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려면 그들처럼

2007.05.11 04:31

성영라 조회 수:858 추천:103

날지 못하는 새가 있다. 땅위에서는 걸어다니고 깊은 바다속을  자유롭게 헤엄쳐 다니는 엉뚱한 새, 펭귄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그 중에서도 특히 황제 펭귄들의 삶과 놀라운 9개월간의 여정을 가슴으로 따라가 보고 싶지는 않은가.

나른한 주말 오후, 더위와 졸음으로부터의 탈출을 외치며 영화관을 찾은 우리 부부는 언뜻 보기에도 시원한 포스터와 평소 좋아하던  다큐멘터리라는 점에 끌려 영화, ‘March of Penguin’의 티켓을 샀다.  주인공은 남극에서 무리 지어 사는 황제 펭귄이고 그들의 짝짓기와  산란, 포란, 그리고 새끼 펭귄을 양육하는 과정을 담아낸 것이 주내용이었다.

과연 영화에는 동물 다큐멘터리답게 수천 마리의 황제 펭귄들이 등장하고  끝도 없이 펼쳐진 남극의 설원과 거대한 얼음산 그리고 소나기처럼 퍼붓는 눈보라가 배경이 된다. 아주 잠깐  악역을 맡은 바다표범과 큰 도둑갈매기가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바순과 피아노를 사용한 감미로운 음악과 부드러운 저음을 가진 영화배우 모건 프리먼이 들려주는 漫냅?잔잔하게 흘러나온다.

4년마  3월이 되면 흩어져 살던 황제 펭귄들은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남극의 ‘오모크’라는 곳으로 모여든다. 그들의 목적은 단 한 가지, 그것에서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것이다. 몇 주일을 절식하며 밤낮없이 걷고 또 걷는 고단한 행군을 하다보면 여기저기서 모여든 작은 무리가 합쳐져 큰 집단행렬을 이룬다.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는데 그들은 일시에 기억을 되살려 바다로부터 돌아온다. 그들이 어떻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는 망망한 얼음땅 오모크, 그들만의 비밀장소로 모이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긴 세월  동안 이어져 오는 신비한 본능의 힘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친 펭귄들은 일부일처제 방식으로 사랑의 대상을 찾고 짝을 짓는다.  사랑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 뭉클한 감동이 전해져 온다. 산란을 무사히 마치게 되면 어미 펭귄은 먹이를 구하러 70마일 이상 떨어진 바다로 나간다. 먹을 것을 찾아 바다로 간 어미 펭귄 중에는 바다표범 같은 천적에게 도리어 먹이가 되는 불운을 겪기도 한다. 아빠 펭귄은 포란한 채 2개월 이상 영하 50~100도를 넘나드는 남극의 한겨울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견뎌야 한다. 사방이 얼음산  얼음땅이요 모든 걸 날려버릴 것만 같은 매서운 눈보라뿐이어서 다른 생명체가 살기 힘든 곳. 그만큼 천적으로부터의 위험이 없어 새로운 생명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기에 굶주림과  추위, 죽음에까지 이르는 시련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다.

수개월 동안 바닥에 몸 한 번 뉘어 보지도 못하고서 아랫배 털로 알을 감싸고 서서 혹여라도 깨어질까 얼까 조심 또 조심한다. 알에서 깨어난 연약한 새끼가 얼어죽을까 굶어 죽을까 한시도 안심하지 못한다. 안타까운 펭귄부부의 심정이 화면을 뚫고 괸객석에 화살처럼 박힌다. 사람이 지닌 모성애나 부성애 못지 않다. 아니 어쩌면 더 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생명과 가치를 쓰레기통에 버려질 휴지조각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7월이 되어 암컷이 돌아오면 이번에는 4개월 가량을 굶은 수컷이 먹이를 구하러 먼 바다로 나간다. 허기와 추위에 약해진 수컷 중에는 암컷에게 새끼를 안전하게 전달한 후에 죽음을 맞기도 한다.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완수하고 난 후에 말이다. 무사히 부화된 새끼는 어미가 반 소화시켜  저장해 온 먹이를 받아먹고 기운을 차린다. 어미의 피와 땀이 그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듯 싶다. 몇 차례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나갔다 오기를 반복하는 동안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간혹 세상에서의 짧은 생을 마감하는 새끼 펭귄도 생겨난다.

8월이 되면 얼음땅이 서서히 녹으면서 남극의 겨울도 끝머리에 이른다. 11월의 막바지에 이르면  어른 펭귄들은 이제 바다로 돌아간다. 생명을 만들고 양육해야 했던 그들의 임무를 끝내야 할 때가 이른 것이다. 새로운 집단을 형성하여 서로를 돌보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 온  어린 펭귄들도 보송한 솜깃털을 털어내고 벨벳 같은 깃털로 바꿔 입고서 12월의 바다로 떠난다. 4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어김없이 3월이 오면 새로운 생명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태어났던 고향을 찾아 먼 여행길에 오를 것을 기약하면서.

몸길이 80센티미터의 작은 생명체가 지닌 한 생명을 향한 사랑의 크기와 무게, 온 몸으로 견뎌내는 치열한 삶의 몸짓이 침묵 속에서 더 큰 파장으로 메아리쳐 온다. 어떤 인간사 드라마가 이보다 더 순수하고 애틋할 수 있을까. 사랑하려면 그들처럼 해야 하리라. 삶이 우리를 멍들게 하고 할퀴고 피나게 할지라도 책임지고 지켜내야 할 소중한 가치는 변명없이 끝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하리라.

때로는 나오자마자 공중 분해되어 버리는 어떤 말보다도 침묵이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침묵이 더 많은 진실을 말할 때도 있고 침묵속에서 더 깊은 감응이 이루어질 때도 있다. 동물 다큐멘터리 영화, ‘March of Penguin’을 보며 그런 가능성을 생각했다. 대사 한 마디 없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노라면 눈이 아닌 가슴으로 좇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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