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동상에게 거수경례를
2014.11.30 22:46
동상에게 거수경례를 / 박봉진
얼마만의 거수경례인가? 오래전 내 군인시절과는 달리 눈웃음에다 이마에 갖다 붙인 오른손바닥이 밑쪽을 보는 각도면 됐다. 그 사람과 통성명을 안했어도 인사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Good morning Guard General." 초등학교 인접 네거리의 Crossing Guard. 그 때 그는 내려선 동상이었다. 고마움과 격려의 마음으로 했던 말이었는데. 한손에 Stop 싸인 판을 들었으니 답례는 무망. 그런데 구리쇠무게로 와 닿는 둔중한 바리톤 음정, "Thank you sir"-.
어디서 봤더라, 가물거리는 그 사람. 시공을 오르내리며 검색 창에 클로즈업된 이미지. 맞아. 나폴레옹이 말을 타고 사열대에 막 도착했을 때 있었던 해프닝. 낯선 장면에 놀란 말이 용수철 튀듯 날뛰었다. 낙마직전, 무명의 한 병사가 몸을 날려 말굴레를 꽉 거머쥐었다. 나폴레옹이 나직이 말했다. “대장, 고맙소.” 그 때 이후 그는 나폴레옹을 바싹 뒤따랐다. 제병지휘관이 그를 밀쳤다. “인마 말굴레 한번 잡은걸 갖고 뭐...” 곧이곧대로 뚝심이 대명사인 그가 물러날리 없다. “아니요. 대원수님이 나를 대장이라 했으니 뒤따라야 해요.” 마상에서 그 광경을 본 나폴레옹이 빙긋 미소 지었다. 그 병사는 진격지휘 대장은 못돼도 방어책무 호위대장은 되지 않았을까.
동서남북, 가로 세로, 뜸했던 네거리 기슭마다 순식간에 뭉게구름이 몰렸다. 포커스가 맞은 영상에는 엄마 아빠 손에 매달린 색색의 꽃나무들. 손에 개 줄을 잡은 사람도, 나 같은 산책길 Senior도 섞여있다. 저만치 길 옆쪽에 세운 자동차안에서도 어른,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4방향 길 중간마다엔 발차 싸인을 기다리는 승용차들이 장사진이다. 그가 눈코 뜰 새 없어졌다. 건장한 장년인줄 알았는데 한쪽 다리를 안쓰럽게 끌며 길 복판에 나가 우뚝 서지 않는가.
내 목안엔 무엇이 도진 듯 찡한 가로토시가 뭉클거렸다. 누가 그런 말을 했나? “못 걸으면 끝장”이라고. 어디나 내닿던 사람이 한순간 다리 이상증세로 걸을 수 없게 됐던 절망을 격어 봤다면 알리라. 그는 전상을 입은 재향군인일까? 아니면 어떤 공상 자거나, 불의의 부상자? 어쨌거나 그의 장애는 그가 하는 일을 하는 데는 지장이 되지 않는다는 신체검사 통과자임은 확실하다. 이곳의 Crossing Guard는 단순 건널 몫 지킴이가 아니다. 대체로 은퇴자들 중에서 소정 전형기준을 통과한 파트타임 Job자들이다. 경찰관 직무교육 일부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한길을 건너고 또 한길을 건너야하는 내 산책길 왕복 2킬로. 미명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선다. 신호등이 있기 보담 없는 것을 선호하는 동네 안길. 그 때는 초등학교 턱밑 네거리도 적막에 쌓인 장터 같다. 뒷길을 돌아 공원에 들어서면 밤샘한 청량공기가 폐부를 헹군다. 나는 높고 낮은 철봉에 매달려 다리야 빠져나가라 하고 헛발질 공차기와 밑 눌러대기, 뒷발질로 땀을 뺀다. 그러다 공원 안 콰이강 다리를 건너가 기울기 목대 등받이에 척추를 누인다. 눈을 감았다 떴다하며 높다란 유카리프나무가지에 걸린 하현달을 뇌파로 흔든다. 저만치 멀어져간 이후에 일어선다. 그게 무리한 바깥일 끝에 못 움직거렸던 내 허리, 다리통증을 회복한 운동요법이기에.
네거리 동상과의 만남은 집으로 돌아올 때다. 초등학교 등교 시간이 그때와 같아서다. 학생들 등하교 때 보호자가 함께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이곳사람들.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단면이 한탄스럽기도 하다. 그는 Stop 싸인 판을 높이 들고 길 한 가운데로 나갔다. 위험 방어 실험은 혼자 먼저 한다는 듯이. 그리곤 양팔이 어깨높이 십자 선이 되게 폈다. Stop 싸인 판을 곧추 세웠다. 동서쪽 양방향 길을 철벽처럼 막아섰다. 동상의 호령이 우렁찼다. “All the way okay.” 남북 길 양쪽 건널 몫에는 뭉게구름이 교차되며 흘렀다. 출애굽 때 모세가 팔을 들어서 갈라진 홍해를 저렇게 건넸을까? 바닷물 높이가 같지 않은 태평양, 대서양 간 파나마운하 갑문도 저리 차례로 열어 통선 시키나보다. 그래 교통은 물 흐르듯 흘러야 한다고 했나.
Stop 표지판이 세워져있는 네거리는 어디서나 일단 멈춤이다. 그리고 먼저 온 사람이 먼저 건너간다. 자동차 운행 룰도 똑 같다. 그것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법규며 각자 양심 내보이기이련만. 뭣에 골몰했는지 나는 건널목을 내디뎠다 멈칫 뒤물렀다. 생활화가 덜된 무의식의 노출. 귀청센스가 내는 지청구를 듣는다. 여태 살아오면서 남한테 뒤지지 않으려 안달했던 네 인간관계 대차대조표는 어땠고. 누려보지 못한 시산 표 잔고는 어디로 흘려보내버렸는고.
견주긴 좀 뭣해도 전투에서 승리했던 장수가 전쟁에선 패자였던 사례는 수없이 많지 않는가. 재수를 허락 않는 외길 인생여로, 나처럼 통행규칙을 못 지킨 자업자득이었을 것을-. 꾸밈과 환심엔 신경 안 써 보였던 네거리의 Crossing Guard, 그 동상.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해 봉사를 즐기며 사는 그 사람. 내 마음 속에 진한 인상을 준 그가 눈길을 잡아끈다. 내일은 더 일찍 일어나련다. 공원에 들려오다 여유롭게 그를 만날게다. 매사, 진격이전 방어부터 튼실이 하고, 자동화 기계장치보다 인력에 더 고마워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 남은 세월 그 사람만큼만 해도 괜찮을 듯싶은, 그 동상에게 거수경례를 올려야겠다. 열병식 때와 같은 그 동작으로.
(에세이문학 2014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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