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연희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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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4.08.08 15:13

원색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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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서양 남자와 나란히 걸어가는 한국여자를 보면 기분이 묘했다. 머리가 길고 키가 자그마한 한국여자의 뒷모습은 어딘지 떳떳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 한국여자와 코쟁이라고 불렀던 서양남자의 관계가 끈적끈적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은 왜 일까? 나는 아마도 어른들이 '양공주'라고 수근 대던 그 말뜻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13년 전 남편은 상사 주재원으로 먼저 미국에 들어오고 나와 아이들은 몇 달 후에 오게 되었다. 미국 들어갈 때를 기다리는 두세 달 동안 동네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녔다. 원장 이름을 따서 서윤희 영어학원이었다. 그녀, 서윤희를 잊지 못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로 윤희를 UNI 라고 스펠링 했던 그녀의 영어 이름이다. “유 엔 아이” 영어로 “You and I” 가 되니 누구나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영어 이름이라며 자랑했다. 어쩜 저렇게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가졌을까? 내 이름이 연희인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물론 UNI를 한국말로 발음하면 유니가 되지만 무슨 상관이랴. 유니처럼 기억에 남는 이름이 될 수가 없기는 연희나 여니나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녀를 잊지 못하는 두번째 이유는, 내가 성장했던 소도시에 몇 명 안 되는 의사중의 한 명인 능력 있는 아버지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이미 미국유학을 다녀와서 그 도시에 하나뿐인 모 대학에서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정식 교수인지 강사인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능력 있는 의사 아버지에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교수가 된 서윤희씨가 참으로 부러웠다.

   세번째로, 내가 그녀를 잊지 못할 뿐 아니라 나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그녀가 미국 유학 중에 서양남자와 결혼했으며 둘 사이에 아들도 하나 있다는 사실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서양남자와는 이혼하고 그녀가 재직하고 있었던 대학의 한 교수와 재혼 했다는 것이다. 외국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서양 인형 같은 아들 사진이 꽃혀 있었던 그녀 사무실에 재혼했다는 그 교수가 드나드는 모습을 종종 볼수가 있었다.

   서윤희와 서양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남자쪽에서 맡아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 재혼한 남편의 세 딸을 서윤희가 맡아서 키운다는 이야기, 그 딸들 뒷바라지에 허리가 휠 지경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이겨나가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 서윤희의 사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그녀의 화사한 미모와 더불어 여자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한 달에 한 두 번 공중목욕탕에서 밀린 때를 벗겨 내고서야 새 옷을 갈아 입던 그 당시의 보통 사람들에 비하면 서윤희, 그녀의 차림은 날마다 새로웠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벽한 매치를 이루는 멋쟁이중의 멋쟁이였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여자라 하여 “폼생폼사” 라는 별명을 그녀에게 붙여 주었다. 결혼에 한번 실패하면 모든 것에 실패한 여자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었던 그 시절에 그녀는 모든 면에서 당당했다.

   서윤희, 내눈에 비춰진 그 당시의 그녀의 삶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지만,  서양남자와 사는 여자는 모두 “양공주”였던 나의 고정관념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서양인과의 결혼이 의식이 깨인 현대 여성이 선택할수도 있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장려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나와 맺어진 인연들이 너무도 소중하듯이 다른 사람의 인연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쨋든, 그 후 난 그녀가 공부하고 결혼하고 이혼했다는 코쟁이 나라 미국에 왔다. 난 국제결혼한 여성들과 십년이상 친분을 나누며 지내고 있다. 아름다운 결혼생활도 있지만 아픈사연도 참 많다.  국제결혼하여 살고 있는 이웃 여성들을 대할때면  그 당시의 폐쇠적인 사회분위기에서 그녀가 느꼈을지도 모를 고독과 외로움을 생각해본다.  

   국제 결혼이든 국내 결혼이든 인간의 만남이란 문제를 안고 살아가게 마련인가 보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경영해 가느냐에 따라 삶의 색깔은 천차만별 인 듯 하다.  어느 삶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한 그 삶을 성실하고 떳떳하게 수용하고 완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윤희, 그녀의 활기차고 당당하던 태도와 폼생폼사의 멋진 모습은 십년이 흐른 지금까지 밝고 화려한 원색으로 내 가슴에 진하게 남아있다.


해외문학 2004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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