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金素月) (1902 ~ 1934)


봄을 무척 그리워한 시인 '김소월'. 필자는 봄이 되면 진달래꽃과 함께 '김소월'시인이 떠오른다. 봄을 그리워한 것만큼이나 나라를 사랑했던 애국시인,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인 그의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며 1902년 평안북도 구성 출생했다. 그의 어린 시절, 소월이 그리던 아름다운 고향에는 일제의 침략으로 평온한 날이 없었다. 소월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소월의 아버지 김성도는 남산봉 뒤쪽에 철도공사판을 벌리려던 일제에 대항하다 잔인한 폭행을 당하였고 결국은 정신이상에 걸려 폐인이 되었다. 그로 인해 소월은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따랐고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일제의 탄압에 대한 이야기들로 그는 일제에 대한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그가 단지 서정시인이 아니라 애국시인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소월은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소월의 아버지 김성도는 남산봉 뒤쪽에 철도공사판을 벌리려던 일제에 대항하다 잔인한 폭행을 당하였고 결국은 정신이상에 걸려 폐인이 되었다. 그로 인해 소월은 아버지보다 할아버지를 따랐고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일제의 탄압에 대한 이야기들로 그는 일제에 대한 원한을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그가 단지 서정시인이 아니라 애국시인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소월은 소학교를 남산학교에서 마쳤다. 그는 집안형편이 좋지 않아 집안의 농사를 지의 면서도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그는 오산중학교에 마을사람들의 도움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진학을 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겨 열 다섯 살 때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가 3학년 3월에 3.1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동창회 회장이었던 그도 시위대에 참여했었고 경찰대에 수색을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학교는 이미 불타있었고 그래서 배재학교로 옮겨야만 했다. 배재학교를 졸업하고 도쿄상대東京商大에 입학하였으나 간토대진재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당시 오산학교 교사였던 안서(岸曙) 김억(金億)의 지도와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20년에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등을 《창조(創造)》지에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1934년 그는 경찰서에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온 직후 그는 약을 마시고 자살을 했다. 그가 뇌출혈로 죽었다고 하는 책들도 있다. 아름다운 정서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던 고향, 나라에 대한 크나큰 사랑이 그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남겨놓은 많은 시들을 쓸 수 있게 해 주었다. 또한 나라에 대한 크나큰 사랑으로 인해 그는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