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이 수상하다
2014.04.29 06:33
8월, 뒷마당이 수상하다.
단골손님이 생겼어요. 아침마다 나의 잠결을 방문해요. 이웃집에서 못 박는 소리가 이렇게 선명하게 들리는가, 멈추지 않는 소리에 이상하다 싶었죠. 정수리가 붉은 딱다구리 한 마리, 뒷집 마당과의 경계인 흰 페인트 나무 울타리를 쪼아대네요. 낡은 울타리 속에 양식이 될 벌레라도 넉넉히 있는 것일까요. 혹, 사랑의 짝을 구한다는 신호일까요. 머물렀던 자리를 살펴보니 단추구멍 낸 것처럼 울타리 결따라 흐르고 있네요.
도끼눈 감시망이 느슨한 틈을 타 날선 잎들로 치장한 유도화가 키를 세우고 있어요. 집 벽에 딸린 한 귀퉁이 땅에는 쑥이 야리야리 돋아있고, 푸른 분수처럼 뻗은 바나나 나무 잎들은 거실 창을 엿보네요. 눈치 볼 것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움에 피식, 웃음이 나네요.
여전히 비쩍 마른 감나무 일곱 알 매달고 꿋꿋해요. 지난 해에는 세 개 열렸던 것들 몽땅 새들에게 보시 되었지요. 이번에는 내 손에도 몇 알 쥐어주면 좋을 텐데요. 영그는 모습 들여다보는 일 또한 쏠쏠한 즐거움이지요. 발그레 익기 시작한 복숭아 다람쥐에게 한 입씩 베어 먹히고 철퍼덕 엎어져도 나무는 아랑곳없네요. 옹골진 새 것과 따지 않아 농익은 것 골고루 품고 있는 풍성한 레몬 나무 의연하고요. 어린 대추알들 뙤약볕 아래 끄덕없어요. 금귤나무 오종종한 열매들이 야무져요.
옆집 캐리 할머니네와 맞닿은 야트막한 벽돌 담벼락 따라 담쟁이넝쿨 푸르게 뻗어가요. 이를 앙다물고 기어오르는 이미지로 종종 표현되는 담쟁이의 속내야 어떻든, 지금 내 마음에 들어오는 담쟁이 넝쿨은 맺힌 데 없고 순하게 흐르는 시내같군요. 그 넝쿨 길 위로 개미들 행렬이 바빠요.
한때 호박넝쿨 넘실대던 텃밭에 오후의 햇빛 일렁거려요. 그 빛살 타고 시 한 편 흘러오네요.
//자두빛으로 익어가던 열일곱 여름방학 어느 날이었는데요 자야에게서 온 편지 첫 문장 온몸이 땀으로 젖고 피부가 토인을 닮아가도 우리의 여름은 싱싱하다 지금도 불현듯 튀어나와 내 가슴 뛰게 하는 그 단어들 멍석처럼 마당에 주욱 펼쳐놓고 심장이 멈춰버려 떠나간 준이 가슴에 몹쓸 것 키워 불혹에 꺾여버린 경아 맥없이 목숨줄 밤바다에 던져버린 덕이 만질 수 없는 손들 보고 싶은 얼굴들 다 불러앉히는 것인데요 불면 후루루 날아갈 것 같던 자야 얼굴에 가득하던 주근깨 같은 까만 씨들 퉤퉤 뱉어가며 수박 하모니카를 불고 싶은 것인데요 때 이른 강강술래라도 하고 싶은 것인데요 물큰하게 익고 싶은 것인데요
푹푹 익어가요 엘 에이 8월.//
8월, 뒷마당이 익는다. 저마다 뜨거운 생이다, 질펀하게 한 상 차려지고 있다.
2013.8
단골손님이 생겼어요. 아침마다 나의 잠결을 방문해요. 이웃집에서 못 박는 소리가 이렇게 선명하게 들리는가, 멈추지 않는 소리에 이상하다 싶었죠. 정수리가 붉은 딱다구리 한 마리, 뒷집 마당과의 경계인 흰 페인트 나무 울타리를 쪼아대네요. 낡은 울타리 속에 양식이 될 벌레라도 넉넉히 있는 것일까요. 혹, 사랑의 짝을 구한다는 신호일까요. 머물렀던 자리를 살펴보니 단추구멍 낸 것처럼 울타리 결따라 흐르고 있네요.
도끼눈 감시망이 느슨한 틈을 타 날선 잎들로 치장한 유도화가 키를 세우고 있어요. 집 벽에 딸린 한 귀퉁이 땅에는 쑥이 야리야리 돋아있고, 푸른 분수처럼 뻗은 바나나 나무 잎들은 거실 창을 엿보네요. 눈치 볼 것 없다,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로움에 피식, 웃음이 나네요.
여전히 비쩍 마른 감나무 일곱 알 매달고 꿋꿋해요. 지난 해에는 세 개 열렸던 것들 몽땅 새들에게 보시 되었지요. 이번에는 내 손에도 몇 알 쥐어주면 좋을 텐데요. 영그는 모습 들여다보는 일 또한 쏠쏠한 즐거움이지요. 발그레 익기 시작한 복숭아 다람쥐에게 한 입씩 베어 먹히고 철퍼덕 엎어져도 나무는 아랑곳없네요. 옹골진 새 것과 따지 않아 농익은 것 골고루 품고 있는 풍성한 레몬 나무 의연하고요. 어린 대추알들 뙤약볕 아래 끄덕없어요. 금귤나무 오종종한 열매들이 야무져요.
옆집 캐리 할머니네와 맞닿은 야트막한 벽돌 담벼락 따라 담쟁이넝쿨 푸르게 뻗어가요. 이를 앙다물고 기어오르는 이미지로 종종 표현되는 담쟁이의 속내야 어떻든, 지금 내 마음에 들어오는 담쟁이 넝쿨은 맺힌 데 없고 순하게 흐르는 시내같군요. 그 넝쿨 길 위로 개미들 행렬이 바빠요.
한때 호박넝쿨 넘실대던 텃밭에 오후의 햇빛 일렁거려요. 그 빛살 타고 시 한 편 흘러오네요.
//자두빛으로 익어가던 열일곱 여름방학 어느 날이었는데요 자야에게서 온 편지 첫 문장 온몸이 땀으로 젖고 피부가 토인을 닮아가도 우리의 여름은 싱싱하다 지금도 불현듯 튀어나와 내 가슴 뛰게 하는 그 단어들 멍석처럼 마당에 주욱 펼쳐놓고 심장이 멈춰버려 떠나간 준이 가슴에 몹쓸 것 키워 불혹에 꺾여버린 경아 맥없이 목숨줄 밤바다에 던져버린 덕이 만질 수 없는 손들 보고 싶은 얼굴들 다 불러앉히는 것인데요 불면 후루루 날아갈 것 같던 자야 얼굴에 가득하던 주근깨 같은 까만 씨들 퉤퉤 뱉어가며 수박 하모니카를 불고 싶은 것인데요 때 이른 강강술래라도 하고 싶은 것인데요 물큰하게 익고 싶은 것인데요
푹푹 익어가요 엘 에이 8월.//
8월, 뒷마당이 익는다. 저마다 뜨거운 생이다, 질펀하게 한 상 차려지고 있다.
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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