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초심의 태치기

2010.01.25 22:15

박봉진 조회 수:1356 추천: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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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골프이야기를 꺼내면 내 접시안테나는 어느새 그쪽으로 쏠린다. 타이거 우드가 어땠다더니 소렌스탐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들은 PGA나 LPGA의 내로라하는 스타선수다. 나 같은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언더 스코어는커녕, 싱글핸디에도 못 미칠 것이기에 꿈속 이야기로 접어두자. 한 분의 홀인원 이야기로 옮아갔을 때, 말 한마디 거들었던 것이 내 만년초보 딱지를 들통 냈으니.

어느 재벌총수가 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직도 사람들 입에 잠언처럼 오르내리고 있는 그 말. 자기가 원했던 것은 다 됐는데, 자식농사와 골프는 마음대로 안 되더라고... 그런 게 골프지만, 홀인원이란 이벤트가 있어 흥미를 돋운다. 그것은 핸디하곤 무관해도, 날고 기는 골퍼도 일생 한두 번 할까 말까하는 행운이라 않던가. 초보의 스윙에 공이 그린으로 날랐다 굴러 홀인된 것을 어찌 봐야 할까.

보통사람들의 정신건강과 걷고 몸 움직이는 운동을 위해, 캘리포니아의 웬만한 도시면 가까운 곳에 퍼블릭 골프장들이 다 있다. 특히 시니어들에게는 파격 활인혜택을 주고 있다. 아이들 용돈 정도 그린피로 골프를 즐길 수 있어 참 좋다. 골프의 시초는 영국 어느 지방 목동들 막대기 놀이에서 연유됐다 한다. 하지만, 세월 따른 진화과정에서 그것이 우리 문학의 수필처럼 창의적인 룰과 격조로 영글어지지 않았겠는가-

현대인은 최소한 한 가지씩의 취미생활과 즐기는 운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적성과 연령에 맞춰질 수밖에 없을게다. 이따금씩 나도 질문을 받는다. 왜 골프냐고. 그럴 때는 “예 그럴만해서요.” 알듯 말듯 미소와 함께 단 답으로 끝을 낸다. 그러나 멍석을 편 자리에서는 할 말을 다한다. 왁작 몰려와서 들뜨고 열광하는 축구나 야구경기를 차분히 뜯어봤냐고 되묻는다. 대중적인 인기종목이라 해도, 4각 틀 안에서 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차고 빼앗고 던지고 치며 피아간 격돌하는 반복구도가 아니더냐고.

골프는 넓은 필드에서 자기 공과 11개의 클럽을 사용해서 앞으로만 치고 나가는 경기다. 호수를 건너고 모래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에돌기도 한다. 실수했다 빠져나오기도 한다. 결코 만만찮은 코스를 순례자처럼 일주한다. 우리들 인생여정 같다 해도 과히 틀리지 않으리라. 수필도 그런 과정의 소산이다. 거기에는 시적 응축과 소설적 구성, 평론 견해도 포용하지 않는가. 각기 다른 특성의 골프클럽은 그 때를 잘 살려내기 위한 도구다. 공을 높이 띄우거나, 멀리 보내는 것, 땅에 굴리는 것도 있으니까.

유심히 보면 볼수록 골프만큼 수필과 쾌를 같이 하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성 싶다. 우선 받고 있는 인식부터 그러하다. 움직이는 공을 차거나 쳐야지, 가만있는 공을 쳐 날리는 골프가 운동경기 축에 들어가나 한다. 얼듯 겉모양세만 보고 내용은 잘 모르는 말씀. 움직이고 있는 공에 향배 에너지로 바꿔주는 것이 쉬운가? 정지 물체에 방향에다 길지도 짧지도 않을 거리로 시동하는 것이 쉬운가는 해보면 안다.

더러 수필을 창작문학으로 보지 않는 풍조에 대해 골프 운동을 즐기는 사람의 견해로 한마디 아니할 수 없다. 수필은 다른 문학 장르처럼 가상공간을 미리 할애 받아있지 않다. 대체로 사실적인 것을 소재로 삼지만, 연상 작용과 상상력에 의한 활동공간을 매번 만들어가며 창작하고 있다. 그런 창작체험을 제대로 해보고 하는 말이냐고-.

대개 구기 경기는 피아간 맞붙어 뛰고 빼앗기 아니면 뺐기기 때문에 사생결단식 승부를 내려한다. 골프는 그렇지 않다. 오직 자기 나름의 코스 전략을 세운다. 다른 선수들과 함께 나아가되, 상황에 맞는 자기 클럽을 골라 쥐고 그린을 향해 자기 공을 치고 나갈 뿐이다. 해서 골프는 ‘최저타 홀인’이란 일관된 주제 선을 밟으면서도, 비운 마음과 풀린 몸동작으로, 무심중의 유심 같은 공을 치고 나간다. 서둘거나 결정타 욕심에 힘을 써서 평정심을 잃으면 영락없는 실구를 낸다. 끝까지 자기와 대결한다는 수신(修身)의 운동이 골프다. 우리들 삶의 규범과 수필창작 예가 골프의 황금률(黃金律)과 다름없음이 너무 신기하다.

하지만, 그런 이치를 좀 안다 해도 골프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으니 어찌할까. 티샷을 위한 어드레스 때마다 긴장이 된다. 무릎이 후들거리기도 한다. 내 한계선, 인품의 향기가 베어나지지 않는 수필쓰기 같다. 골프는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는 날까지, 수필쓰기는 정신이 온전할 때까지 가능하다지만, 진전이 없으면 퇴보라는 말에 기로에서 헤맨다. 그럴 때는 기본을 생각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란 말을 듣는다. 마음을 비우고 힘을 쓰지 말라는 그 말. 수도승이 아닌 터에 그게 말처럼 호락호락 되랴. 그러면 그 실상(實像) 태치기를 해보라니.

한더위를 지낸 여름, 벼이삭이 익고 있는 논둑에 다시 서야지. 짚과 질긴 풀로 역은 태 꼴은 치렁치렁 옛 시골처녀의 긴 뒷머리처럼 내 키를 넘는다. 서두는 굵고, 말미는 초서처럼 흘렀다. 그것을 살 푼 쥔 듯 만 듯, 머리 위로 치켜든 손이 휘휘 옆 돌리기 한다. 형상화 문장이 다음 문장을 이끌듯, 제 중력에 가속이 붙으면 휘청 절정에 올린다. 한 음절 숨죽인 듯, 되돌려 휘두른 반전. ‘꽝’ 멀건 날에 허공을 찢는 뇌성! 논에 앉아 덜 영근 벼이삭 단 물을 빨던 참새 떼는 혼비백산 날아간다. 골프 스윙은 공을 날리고, 태치기는 새를 날린다.

적시안타. 생성과 활성에너지의 짜릿한 기승전결. 그 굉음의 신비와 속성(俗性)의 묘미라니. 골프는 수필쓰기처럼 평정심으로, 수필은 골프처럼 무욕경지에서라면, 한길씩 그 샘이 깊어질까. 한 라운드의 수필쓰기를 위해, 매번 낯이 설은 골프클럽을 골라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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