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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 유적지의 돌 달팽이

팽이 힘이 그리 센지 몰랐다. 살짝 닫기만 해도 바스러질 것 같던 우렁이껍질이 육중한 건물을 떠받고 있었겠기에. 성지투어 중 우리는 그리스의 옛 도시 빌립보 유적지에 갔다. 그곳은 마케도니아 알렉산더대왕의 부왕 빌립 이름을 땄던 도시다. 로마 군사도시이기도 했던 곳. 거기 돌 달팽이 한 쌍은 실향민 유대 석공의 망향가라기로 내 귀는 그리로 쏠렸다.

팽이는 아득한 옛날 바다가 고향이었다는데 지각변동이후 점차 육지 달팽이 Snail로 살게 됐단다. 바다에 남은 족속은 Sea Snail로 불리는 고동이며 소라들 이니까. 자욱한 해무 속의 뱃고동소리를 떠올리면 내 귀 달팽이관은 소리진폭을 높였다. 석공의 향수(鄕愁)도 동서양이 다른가. 유대인 석공은 달팽이 한 쌍을 돌에 새겼는데 백제인 석공 아사달은 달랐다.

보 신라 석탑 완성이 더뎌 그랬을까? 그의 아내 아사여는 경주에 왔으나 탑이 완성돼야 남편을 만날 수 있단 말을 들었다. 그래 매일 탑 그림자가 비칠 안압지만 들여 봤다. 드디어 안압지물에 탑 그림자가 비친 찰나, 환상을 현실로 착각 그리로 몸을 날렸다니.

칠 전, 나는 초음파검진을 받았다. 오래전 담낭절제수술을 했기로 간, 췌장, 신장의 도형과 내는 소리가 좀 달랐나보다. 기사는 검진했던 데를 또 하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사도 합세했다. 그가 내게 통증 상태를 문진했다. Never라는 내 말이 의심쩍은 눈치였다.

문의의 귀 달팽이관이 판독한 소리니 어쩌랴?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목안이 메여왔다. 먼저 떠오른 것은 아내에게 갚지 못할 빚을 지누나. 참회였다. 요즘 같은 장수시대 부부로 만나 50년쯤은 거뜬히 함께 살아줘야 하는 데. 그게 남편 된 자의 도리일 듯한데.

득 쟝 곡토의 ‘소라껍질’ 글이 떠올랐다. “내 귀는 소라껍질 바다소리 그리워.” 아이들이 다 떠나 허허롭던 마음집도 우렁이껍질이었나? 아내와 내가 아옹다옹하다 감싸곤 했던 것도 그리움이 되겠구나. 달팽이 한 쌍을 돌에 새긴 석공의 마음을 알만하다. 세월은 야속할거니, 찬미. “내 이제 갈 곳은 저 본향-.” 긴 목을 뺀 달팽이의 느린 행보. 언제 다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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