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행복 출발

2008.05.23 04:40

김상권 조회 수:716 추천:2

딸아이의 행복 출발
         전주안골노인 복지회관 수필창작 반 김상권



현진이 시집가던 날,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서울 대명웨딩홀에서 혼례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2002년 11월 24일로 딸아이의 혼례날짜를 잡아놓고서도 별다른 생각 없이 지내왔었다. 그런데 막상 오늘이 혼례 날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지난 일들이 회오리치듯 내 마음을 깨웠다.

  딸아이는 여고를 졸업하고 나서 2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큰 뜻을 품은 채 일본으로 유학을 갔었다. 동경 시브야에 있는 ‘아오야마학원 여자단과대학’과 치바에 있는 ‘쇼쿠도쿠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일본에 건너간 지 10년이라는 세월동안 경제적 어려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그러나 딸아이는 항상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았다. 해맑은 웃음과 밝은 표정, 명랑한 목소리 등 난 딸아이의 그러한 모습이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딸아이의 결혼을 축하해주려는 듯 그 날은 겨울날씨답지 않게 포근하고 따뜻했다. 주례는 신랑의 은사인  L박사였다. “신부 입장!” 사회자의 말이 떨어지자 나는 천사처럼 예쁘게 웨딩드레스를 차려입은 현진이의 손을 잡고 발을 내딛었다. 웨딩마치에 맞춰 한 발 한 발 내딛으면서 “현진아! 미안하다, 그간 고생 많았다. 이제부터 행복시작이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기원하며 딸아이의 손을 신랑에게 넘겨주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줄곧 착잡한 심정으로 신랑신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주례사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식이 끝나고 신랑신부의 행진이 이어지자 축하객들은 뜨거운 축하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딸아이의 행복이 출발한 것이다.

  딸아이의 결혼준비는 번거롭지 않았다. 신랑 예복과 반지, 신부 예복만 준비하면 되었다. 침대니 냉장고 등 전자제품이 필요치 않았다. 서울에서 신혼살림을 하지 못하고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혼여행도 포기해야만 했다. 일본에서의 학업이 아직 끝나지 않은 탓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고명딸을 결혼시키는데 이처럼 빈약하게 시집보내려니. 마음이 언짢았다.  

집에 돌아와 딸아이의 앨범을 펼쳐보았다. 딸아이의 지난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앨범. 그 사진 중에는 갓난아기 때의 모습, 백일 때의 모습, 돌때의 모습, 아자아장 걸을 때의 모습, 오빠와 동생과 함께 찍은 모습, 초등학교시절의 소풍모습, 운동회모습, 수학여행 때의 모습, 중학교와 고등학교시절의 친구들과 찍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어린 소녀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11월의 신부가 된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니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이 허전하고 서운하며 아쉬웠다.

딸아이는 이제 ‘안동 김씨’가 아닌 ‘청풍 김씨’의 식구가 되었다. 내 호적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30년 동안 ‘안동 김씨’였던 딸아이는 ‘청풍 김씨’가족으로서의 밀알이 되겠지. 당연한 일인데도 무언가 허전했다.

사위는 3남 2녀의 막내로 위로 두 형님이나 누나와 나이차가 꽤 큰데도 형제남매간에 우애가 좋았다. 누님의 살림을 도우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박사학위까지 얻었다. 심성이 곱고, 부지런하여 자립심이 강한 청년이라서 안심이 되었다.

나는 딸아이가 청풍 김씨 집안의 막내며느리로서 사랑받는 아내, 시아주버니와 시누이, 동서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형제간의 우애는 물론 집안에 웃음꽃을 피우는 주인공이 되기를 빌었다. 나는 현진이가 그런 능력과 심성을 가진 딸이라고 믿는다. 가슴 깊이 고이고이 묻어두었던 이 한마디를 이제는 꼭 해야겠다.
“현진아,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2008.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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