.11.17 209
14 무제 백남규 2012.11.17 237
13 이월란의 시세계 백남규 2011.08.08 305
12 원의 사랑 백남규 2011.02.22 408
» 존재의 날갯짓 백남규 2010.11.04 579
10 추은진의 '틈'을 읽고 백남규 2010.07.28 748
9 이상화의 시세계 백남규 2010.05.08 859

회원:
0
새 글:
0
등록일:
2015.06.19

오늘:
1
어제:
0
전체:
17,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