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난사랑, 그 석별전화 한마디 / 박봉진
2017.07.07 05:52
난사랑, 그 석별전화 한마디 / 박봉진
집 전화벨이 몇 번 울렸다. 일상적인 소통은 휴대폰을 쓰기에 광고전화로 예단해 느긋이 수화기를 들었다. “헬로.” 응대를 하자마자 “오빠-,” 그 다음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전화는 끊겼다. 그 호칭으로 나를 부를 사람은 한국의 막내여동생뿐인데. 그 생각을 하니 동생의 음성 같긴 했다. 이렇게 통화 도중 전화가 끊길 경우 곧장 전화를 다시 했기로 어영부영 넘겼다.
그 애가 사는 고향도시 마산엔 차남인 나만 빼고 8남매가 살고 있는데 소식이 좀 뜸했다. 누님께 안부 전화를 했다. 남매 중 막내 여동생이 췌장암으로 먼저 갔다며 내겐 상심할까봐 알리지 않았단다. “뭐라고요!” 내 돌 머리를 꽝치는 자책에 오감이 멍했다. “이런 미련퉁이.” 그 전화가 그 애의 석별인사였던 걸 몰랐다니. 양손으로 내 머리를 긁어내려도 절절한 회한뿐-.
막내는 어느 집이나 귀염둥이 아닌가. 나도 막내인 그 애를 제일 좋아했고 애도 나를 따랐다. 고교시절, 나는 친구 집에서 쎄파트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왔다. 애는 그 강아지를 ‘쎄빠나’라 부르며 잘 놀았다. 그 애도 ‘쎄빠나’ 별명으로 불렸다. 중년주부가 돼선 난 수집과 키우기, ‘난사랑 카페’도 열었다. 이후 나는 그 애를 ‘난사랑’이라고 불렀다. 얘야, 넌 지금 어디 있니?
언젠가 너는 내 SNS ‘문학서재’에 들어와 “보고 또 보고...” 글을 남겼지. 그러고 보니 멀쩡했을 때임에도 너의 불길한 예감 같아보였던 그 언사에도 나는 ‘석두 등이’ 이었구나. 얼마 전, 나도 네 ‘난사랑 카페’에 들어가 보려했는데 영 열리지 않아 좀 이상하긴 했다만. 어찌 알았겠나. 아침에 핀 꽃도 한나절에 시들어버리듯 유약한 우리네 한 세상이란 게 그런 것인 걸-.
난사랑, 예쁜 내 동생아. 네 어렸을 때 널 골려먹는 전문가인 이 오빠 때문에 엄청 애먹었을 텐데 너는 내가 한국에 나갈 때마다 허브 정거장인양 우리 부부와 두 언니들을 태우고 8남매 집들 순방에다 유명식당이나 가볼만한 해변과 산야를 네가 운전해 데리고 다녔지 않았나. 네 없는 고향에 간들 뉘 있어 그걸 대신해줄 사람 있겠니. 황망하고 애달파 나갈 수도 없겠구나.
그 비보를 듣는 순간, 나는 힘이 쭉 빠지고 목이 꽉 메었다. 너를 해한 사람이면 가만두지 않을 내 성정을 넌 알잖아. 건데 하필이면 그 상대가 암 중에도 상대 못할 췌장암이라니. 그래 넌 병상에서 표 나지 않는 목소리로 석별전화를 했던 게로구나. 얼굴표정 힌트만 줘도 상통했던 우리였는데 너는 그랬겠다만 나는 예전 같지 않게 그 텔레파시를 못 받혀줘 더 슬프다.
내 예쁜 난사랑. 네 살아온 삶이 이제 떠올려지네. 억척같이 살아낸 한 생애가 너무 애달프다. 여자로 지천명(知天命) 나이가 다됐어야 가정을 안정해놓은 후, 주부 대학생으로 그 힘든 과정을 통과해냈지. 이후부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할일만 남겼지 않았나. 4군자 중의 난치기라면 모를까, 네 아파트 베란다를 꽉 채운, 전국 산야를 돌며 채집한 야생 난들을 누가 손봐줄 건가.
난이라면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난 집산매장 오키드 가든(Orchid Garden)이 있다. 우리 뜰에도 4월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한 품종의 난이 있긴 하다만. 나는 그 많은 난 종류의 대별법과 그 분류한 난들의 특징들을 알지 못한다. 그래 네가 살아있을 때 이곳의 서양 난 집산매장을 보여주지 못한 게 너무 한스럽다. 왜 나는 그런 예감엔 아둔했는지 모르겠다.
그래 난에 대해 몇 가지만 네게 알아보자구나. 통상적인 견해와 전문가적인 가치관이 다를지 모르겠다만 보편적으로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난이 좋은 건가. 아니면 고고한 품격의 난이 좋은 거냐. 그도 저도 아니면 원예전문가(園藝專門家)들이 키울 수 있는 희귀품종 난이 가치 있고 좋은 건지도 알려주렴. 그러고 너의 닉네임이 ‘난사랑’이니만큼 넌 어떤 난으로 살려했냐 도.
오늘 따라 못다 이은 그 전화 말 대신, 속마음 풀어놓고 여러 말을 했으니 우리는 쌓인 말이 많았나보구나. 지금에야 속에 담아뒀던 말들을 털어내 봤기로 한편으론 좀 숨찼던 것이 가뿐해. 그러다가도 너를 생각하면 목이 메곤 한다. 난사랑. 가만히 눈감고 있노라면 나비처럼 양어깨가 불룩한 원피스를 입고 내 뒤를 따르던 네가 보인다. 언제나 내 예쁜 막내 동생 ‘난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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