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의 선물

2022.03.09 20:37

설촌 조회 수: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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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기제(통관사)

  퍼즐? 아 골 아파. 못해. 안 되요 안돼.

  어릴 때도 안 해 본 퍼즐 맞추기를 7학년 6, 5반인 부부에게 해 보라고 선물하는 기발한 생각의 참뜻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충분히 하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일 년이 걸리든 이 년이 걸리든 완성하시면 두 분 밥도 사드릴 거에요.

  첫 마디에 딱 잘라 거절하는 남편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평생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낯선 물건이지만 선물하는 사람의 성의를 귀하게 받고 싶다. 노부부가 정답게 머리 맞대고 함께 맞춰가다 보면 빛바랜 애정도 샘솟듯 생겨서 좋은 사이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 사항을 숨긴 발레리나의 발칙한 아이디어가 고맙다.

  관심도 애정도 선물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많이 불편하다. 평생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인생을 꾸민 직장생활이다. 은퇴라는 단계에 돌입하고 종지부를 찍었을 뿐이다. 그것을 소중하게 여겨 박수 주고 축하한다는 따스한 마음들을 보여주는 남편의 후배들에게 고마움이 크다. 후배들의 안사람들까지 이리도 거하게 축하를 주니 더더욱 감사하다.

  화가 Jan Vermeer 진주 귀걸이의 여인이란 천 개의 조각으로 흩어진 그림을 제자리를 찾아 끼워 맞춰 완성해야 한다. 황당하다. 열 조각의 작은 그림이라도 시작해 볼 엄두를 못 낼 것 같은 데 천 개라니. 게다가 한술 더 뜬다. 오백 개짜리로 하려다 충분히 하실 수 있는 분들이라 천 개짜리로 골랐다는 엉뚱한 발레리나 성숙씨. 머리 아프다는 좌절감보다 코앞에 던져진 생소함에 도전장을 날리고 싶다.

  남편은 이미 두 손 들어 항복하고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선물 주신 발레리나에게 예의가 아니다. 왜 민망함은 내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가? 이런 일, 대신 담당하는 아내가 확실한 내조자라는 걸 남편이 알아주면 좋겠다. 내 취향 아니고, 자기 은퇴 축하 선물로 받은 것이니 자기가 알아서 하라고 구석에 밀어 놓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아주면 좋겠다.

  발레리나는 남편과 띠동갑쯤 되는 후배의 와이프다. 아마 여자끼리도 그 정도려니 짐작이 된다. 남편 따라 산행에 참석해 처음 만났던 때, 유독 슬림한 몸매에 눈이 갔던 것이 기억난다. 이어 미국에서 발레를 전공했다는 남편의 소개에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며 가슴에 입력했었다. 부러웠다. 오래전 LACC 다닐 때 발레를 선택해서 클래스를 시작했다가 남편에게 비아냥을 당한 아픈 기억이 있다. 나이 들어 뭐 하는 짓이냐는 투로 기를 팍팍 죽여주더니.

 

 

 

 

 

 

  하고 싶었던 과목을 못 이룬 한이 있던 차에, 완성된 발레리나가 지인이 되었으니 그 경이롭고 부러운 마음이, 기쁨으로 대리 만족에 이르렀던 대상이다. 그녀가 우리에게 손수 선물까지 주다니. 어찌 이를 내칠 수 있겠는가.

   발레리나를 향한 내 설렘으로 한 조각, 한 조각 퍼즐을 맞춰 가리라. 할 수 있다 믿어 준 그 마음도 소중하다. 밥도 사 준다고 했다. 너무 좋다. 후배에게서 오는 따스한 에너지에 반대로 내가 한참 어린 후배가 된 듯, 즐거운 미소가 이어진다. 고마운 감정도 크게 춤을 춘다.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한참을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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