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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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아름다운 만남

2016.11.16 02:25

채영선 조회 수:108

아름다운 만남


소담  채영선


쌓여있는 나무토막 틈새에 집을 지은 토끼 가족이 늘었습니다.

고만고만한 세 마리의 토끼가 번갈아 놀러 나옵니다. 옆집 레니가 돋우어 놓은 골짜기 사이 길을 넘어 둔덕 아래로 숨은 지 30여분이 지나자 몸집이 조금 큰 토끼 한 마리가 나타나 귀를 쫑긋 두리번거리더니 세 마리가 내려간 곳으로 정확하게 사라집니다. 이어 귀여운 토끼를 줄줄이 몰고 집 쪽으로 조르르 달려갑니다.

 

삶이란 만남의 연속이 아닌지요.

깊고 넓은 생의 심연에서 길고 짧은 만남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요.

무화가 나무 아래에서 기도하고 있던 나다나엘을 기억하고 계신 분은 오직 예수님이셨습니다. 동족을 돕는다고 생각한 모세는 결국 동족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으며 미디안 광야의 한 우물가에서 아내가 될 십브라를 만나게 됩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간 야곱도 어머니의 고향 우물가에서 사랑스런 라헬을 만나게 되었으며 족장의 위치를 차지하게 될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되었지요. 우물은 목마른 사람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며 가치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의 손길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십이 되어가는 나이에 미국으로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글을 쓰라고 하셨습니다. 시인 윤동주에 대한 짧은 연구로 대학교 졸업논문을 썼지만 습작 노트 한 권 지니고 있을 뿐 전혀 다른 세계에서 생활하던 저는 졸 시편 두 개와 일기 하나를 쓰고는 더 이상 쓸 수 없었습니다. 숨 가쁘게 달려도 따라갈 수 없는 이민 생활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이오와시티라는 문학의 도시로 저를 다시 옮겨 놓으셨습니다. 심오한 영문학 연구로 알려져 있는 University of Iowa 대학에서는 세계 작가 클럽 모임이 가을마다 3개월씩 열리고 있었지요. 한국의 대표 작가들이 가을마다 몇 분씩 방문하시는 독특한 도시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귀한 기회를 통하여 잊어버리고 있던 문학에의 열정이 다시 솟아오르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중의 어떤 작가들은 우리가 목회하는 교회에도 오시고 세미나를 열기도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작가들 중에 감사하게도 시인 문정희 교수님을 가까이 대한 적이 있습니다.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뀌기 전입니다.

 

국어과를 졸업하고 시를 유난히 좋아하던 저에겐 가슴 두근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따뜻하고 소탈하며 사교적인 모습의 세미나 강의에 감동을 받고 문정희 교수님을 초대한 것입니다. 비록 하루 저녁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리를 같이한 몇 몇 지인들과 함께한 오붓한 식사와 식후의 무르익은 정담은 깨소금이었지요.

 

자극을 받은 저는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여 미주문학 신인상을 받고, 그동안 쓴 글을 모아 처음 시집 사랑한다면을 만들게 되었지요. 그 동안 소식을 한 번도 못 드렸던 문 교수님께 시집을 드리고 싶어 전화를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십여 년이 지난 그때에도 그날 저녁 메뉴와 주고받은 말씀도 기억 하시고 특유의 웃음을 웃으시며 반가워하셨습니다.

 

첫 시집을 보내드리고 며칠 뒤 다시 전화를 드린 저에게 분에 넘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이 들어 시작한 시의 길에서 문 교수님의 따뜻한 격려의 말씀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언제나 큰 용기를 주시고 계십니다. 그 후 목회 길에서 은퇴한 남편과 함께 홀로 계시는 친정어머니를 가까이 모시고 문학 연수를 하며 두 번째 시집 미안해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연약해지고 곤고할 때에 창조문학 홍문표 교수님의 문학 설교와 가르침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기도해주신 이영지 교수님과 여러 문우님의 사랑과 격려, 눈물어린 시 낭송과 믿음의 간증을 늘 기억합니다. 늦게 시작해서 이제 걸음마를 떼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시카고의 여성 문인 모임인 예지문학에서 믿음이 신실한 여성 문인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넓은 대륙 미국 땅에서 만남을 통하여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내 영혼의 소원을 이루어주시고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나눌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멀리 있어 자주 대할 수 없어도 영으로 마음으로 성령 안에서 서로 교통하며 위로하는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생각할수록 감사와 찬송이 넘치는 봄날입니다.

 

때를 따라 베푸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모든 이에게 임하시기를 두 손 모아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