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연탄재는 못될지언정

2005.02.01 08:41

김학 조회 수:61 추천:9

연탄재는 못될지언정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기초반 김 세 희

나도 모르게 저절로 눈이 간다. 얼굴이 심하게 불에 데었나 보다. 왼쪽 눈과 코 사이의 거리보다 오른쪽 눈과 코 사이의 거리가 더 짧고 쭈글쭈글하다. 그리고 얼굴색이 부분적으로 차이가 난다. 어느 쪽은 유난히 붉고, 어느 쪽은 유난히 하얗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에 나오는, 숲 속의 마녀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쥐색 외투를 덮은 흉측한 숲 속의 마녀. 나의 호기심 어린 눈과 그녀의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짧게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하얀 목도리 속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그것으로 나와 그녀의 만남이 끝이 났더라면 나는 그 상황을 단순한 일상으로 돌린 채 잊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때의 상황은 내게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시구로 지금까지 내 가슴 한켠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것은 내가 숲 속의 마녀 같다고 생각했던 그녀의 옆구리에 팔짱을 끼고 걷던 한 어여쁜 소녀 때문이었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불에 데인 그녀를 바라보자, 옆에서 함께 걷던 소녀는 재빨리 내 눈과 그녀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그녀 옆구리에 끼고 있던 팔짱에 더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러면서 자기 쪽으로 그녀를 더 잡아당겼다. 그리곤 화상 입은 그녀의 얼굴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소녀의 미소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내가 있으니까 사람들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말아요. 별 거 아녜요."라고.
그 장면을 본 순간,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져 내 체크무늬 목도리 속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내 따가운 시선을 느끼곤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내 얼굴만이 아니라 내 생각까지도 함께 우그러뜨리고 싶었다. 숲 속의 마녀 같다는, 그녀에 대한 내 섣부른 판단은 얼마나 잔인한 짓인가.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겪어야 했을 그녀의 아픈 가슴에 또다시 뜨거운 불덩이를 집어던지는 꼴이지 않은가. 안도현의 시 가운데 '너에게 묻는다' 라는 시가 있다. 매우 짧은 시인지라 쉽게 외워버렸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이 시를 읽을 때면, 시 속의 '너'는 바로 내가 되어 나를 향한 질문처럼 느껴진다. 뜨겁게 타오르고서 남겨진 연탄재. 정말이지 나는 누구에게 단 한 번이라도 뜨거웠었나 돌이켜보면 내 마음의 답변은 창피하게도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다.
목도리 안으로 내 얼굴을 숨기게 했던 소녀의 모습 위로 이 시가 돌연 배경음악인 양 내 마음을 향해 마구 질문을 해대니, 문득 나는 부끄럽지 않아야 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다고 기억되지는 못할지언정 연약한 이의 아픔을 살포시 끌어안아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되지 않을까. 내게 섬뜩한 첫인상을 준 그녀의, 그 여리디 여린 팔짱을 자기 쪽으로 힘주어 끌어당기던 어여쁜 소녀처럼. 그런데 나는 어떠한 모습이며, 어떠한 눈짓이었던가. 연약한 이를 차가운 눈짓으로 몰아세우지는 않았던가. 가슴 아픈 이를 포근히 안아주지는 못할지라도 우월감을 가진 눈빛으로 바라보지는 말았어야 할 일이다. 내 눈빛으로 인해 누군가는 주눅이 들어 숨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을 생각하면 나의 부끄러운 두 눈은 저절로 감겨진다.
오래 전 일이다. 아마도 내 나이 아홉 살쯤으로 기억된다. 내가 다니던 교회에 한 여선생님이 계셨다. 그 분은 매 주마다 변두리에 있는 맹아원에 들러 아이들을 목욕시키시고, 돌봐주시는 분이셨다. 가끔은 토요일 저녁에 그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주무시고, 일요일에 곧바로 교회로 오시곤 하셨다. 선생님의 권유로 나도 두어 번 맹아원에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나는 앞 못 보는 아이들 곁에 가까이 다가가는 게 무섭고 싫어서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왠지 그들에게서 꺼림칙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아 내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렇게 얄밉게 행동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이 아이들은 앞만 못 볼뿐이지 다른 것은 다 너랑 똑같단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아이들의 손도 잡아주고, 다정하게 얘기도 걸어주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당부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곤 한 쪽 귀퉁이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있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나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나를 향해 끊임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시며 아이들을 정성껏 돌보셨다. 철없이 얄궂은 내 어린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셨던 것일까.
지금 돌이켜 보면 선생님은 앞 못 보는 아이들의 추운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연탄과 같지 않았나 싶다. 아니 그보다는 안도현의 시에 나오는 연탄재와 같지 않았나 싶다. 아이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곤 담장 한 쪽에 조용히 쌓여지는 연탄재, 뜨겁게 타고남은 흔적마저 누가 알아볼세라 바람에 제 몸을 흩뜨리는 연탄재 말이다. 그러나 그 때의 내 모습은 불발로 버려지는 연탄이지 않았을까. 뜨겁게 한 번 제대로 타오르지도 못하고 제 모습만을 온전히 돌본 채 담장에 고스란히 남겨진, 제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한 새까만 연탄의 모습이지 않았을까. 앞 못 보는 아이들을 사랑스레 돌봐주던 선생님처럼은 못하더라도 그들 곁에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잠시나마 함께 놀아주는 모습이었더라면 참 좋았으련만……. 그저 새까만 연탄의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그 시절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이 세상에는 누군가를 위해 뜨겁게 타오르고서 남겨진 연탄재 같은 분들이 간혹 있다. 빈민과 고아, 한센병 환자 등의 구호에 힘쓰셨던 마더 테레사 수녀와 같은 분이 그들 중 한 분이리라. 헬렌켈러의 인생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설리번 선생님도 헬렌켈러에게 더없이 뜨거운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 틀림없다. 그들처럼 활활 타오르는 연탄의 모습으로 산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혹 그렇게 살지는 못할지라도 연약한 이의 팔을 조금만 더 내게로 끌어당기며 살자고 나직이 다짐해본다. 연탄재는 못될지언정 상처 입은 이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고운 눈짓이라도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