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0 15:29
이희숙
단풍은 다른 빛으로 이희숙
따뜻한 날씨 탓에 어제나 오늘이 지루하게 온 세상이 초록인 줄 알았는데 나뭇잎이 풀빛을 벗어내며 땀 흘리던 청년 얼굴을 닦아 내고 햇빛에 머물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수줍은 여고생의 발그스레한 볼 한 입 깨문 사과에 스며든 햇살은 나뭇잎에 시나브로 익은 고춧빛 버무려 가으내 축제 열어 퇴색한 나이에 고운 색깔 발라줍니다
소리 없이 내려앉은 내 가을날 지난날의 푸르름은 한 잎 두 잎 구불구불한 핏줄로 얽히고 빨갛고 노란빛이 엉킨 물감들 걸어온 흔적과 계절을 칠합니다
스크랩한 햇살은 또 다른 빛을 피웁니다 남겨진 시간에도 붉게 타오를지 바람에 흩날려도 아름다울 수 있을지 여정은 짧아도 그 색채는 진해지고 숲 깊숙이 뿌리는 단풍 비 흙 속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빛을 그려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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