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사흘
2005.02.19 19:01
내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사흘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반 최선옥
무지무지한 통증과 고통을 겪다가 얼핏 잠에서 깨어났다. 온몸은 식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연속으로 터져 나오는 기침으로 숨이 막혔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나에게 당황한 남편은 물을 마시게 하며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몰랐다.
그 와중에 문득 떠오르는 것은 막연히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119를 불러요!”그제서야 남편은 정신을 차린 듯 다이얼을 돌렸다. 확인 전화가 오고 보호자가 있느냐, 참 수속절차도 많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내게는 무척이나 긴 시간이었다. 대학병원 응급실로 들어갔을 때 내가 마지막 들은 소리는 11시라는 말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캄캄한 암흑 속으로 떨어 쪘다.
혼수상태였다. 병명은 급성 심근 경색증. 모든 것이 정지되고, 아무 준비도 없이 어느 순간 몰아닥친 깊디깊은 수렁. 이것이 인생의 죽음인가? 몇 시간 전까지 웃으며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살아 숨쉬던 나였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늦기 전에 식구들과 친척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도록 연락하게!”남편 친구인 의사의 말이었단다. 도저히 남편은 전화 다이얼을 돌릴 수 없었다고 했다. 놀란 친척들이 달려오고 팔십 넘으신 친정 오빠가 노구를 이끌고 오셔서 내 모습에 눈물만 흘렸다. 간신히 꺼져가는 생명을 붙잡는 것은 산소호흡기와 인공호흡에 의존하는 것뿐이었다. 단 한 번도 나를 앞세우리라곤 생각조차 못 했던 남편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모여든 친척들은 일을 당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자고 아들과 의논하고, 연락을 받은 교회 목사님의 신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임종기도는 모든 이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하루 이틀 사흘, 난 깨어날 줄 모르고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아주 깊고 캄캄한 곳으로부터 가느다랗고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려 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모기소리같은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 했지만 온몸에 기력이 소모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꾸만 사그라드는 한 가닥 남은 의식을 놓치지 않으려고 난 생명을 건 처절한 싸움을 벌였다. 그때 내 얼굴에 따스한 무엇인가가 떨어졌다. 그리고 아주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난 할 수 있어!”
혼수상태일지라도 계속 말을 시키면 듣기도하고 또 깨어나는데 도음이 된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남편이 내게 속삭이는 말이었다. 그러나 난 따라 할 수가 없었다.
"난 할 수 있어!”남편은 주문을 외우듯이 계속 내귀에다 대고 이야기했고, 그럴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내 얼굴에 떨어졌다.
내 의식은 서서히 깨어났다. 나는 무릎을 꿇고 신에게 물었다. "나를 살리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회복이 아주 빠릅니다. 거의 기적같은 속도로 회복됩니다.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 이기십시오. 의학적 치료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내게 한 권의 책을 선물했다. 마음의 속도를 늦추라는 책이었다. 내 눈에서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그 동안 참 무뚝뚝하고 재미없는 의사라고 눈을 흘겼었는데 .
거리엔 크리스마스 캐럴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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