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고목(枯木)의 역사

2023.06.24 09:31

강창오 조회 수:87

 

이게 언가?”

아늑하기만 했던 반려의 손길들이

덜미를 거머쥐기 시작했을 때
선뜻 끼쳐 소름

천진난만 했던 파란 눈망울들이

메두사의 서슬 시퍼런 눈이 되어

검은 미소 속에 거친 숨결을 토해낸다

 

뿌연 기억속의 지난 날

문득 발가락을 간지르며 선보였던 파란동이 넝쿨 잎 하나

빤히 올려다보는 천진한 부름에 그만 흠뻑 취해버렸다

첫 만남속에 움트는 작은 몸부림이 너무 가여워

선뜻 받쳐주고 보듬어주고 기특하다 했었다

 

허리춤을 움켜 잡았을 때도
꿋꿋하게 오르는 어린 동무 고투에
아낌없는 보루가 되어
온정을 쏟으며 힘내라 마냥 격려해 주었

 

흐르는 세월을 탓하랴

잘 자라는 대견함에 너무 맥을 놓았던가

어느덧 여린 실낱들이 검은 아귀의 밧줄이 되어

한 줌씩 한 줌 씩 내 숨결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뒤 늦게 온 몸을 흔들어 떨쳐보려지만

겹겹이 쌓아 려진 포승이 더욱 더 조이기만 한다

아차 이젠 늦었구나

때늦은 후회가 머리속에 엉킨

딱딱한 흙을 비집고 솟아 오르는 파란동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그 긴 세월 동안 조건없는 사랑의 담벽이 되어 주었건만

베풀어준 사랑을 음흉한 덫으로 엮어

생명을 요구할 줄이야

시소를 타고 오르내리는 배신의 유희가

마지막 줄기 호흡갉아 마신다

내 육중한 자태와 기력이 까맣게 사그러져 간다

숨박꼭질로 다듬어진 고통마저 식어버리자

순간, 사이에 뜬 노란 공간이 사뭇 평화롭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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