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선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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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 내 탓이예요

2016.11.16 02:32

채영선 조회 수:52

내 탓이예요


소담 채영선


정원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정거장에 나가서 기다리기라도 하건만 오랫동안 돌보지 못한 정원은 속으로 원망을 삭히다가 올 봄에나 마주볼 마음이 생기나봅니다. 한국 전쟁 후 서울에서 태어나 남쪽에 친척이 없는 부모님 덕분에 방학이 되어도 갈 시골이 없었습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자라난 저에게 정원 가꾸기는 정말 즐거운 일이지요.

 

큰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그늘지는 곳에 여러 종류의 옥잠화를 심다가 몸살이 나던 해도 있습니다. 덕분에 곳곳에 푸르고 소담하게 자리를 잡은 호스타와 길 건너 집에서 분양해준 피오니, 백합, 난초 등으로 구석구석 손길이 간 정원을 두고 글쓰기 바람이 불어 한국행을 한 것입니다.

 

건강을 위하여 돌아온 작년 1월 눈구덩이 속에서 정원은 숨소리도 없이 동면을 하고 있었지요. 집과 여자는 가꾸기 나름이라더니 봄이 되면서 드러난 정원은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울타리 없는 집에서 시들고 잠적해버린 화초들은 한숨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돌보지 않은 사람이 잘못이지요. 이럴 땐 불평은 금물 참 속이 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 다 나의 탓입니다.

돌보고 가꾸라고 주신 것을 돌보지 못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꾸며 돌보라고 주신 이 아름다운 자연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 되어있는 자연을 우리는 너무나 방치했을 뿐 아니라, 지금도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요.

 

작년 여름 무심코 나무에 걸어 놓은 플라스틱 새 모이통 때문에 나무가 시름시름 앓고 있더니 큰 가지 몇 개에서는 올해 꽃도 잎도 나지 않고 있습니다. 나중에야 모이통이 의심스러워 치웠지만 모이통 아래에서 무성하던 금낭화도 축이 나고 말았습니다. 값이 저렴한 모이통을 샀더니 무언가 문제가 되었나 봅니다. 냄새도 묘한 플라스틱의 영향력을 뼈지게 느껴보았습니다.

 

보시기에 참으로 좋았더라고 기록된 것은 여섯 째날 사람을 만드신 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숨을 불어넣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게 하였던 인간의 현재 모습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 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와서 행위가 악하고 고침을 받기 어렵게 되어버린 사람을 보고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인간은 발달된 의학 기술로 어떻게 해서든 천수를 누릴 방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머리를 이식하는 수술을 계획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천수를 누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 아닐까요.

 

뉴스를 보기가 두렵습니다. 미움이 지나쳐 증오가 되고 있는데 증오의 대상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테러라고 부릅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대상이 없는 증오가 폭발할지 아무도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기도해야 할까요.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요. 모두 우리의 관심을 필요로 하는 이웃입니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만날 수 없는 이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미워하는 이웃을 용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이에게는 빵을, 마음 슬픈 이에게는 따뜻한 한 마디 위로를 나누며 외로움이 미움으로 변한 이들을 위하여 더 많이 기도를 해야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