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고 싶은 시 --[ 과수원] 박주택

2008.12.04 03:31

임혜신 조회 수:468 추천:28

애인아, 남겨진 기억을 모아 전철을 타고 강남역에 내
  려 5번 출구로 나오렴 그러면 새로 들어선 외환은행 빌
  딩이 있고 뉴욕제과가 있지 그 뒤 샛길로 걸어나오면 기
  억하겠지, 드높게 갠 하늘 아래 온갖 들꽃이 피고 과수
  원이 언덕에 비스듬히 누워 흰구름을 읽는 곳
  
  너 떠난후 술집이 들어서고 호텔과 PC방까지 들어섰
  지만 네가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 땐 미루나무
  아래 냇물의 물풀 사이를 오가는 稚魚를 따라 박 넝쿨과
  호박 넝쿨이 우거진 마을의 집들 사이를 걸어오렴 혹 다
  하지 못한 슬픔이 있다면 벼가 팬 들판에 서서 이마에 밴
  땀을 닦고는 소금쟁이의 노래에 잠시 귀라도 열어두렴
  
  변해서 밀려나간 것들이 소리 지르는 격정이 들리느냐,
  다들 자기 목숨이 있어 저토록 물컹한 절망을 밖으로 발
  라내고 변한 것들은 내 엽서 속의 멍든 글씨마냥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한다 애인아, 네 갈피를 붙들고 너를
  그곳에 머물게 하는 네 설렘의 흔적은 알지 못한다 그러
  나 네가 떠난 후 내게 남겨진 저 새로 생겨난 불빛들은
  과수원을 건너 들판을 건너 내 방의 창 틈까지 스민다
  밤이면 번지던 개울물 소리도 덩달아 들떠 네 떠도는 사
  랑처럼 뒤척거린다
  
  애인아, 너 있는 자리 향기 가신 그 자리 혹 슬픔은 슬
  픔대로 부글거릴라치면 평상에 앉아 깍아 먹던 과수원
  의 사과와 마당에 하늘거리던 봄날의 채송화를 기억하
  렴 네 뿌리가 되어주던 뒷산의 자작나무 숲에서 네 온다
  는 기별을 알리면 나 개켜놓은 와이셔츠를 다려 입고 마
  을 입구 느티나무 지나 들꽃 사이 자전거를 타고 너 맞
  으러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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