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조물주가 아껴둔 미래의 땅

2007.07.28 10:52

김학 조회 수:84 추천:9

아프리카, 조물주가 아껴둔 미래의 땅
                                                       김 학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내가 널따란 아프리카 땅을 밝기까지엔 무려 65년의 세월이 걸렸다. 내가 처음 아프리카란 말을 들은 것은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5대양 6대주를 배우면서부터였다. 사실 아프리카가 지구의 어느 구석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달달 외웠을 뿐이다. 그 뒤 아프리카를 잊었지만 살아가는 데는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철이 든 다음에도 아프리카 하면 바로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동물의 왕국’이나 ‘타잔’ 혹은 영화에서 보았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 ‘불러드 다이아몬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가끔 신문이나 텔레비전을 보고서 아프리카는 에이즈가 창궐(猖獗)하고, 영양실조 어린이들이 많으며, 종족 간의 내전이 잦은 곳으로만 알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대하여 아는 것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내가 그곳에 갈 기회가 생겼다. 세네갈공화국의 수도 다카르에서 열리는 제73차 국제 펜클럽대회에 한국대표의 일원으로 참가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 가려니 여행수속부터가 복잡했다. 전주에 사는 내가 서울 국립의료원까지 찾아가서 파상풍과 디프테리아 예방접종을 하고 말라리아 약도 사서 복용해야 하니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바로 아프리카로 가는 비행기도 없었다. 우리나라와 아프리카가 어떤 외교관계인지 알만했다. 홍콩공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로 바꿔 타야 했다. 7월 2일 저녁 8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커세이 퍼시픽 CX419호 비행기는 2시간 40분 만에 홍콩국제공항에 내렸다. 밤하늘에서 굽어본 홍콩의 야경은 보석을 뿌려놓은 듯 찬란했다. 이래서 홍콩을 동양의 진주라 했던가. 홍콩공항에서 두어 시간 동안 비행기의 이착륙을 구경하며 뭉그적거리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비행기 SA287호에 올랐다. 객실에 들어서니 검은 피부의 승객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프리카가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예정보다 10분 늦은 자정 무렵 비행기는 공항을 이륙했다. 북반구를 떠난 비행기는 무려 13시간이나 남반구인 요하네스버그를 향하여 쉬지 않고 날았다. 같은 비행기를 탄 검은색‧흰색‧노랑색 승객들은 잠을 자거나, 신문이나 책을 읽기도 하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등 멋대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아프리카를 찾아가는 지루하고도 긴 여로였다.
아프리카의 관문인 요하네스버그공항에 도착했다. 아프리카의 첫날 아침은 우리네 가을아침처럼 상쾌했다. 그 동안 ‘검은 대륙 아프리카’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프리카는 사람의 피부가 검듯 땅도 하늘도 강물도 검은 색이려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다른 게 거의 없었다. 나뭇잎은 초록색이고, 강물은 푸르렀으며, 땅은 흑갈색이고, 하늘은 우리네 가을하늘 그대로였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란 말은 백인들이 맨 처음 이 아프리카를 찾았을 때 검은색 선 그라스를 끼고 바라보고 평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아프리카는 1년 내내 여름만 있는 열사의 나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금 겨울이지만 우리나라의 늦가을 같았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나서니 가이드 유영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두어 시간 달려서 선시티(SunCity)로 이동하였다. 늙수그레한 가이드는 15년 전에 선교하러 온 목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아들은 한국에서 살지만, 독일인과 결혼한 딸과 자기 아내도 이곳에서 가이드로 일한다고 했다.
공항에서 선시티로 가는 도로 양쪽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무가 울창하지도 않고, 풀이 무성하지도 않았다. 허름한 단층집들만 띄엄띄엄 눈에 띌 뿐 전혀 개발이 되지 않아 버려진 땅 그대로였다. 수원(水源)이 부족한 까닭이라던가. 부지런한 우리나라 농민들을 데려오면 이런 황무지라도 기름진 옥토로 만들 수 있을 텐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면적은 한반도의 6배지만 인구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4,500만. 그 나라의 백인과 유색인의 인구비율은 25:75인데 경제력은 오히려 93:7이라고 하니 빈부격차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만했다. 이렇게 된 것은 1994년 만델라가 집권하기 전까지 극우 백인정권들은 흑인들에게서 교육과 통신, 교통의 기회를 박탈하는 극심한 인종차별정책으로 정권을 유지한 탓이다. 그러니 흑인이 가난할 수밖에. 남아공에도 승용차가 많은데 그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백인들이고,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모두 흑인들이다.
프란츠 파농은 그의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백인은 문명을 건설한 인종이고, 흑인은 자연에 동화되어 지내는 인종’이라는 이분법으로 구분하였다. 백인의 시각을 그대로 진솔하게 드러낸 이야기려니 싶다. 흑인을 원숭이와 백인 사이의 중간적 존재로밖에 취급하지 않은 백인들을 언제까지 이대로 눈감아 주어야 할지…….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케이프타운대학조차 남아공 국적의 교수는 찾아볼 수 없고 모두 이웃나라에서 수입하여 활용한단다. 그런데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금 이웃나라인 블랙아프리카의 영재들을 모아 교육을 시킨 뒤 자기 고국으로 돌려보내고 있다. 아프리카대륙의 앞날을 위한 남아공정부의 투자라고나 할까.
실업률(失業率) ‧ 범죄 ‧ 빈부격차 ‧ 에이즈, 이것이 남아공 정부가 풀어야 할 긴급한 과제라고 한다. 비교적 형편이 좋다는 남아공이 이런 실정이니 이웃 아프리카 나라들의 사정은 어떨 것인가. 수영장과 테니스장이 딸린 저택이 백인가정의 생활수준인데 반해 흑인 집단거주지는 우리나라의 5,6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부유한 백인들은 2~300세대의 전체 부지를 1차 고압철조망으로 보안장치를 하고, 또 집 외곽에도 보안장치를 하며, 출입문 등 이중삼중 보안장치를 할 뿐 아니라 일부 주택에는 열 감지 센서까지 설치하여 깊은 밤에 주방에 가려면 보안장치를 중단시켜야 할 정도로 치안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지갑 속에 비상금으로 200랜드(한국 돈 3만 원)정도를 넣고 다녀야 거리에서 강도를 만나면 그 돈을 합의금으로 주어야 한다지 않던가.
아시아대륙에도 크고 작은 나라들이 많지만 이 지구상에서 유라시아대륙 다음으로 크다는 아프리카대륙에는 무려 53개 나라가 있다. 2010년에는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월드컵 축구대회를 연다. 지금 그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2010년에는 아프리카가 세계로 열린 창(TV)을 통해 세계인의 마음에 지금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서려니 싶다.
아프리카의 라스베가스라는 선시티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호텔 뜨락을 서성거리며 바라본 밤하늘엔 아름다운 별들이 다이아몬드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65년 만에 아시아에서 찾아간 귀한 손님들을 환영하려고 하늘 높이 축포를 쏘아 올린 것 같았다. 문득 어린 시절 고향에서 쳐다본 밤하늘을 떠올렸다. 아시아나 아프리카나 밤하늘의 별빛은 다를 게 없지만, 아프리카의 밤하늘에 별들이 더 많은 것을 보면 아프리카에는 영혼이 맑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는 모양이다. 아프리카, 그곳은 조물주가 아껴둔 미래의 땅이자 순수한 처녀지려니 싶었다.

*金 鶴 약력
1980년 월간문학 등단/<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대상, 전북도문화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장, 임실문인협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장, 전북문인협회장, 전북펜클럽회장 역임/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