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비애 (A Hidden life)

2022.09.21 14:23

강창오 조회 수:119

   세상에 좋은 영화들이 많긴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써 아무래도 기독교 신앙이 박해 당하는 영화를 접할 때 마다 더욱 관심이 끌리곤 한다. 최근에 우연히 보게 된 ‘숨겨진 비애’는 신앙/양심 선언으로 히틀러/나찌정권에 대항한 한 젊은 농부의 스토리로써 1960년초에 밝혀져 2019년도에 제작된 실화 영화이다. 
  
  영화내용은 대강 이러하다. 프란즈는 나치 정권하에 합병된 오스트리아의 산골 아주 평화로운 마을 라디간드에서 태어났다. 깊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성실한 어른으로 자랐고 급기야 비슷한 성품의 파니를 만나 결혼해 귀여운 세 딸을 키우며 마을에서 큰 역할을 하는 젊은이로 자리매김을 한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후 전운이 뻗치면서 사태가 급변하기 시작했고 곧 이어 그는 징집영장을 받는다. 그즈음 이웃나라 프랑스가 아무런 명분없이 독일군에 함락되자 그는 이 전쟁이 다만 히틀러 나치정권의 무모한 야욕임을 알아차리고 징집을 거부한다.
  
  그 당시 독일에 합병된 오스트리아는 이미 깊숙히 나치 정권의 영향하에 있었기에 누구든 히틀러에 반대하면 매국노로 낙인 찍혀 숙청의 대상에 오르게 된다. 프란즈의 징집거부가 알려지자 마을 관리들과 주민들은 그와 그의 가족을 따돌리기 시작한다. 가까운 이웃 친구들 마져 여기에 합세해 침을 뱉거나 욕을 하는등 갖은 무시를 다 하면서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인 핍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참다못해 마을의 교회 신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신부는 프란즈에게 동정을 보낼 뿐 아무런 대책을 마련해주지 못한다. 여차하면 성직자까지 잡혀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 지역 주교는 오히려 프란즈에게 책임을 돌리며 가차없이 힐난한다.
  
  결국 그는 체포되었고 형무소에 보내진 뒤 아내 파니와의 서신교환을 시작하면서 더욱 힘을 얻기 시작한다. 몇 달간의 수감생활중 형무관들의 구타는 다반사이고 재판관을 비롯해 형무소 관리들은 본격적으로 회유를 위한 심문에 들어간다. 때론 협박도 하고 어르고 달래며 도덕, 윤리 하다못해 신학적인 토론에 이어 편한 병원근무 제안 뿐만 아니라 심지어 히틀러정권에 가짜 맹세까지 하도록 유도한다. 그 와중에 산골 마을에 남은 가족들의 생활이 극단적으로 피폐해진다. 농사를 비롯해 모든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들에 있어서 집단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주민들은 외면할 뿐 누구하나 손을 내밀지 않는다.
  
  1943년 8월, 몇 달간의 수감끝에 프란즈는 구조될 많은 기회를 물리치고 끝까지 자신의 신앙/ 신조를 굽히지 않음으로써 사형선고를 받게 되고 급기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이 영화를 보면서 얼마전에 보았던 ‘침묵/ Silence’ 영화가 생각났다. 17세기경 카톨릭이 일본땅에 뻗기 시작하던 그 당시의 종교적 핍박을 잘 그려낸 영화다. 제수잇 교회는 포르투갈인 두 신부를 일본에 보낸다. 그들은 잘 도착했지만 곧 이어 주민의 밀고로 잡혔고 급기야는 배교에 까지 이른다. 일본인 관리들은 그들만 배교시키면 일본땅에 더 이상 카톨릭 신앙이 퍼지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그들은 갖가지 고문을 당하며 배교를 종용받지만 거이 끝까지 고문을 감수하는듯 한다. 하지만 이미 카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일본인 추종자들이 자신들로 인해 반인륜적인 고문을 당하는 것을 보고 견디지 못해 결국 배교 선언을 한 뒤 귀화한 일본인들로 살아간다.  
   
  이 두 영화는 내용이 달라도 개인의 기독교 신앙을 제거해 완전 배교시키려고 테스트하는 과정이 비슷하다. 결론적으로 제수잇 신부들은 배교했고 프란즈는 순교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의 강도가 최종적으로 비교되어 보이지만 한 가지 심오한 의문의 앙금이 남는다.
 
  물론 프란즈 자신은 죽음으로 끝나 비애를 남기지만 제수잇 신부들과의 핍박 과정을 비교할 때 핵심적인 변수는 면했다. 그 때문에 뒤에 남은 가족은 말할 수 없는 희생을 겪긴 했어도 다행이 프란즈와 함께 심문의 대상으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톨릭 신앙에서는 신부들이 영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신도들은 당연히 자녀의 위치에 서게 된다. 그래서 이 제수잇 신부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자녀인 일본신도들이 당하는 고통을 보고 감내하기 힘들어 끝에 가서는 배교를 택한 것이다. 만일 프란즈가 그의 가족 특히 셋 딸들에게 그와 같은 고문이 따랐다면 아버지로써 끝까지 버틸수 있었겠는가? 큰 의문을 떨쳐버릴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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