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 무명화가의 그림 한 점
2007.07.30 17:23
세네갈 무명화가의 그림 한 점
김학
집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나의 눈길을 끈다. 아프리카 여행 때 세네갈의 고레섬(llede Gorree)에서 10달러를 주고 산 세네갈 어느 무명화가의 그림이다. 이 그림이 잘 그려진 그림인지의 여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았던 한국화나 서양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다녀 온 아프리카가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아프리카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이렇게 읊은 어느 시인의 시구가 아니더라도 아시아보다도 훨씬 더 비극적인 대륙이 아프리카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륙이다. 일찍 개화하고 바다에 눈을 돌린 유럽의 영국‧독일‧프랑스‧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이탈리아‧벨기에 등은 앞을 다퉈 아프리카를 찢고 쪼개어 식민지로 삼았었다.
15,6세기 급격한 산업화로 노동력이 필요하자 유럽 여러 나라는 중동이나 먼 아시아보다는 가까운 아프리카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구하게 되었다. 그것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배경이었던 것이다. 서아프리카의 세네갈은 아프리카대륙의 슬픈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의 하나다.
고례섬!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그 고례섬은 길이가 9백 미터에 폭은 3백 미터로서 1시간이면 일주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섬이다. 그 섬이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인도양의 잔지바르(Zanzibar)섬과 대서양의 고례섬은 노예의 집결지였다고 한다. 그 고례섬이 지금은 백인들의 만행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걸 상전벽해라고나 할까.
고례섬에는 지금도 노예의 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찾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노예의 집을 이 방 저 방 구경하노라니 소름이 돋았다. ‘내가 만일 이 방에 갇혀 있다가 노예로 팔려간다면 어떤 심정일까’ 생각해 보니 전율이 느껴졌다.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의 슬픔이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아프리카에 상륙한 유럽의 백인들은 3백 년 동안 아프리카 전 지역에서 사냥하듯 마구잡이로 붙잡은 흑인 2천만 명을 이 고례섬에 가둬두었다가 유럽이나 미국으로 보내 팔았고, 또 수백 만 명이 이곳에서 병에 걸리거나 맞아서 죽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그때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사람이 아니라 소나 돼지 등 가축이나 다를 바 없이 취급되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하의 대우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때 하느님은 이처럼 참혹한 현상을 왜 방관만 하셨을까.
백인들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잡아온 노예들의 발목에 쇠고랑을 채우고 이 노예의 집에 가두어 두었다. 우리 속의 가축이나 무엇이 다르랴. 불행하게 노예로 붙잡힌 흑인들은 자신이 어디로 팔려 가는지도 모른 채, 이 노예의 집에 갇혀서 대서양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노예의 집 벽에는 흑인들이 몸부림치며 벽을 긁었던 손톱자국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고, 옛날 노예들의 발목에 채웠던 쇠고랑도 그 모양 그대로 전시되고 있어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든다.
여자의 방, 남자의 방, 어린이 방 등으로 나누어진 노예의 집에는 가족과 생이별한 흑인들이 백인들의 채찍을 맞으며 억지로 끌려와 갇혔을 것이다. 그 흑인들은 자기들이 끌려갈 유럽과 아메리카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고향 아프리카를 떠났으리라. 부부나, 부모자식이 헤어지면서도 서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게 그 때의 흑인들이었다. 그 비통한 슬픔을 어떻게 위로 받을 수 있으랴. 그러니 그들은 자유가 주어진다 해도 이산가족(離散家族) 찾기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례섬 노예의 집 마당에는 날마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빽빽하게 들어찰 것이다. 그들은 해설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기념사진 찍기에 바쁠 것이다. 세네갈 흑인들은 옛날 노예로 팔려간 조상들의 그 아픈 상처를 벌써 잊어버렸는지 하나라도 더 상품을 팔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어서 오히려 눈물겨웠다. 노예의 집이 있던 긴 골목에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노예로 끌려간 옛 조상들의 비극은 어느새 잊혀진 듯 보여 안타까웠다.
다카르항에서 고례섬으로 가는 배를 타자마자 어떤 흑인 소년이 자꾸 내 구두를 닦으라고 졸랐었다. 그러나 나는 싫다고 했다. 그런데 고례섬이 가까워지자 배 위에서 또 구두를 닦으라고 권했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나라의 구두닦이처럼 솜씨가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내 구두를 닦고 있는 소년은 처음에 구두 닦기를 권한 그 소년이 아니었다. 구두를 닦는 그 소년의 뒷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그 소년은 서운한 눈빛이었다. 나는 괜히 그 소년에게 미안했다. 설마 조그만 배 안에 구두닦이 소년이 두 명이나 있을 줄 몰랐던 게 나의 실수였다. 서운해 하던 그 소년의 눈빛이 영 지워지지 않는다. 구두 한 켤레 닦지 못한 소년의 눈빛이 저러할 때 노예로 끌려간 흑인들의 절망어린 눈빛은 어땠을까.
세네갈 고례섬에서 10달러를 주고 산 무명화가의 그림 한 점은 언제나 나에게 아프리카에서의 추억을 되새겨 주고, 슬픈 아프리카의 역사를 소곤소곤 들려준다.
*김 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대상,전라북도문화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장, 임실문인협회장, 전북문인협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김학
집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나의 눈길을 끈다. 아프리카 여행 때 세네갈의 고레섬(llede Gorree)에서 10달러를 주고 산 세네갈 어느 무명화가의 그림이다. 이 그림이 잘 그려진 그림인지의 여부는 나도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았던 한국화나 서양화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다녀 온 아프리카가 주마등처럼 펼쳐진다.
“아프리카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
이렇게 읊은 어느 시인의 시구가 아니더라도 아시아보다도 훨씬 더 비극적인 대륙이 아프리카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대륙이다. 일찍 개화하고 바다에 눈을 돌린 유럽의 영국‧독일‧프랑스‧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이탈리아‧벨기에 등은 앞을 다퉈 아프리카를 찢고 쪼개어 식민지로 삼았었다.
15,6세기 급격한 산업화로 노동력이 필요하자 유럽 여러 나라는 중동이나 먼 아시아보다는 가까운 아프리카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구하게 되었다. 그것이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은 배경이었던 것이다. 서아프리카의 세네갈은 아프리카대륙의 슬픈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나라의 하나다.
고례섬!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배로 15분 거리에 있는 그 고례섬은 길이가 9백 미터에 폭은 3백 미터로서 1시간이면 일주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섬이다. 그 섬이 아프리카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인도양의 잔지바르(Zanzibar)섬과 대서양의 고례섬은 노예의 집결지였다고 한다. 그 고례섬이 지금은 백인들의 만행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걸 상전벽해라고나 할까.
고례섬에는 지금도 노예의 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찾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노예의 집을 이 방 저 방 구경하노라니 소름이 돋았다. ‘내가 만일 이 방에 갇혀 있다가 노예로 팔려간다면 어떤 심정일까’ 생각해 보니 전율이 느껴졌다. 노예로 팔려간 흑인들의 슬픔이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아프리카에 상륙한 유럽의 백인들은 3백 년 동안 아프리카 전 지역에서 사냥하듯 마구잡이로 붙잡은 흑인 2천만 명을 이 고례섬에 가둬두었다가 유럽이나 미국으로 보내 팔았고, 또 수백 만 명이 이곳에서 병에 걸리거나 맞아서 죽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그때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사람이 아니라 소나 돼지 등 가축이나 다를 바 없이 취급되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하의 대우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때 하느님은 이처럼 참혹한 현상을 왜 방관만 하셨을까.
백인들은 아프리카 전역에서 잡아온 노예들의 발목에 쇠고랑을 채우고 이 노예의 집에 가두어 두었다. 우리 속의 가축이나 무엇이 다르랴. 불행하게 노예로 붙잡힌 흑인들은 자신이 어디로 팔려 가는지도 모른 채, 이 노예의 집에 갇혀서 대서양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노예의 집 벽에는 흑인들이 몸부림치며 벽을 긁었던 손톱자국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고, 옛날 노예들의 발목에 채웠던 쇠고랑도 그 모양 그대로 전시되고 있어 보는 이들을 섬뜩하게 만든다.
여자의 방, 남자의 방, 어린이 방 등으로 나누어진 노예의 집에는 가족과 생이별한 흑인들이 백인들의 채찍을 맞으며 억지로 끌려와 갇혔을 것이다. 그 흑인들은 자기들이 끌려갈 유럽과 아메리카가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고향 아프리카를 떠났으리라. 부부나, 부모자식이 헤어지면서도 서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게 그 때의 흑인들이었다. 그 비통한 슬픔을 어떻게 위로 받을 수 있으랴. 그러니 그들은 자유가 주어진다 해도 이산가족(離散家族) 찾기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례섬 노예의 집 마당에는 날마다 세계 방방곡곡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빽빽하게 들어찰 것이다. 그들은 해설자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기념사진 찍기에 바쁠 것이다. 세네갈 흑인들은 옛날 노예로 팔려간 조상들의 그 아픈 상처를 벌써 잊어버렸는지 하나라도 더 상품을 팔고자 안간힘을 다하고 있어서 오히려 눈물겨웠다. 노예의 집이 있던 긴 골목에는 상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서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노예로 끌려간 옛 조상들의 비극은 어느새 잊혀진 듯 보여 안타까웠다.
다카르항에서 고례섬으로 가는 배를 타자마자 어떤 흑인 소년이 자꾸 내 구두를 닦으라고 졸랐었다. 그러나 나는 싫다고 했다. 그런데 고례섬이 가까워지자 배 위에서 또 구두를 닦으라고 권했다. 나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나라의 구두닦이처럼 솜씨가 좋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내 구두를 닦고 있는 소년은 처음에 구두 닦기를 권한 그 소년이 아니었다. 구두를 닦는 그 소년의 뒷자리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그 소년은 서운한 눈빛이었다. 나는 괜히 그 소년에게 미안했다. 설마 조그만 배 안에 구두닦이 소년이 두 명이나 있을 줄 몰랐던 게 나의 실수였다. 서운해 하던 그 소년의 눈빛이 영 지워지지 않는다. 구두 한 켤레 닦지 못한 소년의 눈빛이 저러할 때 노예로 끌려간 흑인들의 절망어린 눈빛은 어땠을까.
세네갈 고례섬에서 10달러를 주고 산 무명화가의 그림 한 점은 언제나 나에게 아프리카에서의 추억을 되새겨 주고, 슬픈 아프리카의 역사를 소곤소곤 들려준다.
*김 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대상,전라북도문화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장, 임실문인협회장, 전북문인협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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