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잘하는 수강생
2007.09.10 15:46
숙제 잘하는 수강생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김동영
볼펜 한 자루와 노트 한 권을 챙겨들고 103호 강의실에 들어섰다. 시작하려면 아직 20여분이나 남아서인지 연세 지긋한 남자 한 분만이 앉아있었다. 일단 안심이 되었다. 수필창작 기초반 등록 때부터 수강생들이 이․삼십대 젊은 문학 지망생들만 모이고, 이미 초로에 들어선 내 또래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는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10시가 가까워지자 수강생들이 한두 명씩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서로들 조심스럽게 인사하며 꽤 내용 있는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분들은 아마 전학기의 수강생들이었을 터였다. 지금까지 내가 2년 넘게 들어온 풍수지리반과는 강의실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좀더 서정적이고 한마디로 지적 분위기가 느껴졌다.
난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가? 난 앞으로 또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하려는 것보다 검증해 보려는 교만은 아닐까?
이윽고 교수님이 도착하시더니 뒤에 숨어있고 싶은 내 의도와는 달리 교수님은 각자 자기를 들어내 보라는 시간을 주셨다. 반장까지 해가며 설치던 지난 학기까지의 반에서와는 달리 난 나 자신을 조금만 들어내려고 했다. 아마 미지의 새로운 환경에서 나 자신을 대뜸 빨가벗기기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엄마인 듯한 수강생은 아이에게 글 쓰는 능력을 가르치고자 자신이 배우려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엄마들의 자식사랑이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다. 부부가 함께 손을 맞잡고 꾸려 가는 가정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퇴직자들의 할 일 찾기로는 매우 고상한 노후생활이 예견되는 대목이었다.
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교수님은 깨끗한 칠판에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쓰셨다. 미치지 않으면 어느 경지에 오를 수 없다는 고사를 들려주셨다. 이어서 “1. 결석하지 않는 수강생 2. 숙제 잘하는 수강생 3…….” 조금은 초등학생을 타이르듯 한 자상한 안내는 교수님이 언론계에 종사하다 은퇴하신 뒤로 초지일관 수필계에서 한 우물을 파신 듯한 프로필과 어울리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다년간의 평생교육원 교수경험에서 나오신 당부였을 것이다.
또 얼마나 노력하셨으면 문하를 스쳐간 수강자 중 77명이나 되는 초보 문인을 만들어 내셨을까? 등단? 사실 나에게도 등단이란 말은 넘어야 할 산이 아닌가? 그 문제로 많이 갈등했지 않은가!
특히 예술계와 문학계 등에서는 마치 등단을 해야 전문가인 양 인정하는 세상이니 넘어야 할 산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어디 이태백이나 두보, 고산 윤선도, 김생, 한석봉, 김홍도 등등 근세 이전의 분들이 언제 대학을 다녔으며 그런 등단과정을 거쳤던가?
시인이나 수필가는 글을 잘 쓰면 되고, 화가는 그림을 잘 그려서 읽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도록 하고, 예술성을 잘 전달하면 되었지 제한 된 몇 사람이 지극히 주관적인 안목으로 심사하여 장원이라 낙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등단이란 제도를 거부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이 법이 통하니 이제 나이 들어서야 고개를 숙이고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까 어떤 수강생이 “갈 때까지 가 보겠습니다.”라고 자신의 결의를 다짐하던 말이 뇌리에 잔상으로 남는 이유도 아마 등단을 의미하고 한 말이 아닐까?
첫 시간의 대면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세상을 향해 내 생각을 글로 써서 발표하고 싶다는 오래 전부터의 내 뜻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갈 때까지 가 보겠습니다.” 라는 말을 뒤로하고 강의실 문을 나섰다.
과연 현재의 내 일상적인 삶 속에서 ‘2. 숙제 잘하는 수강생’이라는 수칙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되짚어 보다가 교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여러 날 고민하다가 부랴부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정도면 나도 숙제 잘하는 수강생이 된 것일까?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기) 김동영
볼펜 한 자루와 노트 한 권을 챙겨들고 103호 강의실에 들어섰다. 시작하려면 아직 20여분이나 남아서인지 연세 지긋한 남자 한 분만이 앉아있었다. 일단 안심이 되었다. 수필창작 기초반 등록 때부터 수강생들이 이․삼십대 젊은 문학 지망생들만 모이고, 이미 초로에 들어선 내 또래가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는 일단 안심할 수 있었다.
10시가 가까워지자 수강생들이 한두 명씩 도착하기 시작하였다. 서로들 조심스럽게 인사하며 꽤 내용 있는 이야기가 이루어지는 분들은 아마 전학기의 수강생들이었을 터였다. 지금까지 내가 2년 넘게 들어온 풍수지리반과는 강의실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좀더 서정적이고 한마디로 지적 분위기가 느껴졌다.
난 왜 이 자리에 앉아 있는가? 난 앞으로 또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하려는 것보다 검증해 보려는 교만은 아닐까?
이윽고 교수님이 도착하시더니 뒤에 숨어있고 싶은 내 의도와는 달리 교수님은 각자 자기를 들어내 보라는 시간을 주셨다. 반장까지 해가며 설치던 지난 학기까지의 반에서와는 달리 난 나 자신을 조금만 들어내려고 했다. 아마 미지의 새로운 환경에서 나 자신을 대뜸 빨가벗기기가 싫었는지도 모른다.
젊은 엄마인 듯한 수강생은 아이에게 글 쓰는 능력을 가르치고자 자신이 배우려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엄마들의 자식사랑이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다. 부부가 함께 손을 맞잡고 꾸려 가는 가정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퇴직자들의 할 일 찾기로는 매우 고상한 노후생활이 예견되는 대목이었다.
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교수님은 깨끗한 칠판에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쓰셨다. 미치지 않으면 어느 경지에 오를 수 없다는 고사를 들려주셨다. 이어서 “1. 결석하지 않는 수강생 2. 숙제 잘하는 수강생 3…….” 조금은 초등학생을 타이르듯 한 자상한 안내는 교수님이 언론계에 종사하다 은퇴하신 뒤로 초지일관 수필계에서 한 우물을 파신 듯한 프로필과 어울리지는 않으나 나름대로 다년간의 평생교육원 교수경험에서 나오신 당부였을 것이다.
또 얼마나 노력하셨으면 문하를 스쳐간 수강자 중 77명이나 되는 초보 문인을 만들어 내셨을까? 등단? 사실 나에게도 등단이란 말은 넘어야 할 산이 아닌가? 그 문제로 많이 갈등했지 않은가!
특히 예술계와 문학계 등에서는 마치 등단을 해야 전문가인 양 인정하는 세상이니 넘어야 할 산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어디 이태백이나 두보, 고산 윤선도, 김생, 한석봉, 김홍도 등등 근세 이전의 분들이 언제 대학을 다녔으며 그런 등단과정을 거쳤던가?
시인이나 수필가는 글을 잘 쓰면 되고, 화가는 그림을 잘 그려서 읽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도록 하고, 예술성을 잘 전달하면 되었지 제한 된 몇 사람이 지극히 주관적인 안목으로 심사하여 장원이라 낙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젊은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등단이란 제도를 거부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 세계에서는 이 법이 통하니 이제 나이 들어서야 고개를 숙이고 이 자리에 앉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까 어떤 수강생이 “갈 때까지 가 보겠습니다.”라고 자신의 결의를 다짐하던 말이 뇌리에 잔상으로 남는 이유도 아마 등단을 의미하고 한 말이 아닐까?
첫 시간의 대면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세상을 향해 내 생각을 글로 써서 발표하고 싶다는 오래 전부터의 내 뜻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갈 때까지 가 보겠습니다.” 라는 말을 뒤로하고 강의실 문을 나섰다.
과연 현재의 내 일상적인 삶 속에서 ‘2. 숙제 잘하는 수강생’이라는 수칙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되짚어 보다가 교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여러 날 고민하다가 부랴부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정도면 나도 숙제 잘하는 수강생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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