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나들이
2023.10.02 21:17
20230427 봄 나들이
노기제(통관사)
꽃도 잎도 남아 있지않은 바삭한 가지들만 머리에 이고 있던 나무들이, 가로수처럼 즐비한 길을 운전하던 친구가 알려 주던 말. 이 나무들이 전부 벚꽃 나무들인데 봄이면 흐드러진 벚꽃들이 장관이란다. 작년 가을 한국 방문 때 들었던 벚꽃 나무들이란 단어가 겨우내 가슴에서 숨어 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해가 바뀌고 3월이 되면서 한국에서 날아오는 벚꽃 소식이 가슴을 두드리며 채근한다. 빨리 오란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전국의 벚꽃들이 차례를 잊고 동시에 깨어나고 있단다. 만개하면 길어야 열흘. 계획하고 비행기 표 예매하고 서둘렀다.
번갯불에 콩 볶았다. 벚꽃 터널을 걸으며 내 일생에 이런 꽃길을 만났던 순간이 있었나 기억해 내려 시도했다. 창경원 꽃구경이 생각은 나는데 개나리, 진달래뿐이다. 그땐 내 키 높이의 꽃나무들만 보았던가 보다. 지금 보니, 벚꽃 나무는 키가 아주 크다. 내 키를 훌쩍 넘어 올려다 보아야 한다. 그래서 벚꽃 나무는 내 기억에 자리하지 못했나 보다. 키 맞춰 나란히 길 양쪽으로 늘어선 녀석들은 내게 눈인사를 보내며 서먹한 첫 만남을 알린다.
첫 돌 겨우 지나 아빠가 하늘나라로 이주해서 불쌍하게 자란 우리집 장손인 조카녀석이 어느새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다. 돌싱으로 단출한 삶이라 내가 편하게 신세 좀 진다. 50년 미국 이민자인 단 하나 고모가 한국 방문중이니 지극정성이다. 셰프 뺨치게 요리에 달인이다. 읽은 책이 어마어마해서 철학과 신의 영역에 관한 얘기가 풍부하다. 깔끔하기는 도가 지나쳐 불편할 지경이다.
기이하게도 모든 면에서 나와 맞는다. 관계에 따른 일반적 생각도, 판단도, 인생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도 같아서 얘기가 잘 통한다. 어쩜 나보다 많이 둥근 편이어서 나를 타이르기도, 깨우쳐 주기도 하지만, 거부감 없이 수긍하게 된다.
소설 귀여운 여인을 방불케하는 생모의 인생엔 손절이다. 고모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지들 남매는 벌써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거란다. 울 큰오빠는 그렇게 나를 믿고 편히 가셨을까. 가끔은 그것이 궁금하다. 그래서 하늘은 내게 자식을 안 주셨나?
스치는 모든 인연들도 하늘이 숨기신 확연한 뜻이 있으셨으니 할수만 있다면 그 광대한 뜻을 깨닫기까지 원망은 버리고 기대와 기다림으로 잠잠히 세월을 견딤이 마땅할 듯 하다고 의견을 모은다. 우리가 거쳐야할 시간들은 순간마다 어떤 뜻이 있으신 걸 알게된다. 흐드러진 벚꽃 터널을 조카와 함께 걸으며 하늘이 주신 축복의 다양성을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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