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g-alstjstkfkd-j-]이문열, 신의 작가, 인간의 작가 그리고 엄청난 힘의 작가라는 사람.
이틀 만에 완독한 슬픈 사랑의 이야기, 내려 놓으며 가슴이 먹먹하다.

1988년 11월 5일 초판
1990년 9월 5일 9판발행.
값 3,300원


밑줄친 구절 모음

언뜻 보아 의미 없어 보이는 10년 단위의 그 연대가 가지는 차이를 대개는 알 것입니다. 그것은 막걸리와 생맥주의 차이이며, 젓가락 장단과 통기타 반주의 차이이고, 목 자른 군화와 청바지의 차입니다. 작부와 호스테스의 차이이고, 다방과 고고홀, 가락국수와 라면의 차이일 수도 있지요.

국산품 애용과 수출입국이날, 비슷하게 들리면서도 실은 방어와 공격이 상반된 입장을 드러내는 말로는 그 두 연대가 보이는 경제상황의 차이를 드러낼 수 있고, 제대로 익기도 전에 군동내를 피우기 시작하는 개인윤리와 지각한 이념들로 조금씩 눈떠가는 집단윤리로는 젊은이들의 의식상황을 가능할 수 있으며, 뻗대기와 길듦으로는 그 두 연대의 어른들을 구분 짓는 정치적 행동양식을 나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적인 허영, 치장된 욕정 또는 시시껄렁한 시간 때우기나 성년의 악습을 서둘러 흉내내는 게 흔히 신입생의 멋과 여유로 보여지는 그 모든 행동들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덜 다듬어진 지성에 호기심의 누난 반짝이는 예비숙녀들과 아직 소녕의 딱지도 덜 떨어진 떠꺼머리들을 떼거리로 끌어모아 제대로 될 일이 무엇 있겠습니까.

책과 시험에 내 몰리어 넉넉하게 세상을 이해할 틈도 없었고, 우리 삶에 대한 동정과 硏민도 느껴 볼 틈도 없이, 높다란 재판석에 앉은 준엄한 법관이라는 게 얼마나 억지스러운 존재냐구.

대부분은 자기가 이해하고 싶은 것만,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마큼만 이해하고 한세상을 지나갈 뿐이다.

많이 헤매고 먼 길을 돈다고 반드시 세계와 인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리라고는 나는 믿지 않는가. 일평생을 헤매고 돌아다녀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먼 빛으로 스쳐보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가까이서 들여다본 것보다 더 똑똑히 이해할 수도 있다.

자칫 저급한 시기로 보이거나 주제넘고 덜 떨어진 헛소리로 들리게 되면 정말로 분한 노릇 아니겠어?

내 정신의 간략한 궤적이었습니다.

사랑이 요즘처럼까지는 되바라지지 않았던

내가 전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던 그런 일에도 그토록 열심인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거의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다양한 가치가 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똑같이 값지고 소중하다는 걸 내가 비로소 깨닫게 된 그런 모임에서인 듯싶습니다.

환상이라고 해도 죄없는 환상이지요. 사실 우리가 세상에서 애착하는 어떤 것도 현실 그대로인 법은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합리적으로 조절된 열정은 적어도 제게는 열정이 아닙니다.

여자와 장작불은 자꾸 쑤석이지 말아라, 硏애는 깨지고 장작불은 꺼진다.
여자는 애오라지 몸으로 사랑하라 따위와 같은 계열에 드는, 증거는 없지만 그렇다고 마땅한 반증도 없는 그런 우리끼리의 격언이었습니다.

무슨 곱다란 여자이름 같은 품종의 장미밭머리에서 까닭 없이 화끈거리는 눈시울로 서 있던 그 때가 어쩌면 내 삶에서의 한 절정이 아니었는지요. 화사함이라는 표현으로는 터무니없이 모자라는 그 현란한 아름다움이 내게 주었던 그 엄청난 감격은 그 위 어떤 곳에서도 다시 맛보지 못한, 말 그래도 삶의 한 경이였습니다.

극단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있는 인간과 극단의 쾌락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표정은 매우 닮아 있다. 이를테면, 분만의 고통에 빠져 있는 임산부의 표정과 정사에서의 절정감을 보여 주는 여인의 표정은 거의 구별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인간의 표정이 단조로와서라기보다는 자극의 유사성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억만금은 일시에 다 써 버릴 수 있어도 가슴속의 얘기들은 그럴 수가 없구료.

삶은 현란한 가능성이긴 하지만 아직은 텀 빈 그릇 같아. 거기에 무엇이 담기기 위해서는 누에의 변태기와도 같은 격동의 세월이 십년 가까이 남아 있다구. 너, 첫사랑이 왜 언제나 슬픈 이별로 끝나는지 알아? 바로 그런 세월 때문이야. 너무 일찍 사랑을 시작한 벌이지. 하지만 차라리 어린 날의 첫사랑은 상처라도 적지. 때로는 고운 꿈같이 우리의 남은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이끌어 줄 수도 있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또 그런 애틋한 첫사랑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어.

내 스무 살의 나이와 덜 여문 생각이며 격정에 휘 몰리기 쉬운 성품 같은 것도 그 이유가 될테지만.

수직적인 신분상승에만 골몰해 달려오다가 다시 외곬의 사랑에 돌아 버린 한 시골 수재의

아직도 순간순간 부서지고 흩어져 버릴 듯만 느껴지는 그 괴롭고 가망 없는 사람에.

너는 硏애를 너무 파괴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아. 이쯤 됐으면 좀 생산적으로 정향시켜봐.

말 만으로라면, 그리고 그게 남의 일인 한 나도 틀림없이 얼치기 성해방론자였다. 나도 곧잘 순결의 미욱함을, 정조 의무의 중세성을 빈정대었으면 학교의 토론회에서도 간통죄의 폐지를 옹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되며 더우나 바로 내게서 벌어졌을 때는 전혀 달랐다. 나는 이내 고색창연한 도덕가로 물러서고 불결함과 치욕으로 몸을 떨며 내게서 벌어진 그 참혹한 일을 되도록 이면 믿지 않으려 애썼다.

영혼 깊이 상처를 입자 본능적인 위기감에 몰려 집과 가족들의 품으로 숨어 든 것이리라.

정신의 막연한 방치상태

분노가 나를 까닭 모를 아득한 절망과 무기력에서 끌어낸 것이었다.

늙은 창녀와 벌였던 내 생애 첫번째 정사에 대해서는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욕지기와 눈물이, 잔인한 복수의 열정과 삶의 비참에 대한 새삼 스런 비애가 뒤엉킨, 짧았지만 영원 같았던 악전고투의 시간이었다.

쟤들이 젤 싫어하는 땅개의 특성이 뭔지 알아? 윤리란 이름의 된장 냄새 나는 편견이야. 김치같이 인습에 절여진 여성관 하고. 그러나 그 못지않게 싫어하는 특성이 하나 있어. 그런 자기 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거야. 뻔한 걸 이리저리 말을 둘러 하기 좋아하고 때로는 조잡한 자존심 때문에 능청 스런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치정이라고 해도 좋은 내 미련을 사랑으로 해석하고 대답해 줘.

언니는 이 땅에서의 참담한 실패자 중의 하나였거나 적어도 그렇게 치부되어 과거에 짓눌려 괴로와 해야 할 사람이었어.

정작 사랑을 하게 되자 전에는 다만 불합리하고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지던 순결이니 정절이니 하던 게 그처럼 소중하고 값지게 여지질 줄은…

나는 나중에 충분히 지워지리라고 믿었던 과거가 네게 그렇게 엄청난 충격이 되었다는 게 갑자기 내 앞에 남아 있는 삶을 절망적인 것으로 만들었어. 윤리와 인습은 그대로 거대한 공포가 되고…

그런 그녀의 눈에는 새파란 불길이 쏟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불길은 결코 공포로 사람을 위압시기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작고 약한 짐승이 극도의 절망과 불안으로 뿜어내는 생명력의 일부 같은 것으로-나는 공포보다는 갑자기 되살아 나는 연민에 못 견뎌 말없이 그녀의 방을 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것은 날카로운 칼처럼 내 의식적인 망각의 벽을 뚫고 나와 내 소년적인 결벽증과 자존심을 난도질 해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도 인생에서의 피를 너무 비싸게 산 게 아닐까? 윤주라는 피리를, 내 주관적인 가격으로…

너희들은 이 생활을 이끌고 가면서도 그 나머지 과정을 다 채울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나, 생활이란 그런 게 아니다. 성년이 된 뒤에는 그 자체가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할 소중한 가치지만, 성년이 되기 전에 사로잡히게 되면 생활이란 오직 부담이며 젊음과 재능의 낭비가 될 뿐이다.

그 밤 힘 없고도 끄는 듯한 아버지의 발자국소리가 통금 뒤의 고요한 골목길로 사위어간 뒤에도

군대는 내 짐작 이상으로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 주었다. 집단이 주는 위하와 몰개성적 분위기는 내가 언제까지고 사적인 번민에 빠져 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으며, 꼭 짜인 일정과 거친 육체적 단련은 내가 애쓰지 않아도 어둡고 음울했던 그 전 몇 달의 기억을 지워 주었다.

내 앞에 펼쳐진 세월을 사는 게 아니라 채워 가려고 애썼건만, 아무래도 그런 이성의 사람은 못되는 모양이지.

그녀의 몸에 닿았던 내 몸의 모듬 부분이 하나하나 독립된 개체처럼 그리움을 호소해 왔다.

그게 그리움이든 미움이든 분노든 그 격렬함이 어떤 한계를 넘어서면 똑같이 고통일 뿐이라는.

오직 한번밖에 사랑할 수 없는 심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데, 불행히도 당신이 남편으로 고른 사람이 그러했다.

까닭 모를 앙갚음의 쾌감과 희미한 아픔이 얽힌 정사 뒤의 암연한 사념 속에서 특히 그랬는데, 결혼을 하면서 그런 일은 점점 더 잦아졌다.

고된 대로 보람도 있었다. 수출산업의 기수니 외화획득의 역군이니 하는 상투적인 말과는 상관없이 가슴을 적셔오는 감회도 컸다. 어렸을 적 그렇게도 사람들이 눈부시게 바라보던 미제.

산타모니카 해안, 밤의 해변은 호젓하기만 했다. 갑자기 세차고도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회한과 서글픔이 헝클어진 내 삶을 돌아보게 하였다. 그렇다. 그것은 내가 애써 아파하지 않을 뿐, 실은 고통과 다름없는 헝클어짐이었다.

아무리 지금이 과학과 합리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세상에는 반드시 그것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도 많다.

그저 심하게 다친 두 마리 짐승이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듯 지난 10년의 그토록 모질게 우리를 짓씹어온 그리움과 미움, 슬픔과 고통을 울로 웃던 그 몇 시간 사이에 씻어내었다.

드디어 내게도 삶이란 우리가 즐기기 위해서 찾아 든 한바탕의 잔치마당으로 여겨지기 시작했고. 곁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있는 그녀로 인해 그런 오인은 더욱 확고해졌다.
검소니 절약이니 노후설계 따위 미래를 위해 강조되던 미덕은 모조리 한심하고 답답한 인간들의 자기기만 이거나 자위수단으로 단정되고, 언제나 지나치게 과장된 현재만 나를 이끌어갈 뿐이었다.

언제 헤어날 길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만큼 위태롭다는 게 내 의식을 아프게 찔러왔다.

그래, 너는 그저 삶이 곧 즐김이고 누림이라는 식의 믿음만 희생하면 돼, 절제도 하고 노력도 하며 싫은 걸 참을 수도 있어야 하는 게 삶이라는 것으로 생각을 바꾸어 주면 우리가 평범한 부부로 늙어가는데 어려울 건 아무것도 없어.

우연한 조짐이나 뜻밖의 사소한 불행으로 큰 결정을 그르치는 사람을 미신적이라고 말한다면 윤주야 말고 구제 받을 길 없는 미신적인 사람일 것입니다.

“아니, 너는 무얼 잘 못 생각하는 것 같은데….죽는다는 게 왜 그리 끔찍하기만 한 끝장이야? 기억해? 옛적에 함께 읽었던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 –모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추락은 우리가 날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죽음을 끝 모를 추락이라고 보더라도- 그 때문에 우리의 날개는 더 크고 화려해 질 수도 있지. 죽음이 휴식이거나 완벽한 고통의 면제라면 그건 더 바랄 나위가 없고…”

비록 그곳이 아직도 기회의 땅이라고는 해도 그 기회란 것이 실은 우리의 전통적인 사회가 귀중히 餘技던 체면이나 위신 같은 것들을 모두 내팽개친 뒤에야 오는 잔인한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움쭉도 하지 않았습니다. 로데오 드라이브의 의상실 쇼윈도에서나 보임직한, 다분히 실험적인 연출까지 엿보이는 그 드레스를 걸치고 거울을 기웃거리며 지나가는 듯한 말소리로 묻은 것이었습니다.

“모든 걸 아무런 담보 없는 미래에 맡겨 두고 현실을 메마르게 죽여가는 것, 남들은 꼭 그렇게 사는 것 같지도 않던데…얼마든지 삶을 즐기면서도 미래를 준비해 가든데…그래 다 늙어버린 뒤에 있은 들 뭐가 있단 말이야? 왜 그 불확실한 행복 때문에 이 젊은 날을 희생해야 돼?” “ 우리는 이미 젊지 않아. 적어도 젊음을 코끝에 내걸고 삶을 낭비할 처지는 못 된단 말이야.”

나는 진작부터 네 사랑만으로는 안주할 수 있는 여자가 못되면서도 쓸데없이 미련을 떤 것 같애.

아무리 팔자 좋은 관광여행이라도 일상에서 벗어난다는 것뿐 생활의 요소를 온전히 배제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가엾은 몸을 지고 다니는 한 먹고 입고 자는 문제는 끊임없이 해결이 요구되게 마련이니까요.

거기에 수반된 고통이 상상 속에서만 생생하게 느껴졌고, 그 너머에 있는 미지 또는 허무도 새삼스런 두려움으로 나를 짓눌러 왔습니다.

사실 너는 별로 그리울 것도 없는 희미한 추억의 그림자 외엔 하나도 신통할 게 없었어.



2010. 10. 27 기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