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류시인의 겨울여행
2003년을 보내면서 겨울여행을 서북미로 결행한 토론토 박정순 시인의
가족들이 12월 27일에 포틀랜드를 방문하여 우중이었지만 여러곳을
돌아보고 <문즐>가족인 권태성 시인이 경영하는 라마다 호텔에서 1박한
뒤 다음날 역시 아이들과 함께 동행한 유은자 시인의 집이 있는 타코마로
떠났다. 내가 박 시인을 처음 알게 된것은 문학포탈사이트인 ‘문학의
즐거움’에서였다.
그의 작품이 좋아서 자주 읽게된 것 외에 내가 삼십 수년 전에 다녀온
독도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같은 이민자라는 것
때문에 인터넷에서 통성명을 하게되었고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박 시인과의 첫 대면은 2002년 10월에 내가 서북미문학인협회를 맡아 있을
적에 타코마에서 개최된 대민시낭송회에 엘에이의 김동찬 시인과 더불어
초청시인으로 참석하였을 때였고 이 번이 두 번째 만남이 된다. 정말 다시
회고하여 보아도 그의 문학에 대한 정열은 누구도 따르기 힘들다. 단
1편의 시를 낭송하기 위하여 자비를 들여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날아와
렌트 카로 타코마까지 수 시간의 초행길을 달려왔고 행사가 끝난 이튿날
새벽에 문우들의 환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바람처럼 사라져 돌아갔다.
그래서 마음의 큰 빗을 지고 있었지만 좀체로 갚을 길이 없었다.
독도에 본적지를 옮기고 얼마 전에 그곳으로 이주한 서울의 편부경 시인과
더불어 독도에 대한 사랑은 특별한 데가 있어서 독도사랑에 대한 연작시를
수 십편을 썼을 뿐 아니라 독도사랑협의회를 창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활을
하였고 지난 8월에는 이생진, 나호열, 고대진, 오정방, 편부경, 박정순 시인
등 6명이 독도에 관한 작품을 모아서 사화집 ‘영혼까지 독도에 산골하고’
를 함께 엮은 인연도 있는터라 더욱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지난 9월 15일-
20일 사이에는 토론토에 있는 한국영사관에서 독도를 알리기 위한 시화전을
개최하였는데 이 때에도 물심양면의 노고를 아끼지 않은 그를 격려하고
서울에서 인터넷문학신문을 발행하며 경희대 사회교육대학원에서 시창작
교실을 개설하여 열강하실 때 나도 사이버 강의를 들은 인연이 있는 나호열
시인께서도 참석하신다는 소식에다 나의 작품도 몇 점이 함께 전시가 되므로
꼭 참석을 해보겠노라고 의사를 비쳤다가 마침 그 기간에 초,중학 동창인
이창우씨 부부가 한국에서 내방하게 되고 다른 일들도 조금 겹쳐져서 결국
토론토행을 못한 것이 너무 죄스러워 많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터였다.
비를 싫어하는 박시인이 여기 올 때만이라도 날씨가 맑아주었으면 참으로
좋았겠건만 왠 겨울비는 그렇게도 내리는지? 그러나 시간관계로 선택의
여유가 없는지라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포틀랜드 시내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Portland Women’s Forum, Crown Point, Multnomah Fall을
안내하였는데 나도 이곳에 이민와서 멀노마 폭포는 수 십번 찾아갔지만
이 번처럼 장관을 이룬 모습은 처음 보게 되었다. 그동안 계속 비가 왔었기
때문에 수량이 풍부한 것도 이유가 되겠으나 물보라와 구름이 범벅이 되어
폭포 최상층부를 뒤덮고 보니 마치 620피트(상폭 541피트, 하폭 79피트)나
되는 높은 폭포수가 하늘에서 직접 쏟아지는 그 느낌이란 말로, 시로 표현
하기조차 어려웠다. 박시인 가족들이 복이 많아 그런 좋은 경치를 보게된것
같고 안내했던 나도 덤으로 좋은 것을 보게되어 참으로 보람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장대한 컬럼비아 강을 오른 팔에 끼고 그 유유히 흐르는
모습에 압도되기도 했다. 호텔에 돌아와 잠시 쉰 다음에 온 가족들이 한국
식당으로 가서 만찬을 나누었고 나는 그 뒤에 교회의 다른 모임이 있어서
헤여졌지만 밤 10시 이후의 2, 3차는 권태성 시인이 수고를 해주어서 여간
다행하지 않았다.이곳을 떠나던 28일, 그러니까 주일아침에 다시 호텔에서
만났고 밖으로 나가서 조찬을 함께 나누면서 못다한 얘기를 더 나눈 뒤에
다음을 기약하며 이별의 악수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캘거리까지는 무려 15시간이상 드라이브를 해가야 하며
거기서 시간에 맞춰 스위트 홈에 이를려면 또 몇 시간을 더 비행해야 하는데
모쪼록 기획되었던 서북미 겨울여행이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라고 무사히
집에 안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가정에 하나님의 가호가 충만하시기를 기도한다.
<2003. 12. 29>
2003년을 보내면서 겨울여행을 서북미로 결행한 토론토 박정순 시인의
가족들이 12월 27일에 포틀랜드를 방문하여 우중이었지만 여러곳을
돌아보고 <문즐>가족인 권태성 시인이 경영하는 라마다 호텔에서 1박한
뒤 다음날 역시 아이들과 함께 동행한 유은자 시인의 집이 있는 타코마로
떠났다. 내가 박 시인을 처음 알게 된것은 문학포탈사이트인 ‘문학의
즐거움’에서였다.
그의 작품이 좋아서 자주 읽게된 것 외에 내가 삼십 수년 전에 다녀온
독도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같은 이민자라는 것
때문에 인터넷에서 통성명을 하게되었고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고 있다.
박 시인과의 첫 대면은 2002년 10월에 내가 서북미문학인협회를 맡아 있을
적에 타코마에서 개최된 대민시낭송회에 엘에이의 김동찬 시인과 더불어
초청시인으로 참석하였을 때였고 이 번이 두 번째 만남이 된다. 정말 다시
회고하여 보아도 그의 문학에 대한 정열은 누구도 따르기 힘들다. 단
1편의 시를 낭송하기 위하여 자비를 들여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날아와
렌트 카로 타코마까지 수 시간의 초행길을 달려왔고 행사가 끝난 이튿날
새벽에 문우들의 환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바람처럼 사라져 돌아갔다.
그래서 마음의 큰 빗을 지고 있었지만 좀체로 갚을 길이 없었다.
독도에 본적지를 옮기고 얼마 전에 그곳으로 이주한 서울의 편부경 시인과
더불어 독도에 대한 사랑은 특별한 데가 있어서 독도사랑에 대한 연작시를
수 십편을 썼을 뿐 아니라 독도사랑협의회를 창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활을
하였고 지난 8월에는 이생진, 나호열, 고대진, 오정방, 편부경, 박정순 시인
등 6명이 독도에 관한 작품을 모아서 사화집 ‘영혼까지 독도에 산골하고’
를 함께 엮은 인연도 있는터라 더욱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지난 9월 15일-
20일 사이에는 토론토에 있는 한국영사관에서 독도를 알리기 위한 시화전을
개최하였는데 이 때에도 물심양면의 노고를 아끼지 않은 그를 격려하고
서울에서 인터넷문학신문을 발행하며 경희대 사회교육대학원에서 시창작
교실을 개설하여 열강하실 때 나도 사이버 강의를 들은 인연이 있는 나호열
시인께서도 참석하신다는 소식에다 나의 작품도 몇 점이 함께 전시가 되므로
꼭 참석을 해보겠노라고 의사를 비쳤다가 마침 그 기간에 초,중학 동창인
이창우씨 부부가 한국에서 내방하게 되고 다른 일들도 조금 겹쳐져서 결국
토론토행을 못한 것이 너무 죄스러워 많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는터였다.
비를 싫어하는 박시인이 여기 올 때만이라도 날씨가 맑아주었으면 참으로
좋았겠건만 왠 겨울비는 그렇게도 내리는지? 그러나 시간관계로 선택의
여유가 없는지라 차창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포틀랜드 시내에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Portland Women’s Forum, Crown Point, Multnomah Fall을
안내하였는데 나도 이곳에 이민와서 멀노마 폭포는 수 십번 찾아갔지만
이 번처럼 장관을 이룬 모습은 처음 보게 되었다. 그동안 계속 비가 왔었기
때문에 수량이 풍부한 것도 이유가 되겠으나 물보라와 구름이 범벅이 되어
폭포 최상층부를 뒤덮고 보니 마치 620피트(상폭 541피트, 하폭 79피트)나
되는 높은 폭포수가 하늘에서 직접 쏟아지는 그 느낌이란 말로, 시로 표현
하기조차 어려웠다. 박시인 가족들이 복이 많아 그런 좋은 경치를 보게된것
같고 안내했던 나도 덤으로 좋은 것을 보게되어 참으로 보람이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장대한 컬럼비아 강을 오른 팔에 끼고 그 유유히 흐르는
모습에 압도되기도 했다. 호텔에 돌아와 잠시 쉰 다음에 온 가족들이 한국
식당으로 가서 만찬을 나누었고 나는 그 뒤에 교회의 다른 모임이 있어서
헤여졌지만 밤 10시 이후의 2, 3차는 권태성 시인이 수고를 해주어서 여간
다행하지 않았다.이곳을 떠나던 28일, 그러니까 주일아침에 다시 호텔에서
만났고 밖으로 나가서 조찬을 함께 나누면서 못다한 얘기를 더 나눈 뒤에
다음을 기약하며 이별의 악수를 나눌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이 토론토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캘거리까지는 무려 15시간이상 드라이브를 해가야 하며
거기서 시간에 맞춰 스위트 홈에 이를려면 또 몇 시간을 더 비행해야 하는데
모쪼록 기획되었던 서북미 겨울여행이 좋은 추억이 되기를 바라고 무사히
집에 안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 가정에 하나님의 가호가 충만하시기를 기도한다.
<2003.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