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대통령이던 나라, 세네갈

2007.07.31 16:42

김학 조회 수:123 추천:19

시인이 대통령이던 나라, 세네갈
                                                        김 학



겨울옷 차림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공항을 떠난 일행은 한여름인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공항에 도착했다. 다카르는 후텁지근한 여름날씨였다. 옷을 바꿔 입지 못한 우리 일행은 겨울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며 견딜 수밖에 없었다. 세네갈은 우리나라의 여름날씨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서 아프리카에 위치한 세네갈은 우리나라 남북한보다 면적이 조금 작고 인구는 약 950만 명. 이 나라는 전체 인구의 44%가 월로프족(Wolof)이고 23%는 푸아르족(Puaar), 나머지 15%는 세레르족(Sereres)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언어는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윌로프어도 함께 사용한다. 인구의 94%가 이슬람교를 신봉하며 나머지 5%는 천주교신도이고 토속신앙 신봉자는 1%정도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문화수준이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알려진 세네갈. 세네갈은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나라다. 시인으로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한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가  세네갈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으니 그야말로 시인공화국이었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이처럼 시인 대통령이 나올 수 있으려나싶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네갈에서는 셍고르를 비롯하여 작가인 부알라 신부, 영화감독 우스만 셈벤 등 이름난 예술인들을 많이 배출했다. 이처럼 문학과 예술을 숭상하는 나라였기에 ‘제73차 국제펜클럽대회’를 유치했으리라.
한국펜대표단 14명은 행사장인 메리디엔 프레지던트 호텔에 여장을 풀고 봉고차를 빌어 타고 오전 관광길에 나섰다. 다카르에서 1시간쯤 달리니 핑크 레이크(Pink Lake:핑크 빛 호수)에 이르렀다. 호숫가 모래밭에는 무더기무더기 모래성이 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것은 모래가 아니라 소금더미였다. 핑크 레이크는 중동의 사해(死海:Dead Sea)와 비슷했다. 이 호수는 태양빛의 강도에 따라 맑은 날 낮에는 호수물이 진한 핑크빛을 띄게 되어 핑크호수 또는 장미호수라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폭 8킬로미터에 길이가 35킬로미터인 이 호수는 보우놈 강에서 호수남쪽 끝으로 흘러들어 락 로즈(Rac Rose)를 형성하고 있다. 이 호수는 그리 깊지 않은데 호수 물 1리터당 380그람의 소금을 얻을 수 있다니 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큰 소득원이 되리라.
낯선 외국인들인 우리가 봉고차에서 내리자 흑인 아이들이 목걸이와 토속상품을 내밀며 사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일행 중 몇몇이 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자 돈을 달라며 또 손을 내밀었다. 호수 주변에는 조그만 초가마을이 있었다. 저런 곳에도 사람이 살까 싶을 정도로 초라하고 가난해 뵈는 집들이었다.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에서 핑크 레이크까지 1시간 남짓 오가며 창밖을 내다보니 4,50년 전의 우리네 모습을 보는 듯했다. 길거리에는 폐차기간을 넘긴 듯한 낡은 자동차와 마차(馬車) 그리고 보행자가 엉켜 저마다 눈치껏 지나다니고 있었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나 할까. 도로에는 차선이 그려져 있지 않고, 신호등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또 도시나 농촌 가릴 것 없이 쓰레기가 넘쳤다. 아예 청소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같았다. 그 쓰레기들을 눈여겨 살펴보니 선진국에서 수입하여 먹고 버린 빈 캔이나 식료품 포장지들이 대부분이었다. 문명의 찌꺼기들이었던 것이다.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제73차 국제펜클럽대회’가 열릴 강당으로 갔다. 벌써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은 펜클럽회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흑‧백‧황인종이 어울려 끼리끼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리마다 동시통역을 들을 수 있는 이어폰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국제펜클럽대회의 공식 언어가 영어와 프랑스어기 때문에 나에게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문득 우리 한글이 세계 공용어가 될 날은 언제일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는 날 한글로 창작활동을 하는 한국의 문인들 중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많이 나올 텐데…….
압둘라예 와레 세네갈 대통령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기념식도 조금 미루어졌다. 그만큼 세네갈의 민속음악을 더 감상할 수 있어 즐거웠다. 음악은 만국의 공통어란 말이 실감났다. 기념식이 끝난 뒤 다카르시장이 베푼 리셉션이 열렸다. 버스와 택시 편으로 교통순경의 안내를 받으며 리셉션장에 도착하였다. 좁은 홀에서 많은 펜클럽회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데 몇몇 세네갈 사람들이 음료수와 간단한 음식을 들고 다니며 나눠주었다. 나는 나중에 식사 때 먹으려고 기다리는데 세네갈 출신인 국제펜클럽대회 조직위원장과 다카르시장이 프랑스어로 간단히 연설을 하더니 리셉션이 끝났다고 했다. 너무 싱거웠지만 우리 일행은 털털 굶은 채 호텔로 돌아와 늦은 저녁식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사흘 밤이나 묵은 메리디엔 프레지던트 호텔은 시설이 아주 좋았다. 그 호텔 옆에서는 대서양이 출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슬그머니 바닷가로 가서 처음으로 대서양에 발을 담그고 손을 씻었다. 태평양과는 자주 만났지만 대서양과는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것이다.
저녁식사가 끝났는데도 요하네스버그공항에서 부친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갈아입을 여름옷이 없을 수밖에. 이럴 경우 하루에 70달러어치의 물건을 사고 영수증을 첨부하면 나중에 보상해 준다고 했다. 나는 호텔 상가에서 내복과 간단한 여름옷을 구입하였다. 본의 아니게 달러를 낭비하게 되었다. 여름나라 세네갈에서 열리는 국제펜클럽대회에 겨울나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입은 겨울차림으로 참석했으니 처음 참가한 행사지만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김 학 약력
1980년 월간문학 등단/<실수를 딛고 살아온 세월> 등 수필집 9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동포문학상 대상, 전라북도문화상, 전주시예술상 등 다수 수상/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역임/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e-mail: crane43@hanmail.net  http://crane43.kl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